“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다산콜센터는 2007년 1월 오세훈 전 시장 시절 설립됐다. 오세훈 전 시장의 집무실이 서소문청사 13층에 있을 때 상담사들은 바로 아래층인 12층에서 일했다. 그리고 신설동으로 넘어왔다. 서울시에 다산콜센터를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서울시 행정서비스의 한축이다. 상담사들은 파티션이 설치된 좁은 책상에서 ‘시민님’ 전화를 받는다. 귀로 듣고, 손으로 찾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면서 동시에 ‘후처리’(상담내역 정리)를 한다. 하루 100건이 넘는 ‘콜’을 받는다. 그런데 상담사들은 서울시 소속이 아니라, 민간업체 소속이다. ‘콜수’에 따라 임금이 수십만 원까지 차이 난다. 인사평가 항목에는 ‘미소 띈 음성’도 있다.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옆 동료와 속도와 미소를 경쟁해야 한다.

그래서 상담사들은 지난 2012년 9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악성콜’을 받았을 때 필요한 감정휴식과 감정휴가가 필요하고, ‘적정콜’을 받으며 콜수에 따른 임금차별을 줄이고, 기본급이 100만 원밖에 안 되는 상황을 바꿔보려는 시도였다. 이 때문에 부분파업, ‘적정콜 받기’ 싸움, 숱한 기자회견을 치러냈다. 상담사들은 저마다 다른 퇴근시간에도 노조 사무실에 모여 집담회를 하고, ‘투쟁’도 했다. 부분파업까지 한 올해 감정휴가를 따냈고, 임금은 4만 원이 올랐다. 또 상담사들은 노동조합 설립 초기부터 ‘직접고용’ 싸움을 시작했고, 서울시의 반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서울시는 오는 12월에 ‘직접고용’ 로드맵을 제시할 계획이다. 상담사를 직접고용하거나 다산콜을 서울시가 참여하는 협동조합으로 바꿀 가능성이 크다.

▲ (사진=미디어스)

상담사들은 추석 연휴 ‘파업’ 이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 끝나고, 서울시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뒤에도 의자에 투쟁조끼를 걸어놓고 있다. 왜일까. 서울시는 ‘직접고용’을 약속하면서도 위탁업체 계약 공고를 낸 탓이다. 그것도 2년여 전 500여 명에서 400여 명으로, 백여 명 가까이 줄어든 상담사를 충원하지 않은 채, 십 수 억 원의 예산을 삭감한다는 내용이다. 현장에서는 당연히 “서울시가 구조조정을 한 뒤 직접고용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17일 오후 서울 신설동에 위치한 다산콜센터 5층 대회의실.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지부장 김영아)가 주최한 <서울시 직접고용 전환을 위한 정책 워크숍>에서는 서울시가 ‘착한 척’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다.

구청 통계조사원, 문서정리원, 선거관리위원회 사무보조, 수도사업소 수질조사원, 숲해설자 등을 거쳐 2011년 47세 나이로 다산콜에 들어왔다는 김해순씨는 “최초 12명의 동기 중 지금 5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상담하는 기계처럼 관습에 젖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5월 늑막염에 걸렸는데 병가는 2개월만 쓸 수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덜 완쾌된 몸으로 복귀해 힘들었지만 ‘적정콜’ 받기를 하면서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느꼈다”며 “상담내용을 한 번 더 보게 됐고, 시민들에게 더 친절해졌다. 제가 갖고 있던 본성을 찾아갈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고용’이 된다면 “콜수에 쫓기는 상담원이 아니라 시민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시민들의 마음을 읽는 상담원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진=미디어스)

상담사 한애진씨는 콜수 경쟁 등을 언급하며 “연차가 높아지더라도 전문성에 있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현경씨도 실적 경쟁이 없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민이 원하는 내용을 성의껏 상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원영희씨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시민의 마음을 읽고 상담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평가에서 벗어나, 여유 있는 응대로, 좀 더 심층 있게 전문적인 상담을 하는 상담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은씨는 “지금 이대로는 시민 입장에서 상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인예씨는 “시민은 전문적인 상담을 원하는데 위탁업체 소속으로 권한이 없어 제약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노현선씨는 “경쟁을 위한 돈벌이가 아니어야 서울시민의 이야기를 제대로 경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 서울시당 김상철 사무처장은 “공공부문이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할 원칙은 ‘이 일이 상시적으로 필요한지’, ‘이 일이 없다면 행정업무의 완결성이 떨어지는지’ 2가지”라며 “만약 서울시에 120이 없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직영화와 관련해 가장 큰 것은 필요와 권한을 맞추는 것”이라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광고한 것은 서울시다. 실제 무엇이든 전화하게 만들었다. 시민은 전화 한 통으로 민원과 궁금증이 해결되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시민의 ‘필요’를 받는 상담원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권한이 없다. 상담사가 ‘이렇게 처리될 테니 믿어 달라’고 얘기할 수 있나. 이게 핵심이다. 서울시와 시민들이 원하는 ‘필요’에 맞게 ‘권한’을 줘야 한다. 답은 직접고용뿐”이라고 말했다.

▲ 서울시 임종석 정무부시장은 17일 워크숍에 참석, 직접고용과 관련 서울시의 정책방향을 설명했다.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

서울시가 간접고용 문제를 고민한지 2년이 지났고 아직 로드맵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서울시는 ‘직접고용’이든 ‘사회적 협동조합’이든 다산콜을 직접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임종석 정무부시장은 이날 워크숍에서 “오랫동안 투쟁해 온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는 내년 훨씬 전향적으로, 어떤 문제는 박원순 시장님이 직접, 어떤 문제는 시와 기관이 해결해가면서 대한민국의 노동 플랜을 제대로, 옳은 방향으로 잡아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다산콜 문제는 서울시가 민간위탁 사업의 노동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그 기준이 될 것”이라며 “복지와 함께 한국사회의 양축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 특히 감정노동과 여성노동 문제를 풀어갈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탁 위원장은 “서울시가 다산콜을 포함해 민간위탁 사업장에서 좋은 사용자가 되는 길을, 일률적으로 동시에 발표할 수 없는 여건과 환경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현장에 올 때마다 직접고용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면 이제는 방향과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간접고용이라는 현실에서 좌절한 노동자들이 좋은 사용자를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며 “서울시가 공공부문에서 좋은 사용자가 되려면 노동자와 대립, 투쟁할 것이 아니라 단호한 입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지만, 만약 서울시가 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은 지금까지 한 대로 투쟁해서 좋은 직장을 쟁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미디어스)

이날 상담사들은 시민님 전화를 받을 때처럼 창을 스무 개 이상 열어놓지 않아도,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띄워놓지 않아도 막힘이 없었다. 이날 백여 명의 상담사들은 영상에서, 그리고 직접 마이크를 들고 “서울시가 다산콜센터를 직접운영하고, 상담사를 직접고용해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시민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빨리 ‘끊어야’ 월급을 만 원이라도 더 받는, ‘장콜’(긴 전화) 걸리면 실적경쟁에서 밀릴 걱정을 하는, 악성민원과 욕설에도 전화를 먼저 끊지 못하는, 2007년부터 일했지만 2년마다 신입사원으로 돌아가는,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에게 가장 좋은 고용형태는 뭘까. 박원순 시장에게 권한다. 부담 갖지 말고 무엇이든 물어보시라. 120 누르고 직접 물어보시라. 보고서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상담을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