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송신 분쟁 시 ‘블랙아웃’ 사태로 시청자들의 피해가 컸던 것에 대해 정부가 직권조정 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지상파에서 반대했던 ‘재정제도’는 올림픽·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로 한정됐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18일 오후 2시 전체회의를 열어 재송신 제도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방송법> 개정안을 통해 방통위는 ‘직권조정’, ‘재정제도’, ‘방송유지 및 재개명령권’을 도입하기로 했다. 단, ‘재정제도’ 적용대상은 올림픽·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로 제한됐다. 이는 입법예고된 지 1년만의 일이다. 이날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는 재정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갈등이 격화됐으며 이 결과 정부여당 추천 허원제 부위원장이 의결 전 퇴장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33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보고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방통위, <방송법> 개정 의결 내용은?

방통위는 이날 <방송법> 개정안에 재송신 분쟁으로 인해 방송중단 등 시청자 이익 침해가 우려되는 경우 △당사자의 신청 없어도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게 하는 직권조정제도 도입, △올릭픽·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 등에 관한 방송프로그램의 공급·수급과 관련된 분쟁 발생 시 당사자 신청에 따라 조사·심문 등 준사법적 절차를 거쳐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재정제도 신설, △방송유지·재개명령권 신설 등의 내용을 담았다.

▲ (자료=방통위)
이 중 ‘직권조정’의 경우, 재송신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해 방송중단 등 시청권 침해가 예상되는 때에 당사자 신청이 없더라도 방송분쟁조정위원회에서 직권으로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직권조정 대상은 의무동시재송신 방송채널(KBS1·EBS) 이외의 지상파 방송채널이다. 단, 조정 중 방통위 직권으로 재정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한 입법예고안 규정은 삭제됐다.

‘방송유지·재개 명령’ 신설의 경우, 방송중단 등 시청권 침해가 예상될 때 방통위가 30일 내 기간을 정해 방송프로그램 공급·송출의 유지·재개를 명할 수 있도록 했다. 역시 적용대상은 의무동시재송신 방송채널(KBS1·EBS) 이외의 지상파 방송채널이다. 만일 방송사업자들이 방송유지·재개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방통위와 미래부는 <방송법> 상 허가 취소와 업무정지, 과징금 등을 부과할 수 있다.

‘재정제도’의 경우, 방송중단 등 시청권 침해가 예상될 때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조사·심문 등 준사법적 절차를 거쳐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제도에 대해서는 방통위 상임위원 및 방송사업자들 간 이견이 컸던 만큼 일부 규정이 추가됐다. 앞서 언급했듯 ‘직권조정’이나 ‘방송유지·재개 명령’과 달리 올림픽·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에 대한 재송신 분쟁으로 적용대상을 한정한 것 등이 그것이다.

‘재정제도’ 신설에 따라 방통위는 해당 분쟁이 조정 대상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경우 조정에 회부할 수 있고 자료제출 요구와 당사자 의견진술 등을 종합해 합의권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재정진행 중 소송이 제기되면 재정은 중지되고 판결확정시 재정도 종료된다. 하지만 방송사업자가 60일 내 해당 분쟁을 원인으로 하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된다.

재정제도 도입 두고 갈등…허원제 부위원장 ‘퇴장’

방통위가 추진했던 <방송법> 개정안은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이 “방송사업자들 간 자유협상을 침해한다”고 반대 뜻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논란이 반복돼왔다. 이날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도 논란이 이어진 끝에 정부여당 추천이자 SBS 출신인 허원제 부위원장이 의결을 앞두고 퇴장했다.

<방송법> 개정안에 가장 크게 반대한 쪽은 정부여당 추천 허원제 부위원장이었다. 허 부위원장은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에 규정된 가치를 놓고 볼 때 독소조항을 내포하고 있다”며 <방송법> 개정안을 ‘과잉입법’으로 규정하면서 “방통위가 방송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지상파3사 사옥ⓒ미디어스
허원제 부위원장은 “지상파와 유료방송사업자간 분쟁으로 3~4차례 방송이 중단됐었고 그로 인해 시청자들의 볼권리가 훼손됐기 때문에 마련됐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면서도 “그러나 독소조항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파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방통위는 중앙행정기관으로 미국의 FCC와 영국 오프콤(OFCOM) 등 독립기관과는 다른 위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허원제 부위원장은 방송 프로그램 송출 유지·재개에 대해서도 “영업자유에 대한 침해 성격이 강하다. 그것을 왜 정부가 해야 되느냐”고 반문하며 반발했다.

허원제 부위원장은 “행정권력인 방통위가 언론사 이해관계에 판관 역할을 해선 안된다”면서 “방송사에 대해 재량권을 갖는 다는 것은 어떤 미사어구를 동원해도 언론통제의 칼자루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재차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또 다른 정부여당 추천 이기주 상임위원은 <방송법> 개정안은 “정부로서 해야하는 합리적인 규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상임위원은 ‘재정제도’에 대해서도 “국내외 트렌드처럼 도입되고 있다”며 “이는 사업자 간 분쟁이 국민생활이나 방송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자율 협상으로 두기 어려우면 방통위가 공정한 판단을 내려주는 것으로 통제의 의미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상임위원은 또한 “방송 유지·재개 명령권과 직권조정 등은 재정제도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제도들”이라고 강조했다.

야당 추천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보다는 ‘재정제도’와 관련해 대상을 한정해야한다는 데에 집중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방송법> 개정안은 재송신 협상과 국민관심행사 협상 결렬에 따른 시청권 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면서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유지 명령권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고 밝혔다. 고 상임위원은 그러나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재정제도 도입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직권 조정제도에 더해 방송 프로그램 유지재개명령을 도입하는 만큼 재정제도는 나중에 해도 된다”며 “만일, 오늘 결정해야한다면 국민관심행사에 대한 분쟁으로 한정해 도입해야한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김재홍 상임위원 또한 “직권조정 등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재정제도의 경우 많은 문의를 받은 결과 최소한으로 대상을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성준 방통위원장, “재정제도…우려 많지만 시행해보자

이날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언론자유에 대한 위헌’이라는 허원제 부위원장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최성준 위원장은 먼저 ‘재정제도’와 관련해 “방송내용과 편성에 대한 부분을 관여하는 게 아니다. 다만, 방송프로그램을 공급할 때 경제적 대가 산정의 문제”라며 “그렇게 보면, 방송사업자들에 대한 광고규제 등과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33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보고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성준 위원장은 ‘방통위는 행정기관’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법률>을 근거로 반박했다. 최 위원장은 “방통위는 국무총리 행정감독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면서 “재정제도는 ‘합의권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방송사업자 한 쪽이 소송을 신청하면 재정은 중단되기 때문에 당사자의 이익을 충분히 배려할 수 있는 절차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허원제 부위원장은 “기본적으로 재정제도 도입을 반대한다”며 “이 사안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면 방통위 재량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는 방송사들로 하여금 정부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면서 퇴장했다.

최성준 위원장은 ‘재정제도’와 관련해 “상당한 우려와 걱정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시행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꺾지 않았다. 다만,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제기한 대로 적용대상을 국민관심행사에 대한 분쟁으로 축소했다.

한편, 이날 방통위는 IPTV 방송사업자가 재산상황공표 대상에 제외돼 있어 방송시장 현황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개선하도록 함께 조치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