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가 끝낸 지도 제법 지난 오후 2시, ‘수능 문제 오류’에 대한 신문비평을 해야 하는 매체비평지 기자의 눈살이 찌푸려지고 한숨이 나온다. ‘수능’이나 ‘수능 오류’나 ‘평가원’을 키워드로 돌렸을 때 잡히는 기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신문비평 기사는 대체로 오전에 출고되어야 의미를 가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복수정답 여부를 시간별로 체크할 수험생과 학부모의 심리를 악용하여 모든 매체가 실시간 대응을 해대니 정작 상황이 어떠한지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진다.

신문들의 비판은 준엄하다. 18일 <조선일보> 사설은 <잇단 '수능 출제 실패' 全 국민 스트레스 쌓인다>에서 “수능시험은 60만명 이상이 응시를 하고 대학들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銓衡) 자료로 쓰고 있다. 출제가 잘못되면 수많은 수험생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다. 작년 세계지리 과목의 경우 오답 처리돼 불이익을 받은 수험생이 1만8884명이었다. 이번 수능의 영어 과목 25번 문항은 '18%포인트 증가'라고 해야 맞을 것을 '18% 증가'라고 잘못 표기했다. 출제위원이 316명, 검토위원이 167명이나 된다는데 그 사람들을 한 달 넘게 합숙시키면서 뭘 했길래 이런 초보적 오류도 못 잡아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비판한다. 이어서 <조선일보>는 “어쨌든 수능 출제의 오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다. 정부가 사태를 수습한 후 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한다”라고 책임 소재까지 분명히 한다.
▲ 18일자 조선일보 10면 기사
<조선일보> 뿐만일까. 사설을 안 쓴 신문을 찾기 힘들 정도다. 같은 날 <중앙일보> 사설은 “피해 구제 이후엔 반복되는 출제 오류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내놔야 한다. 일본의 대입센터 시험, 미국의 SAT 등 어떤 대입 시험도 우리처럼 출제진을 한 달여 가둬 두고 합숙하면서 문제를 내게 하지 않는다. 이번 영어 문항처럼 검토 과정이 부실한 데서 오류가 생겼을 수도 있겠으나 지식이 광속도로 이동하는 디지털 시대에 기존 출제 관행이 한계에 도달한 건 아닌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동아일보> 사설은 아예 제목을 <%와 %포인트 구별 못하는 평가원에 수능 맡길 수 있나>라고 가져가며 평가원을 질타한다. “영어 전공자인 교수 출제위원이나 교사 검토위원들이 이런 기초적 잘못을 걸러내지 못했다니 이들의 상식 수준을 의심하게 한다”라고 질타하면서, “차제에 수능에 문제은행을 도입하거나 수능을 국가기초학력평가 또는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대학의 선발 자율권을 확대하는 등 근본적인 입시 개선책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라고 말한다. 수능 체제 개편 얘기까지 거론한 것이다.
수능 체제 개편 얘기는 물론 중도‧진보 성향 언론에서 더 많이 나온다. <한국일보> 사설은 “수능의 경우 기초학력을 총괄 평가하는 성격인 자격고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신 고교 생활기록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교과 이수 과정과 각종 학교 활동 평가의 비중을 대입 전형의 주요 요소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이는 학교와 교사에게 평가의 자율권을 돌려주는 동시에 황폐화한 공교육을 되살리는 길이다. 일부에서는 대학별 본고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안될 말이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입시경쟁이 극한으로 치달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입시제도 개편의 요체는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절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며 나름의 공익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분노는 하되 입시제도 개편의 이유를 잊지 않는 의견제시다.
▲ 18일자 한국일보 11면 기사
<한겨레>의 경우 사설에서는 주로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 교육당국의 책임을 엄정하게 질타했지만 10면 기사의 말미에선 “교육현장에서는 수능이 창의성과 인성을 중시하는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교육적 효용성이 사실상 끝났다는 진단도 내놓는다. 상대평가의 한계를 드러낸 수능을 절대평가화해 자격고사로 바꾸고, 대학 수학능력 유무만 ‘통과(Pass) 또는 낙제(Fail)’로 나누자는 지적이다”라며 수능 체제 개편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한겨레>는 허병수 전교조 대변인의 입을 빌려 “수능 자격고사화는 10여년 전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대학서열화가 공고한 상태에서 수능이 자격고사화되면 본고사가 부활할 수 있으니,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등 대학서열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들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이면서 문제가 녹록치 않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언론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지 않고 ‘수능’과 ‘평가원’에 대한 극렬한 비판을 하는 풍경은 사회정의의 구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 사회의 집약적 모순을 드러낼 뿐이다. 수능이란 것이 가지는 그 엄청난 위상과 폐해, 그리하여 그것이 생산하는 이 모든 아수라장은 수능이란 시험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학력차별, 학벌사회,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양분화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및 임금격차 등 여러 문제의 발현이다. 굳이 집약하자면 ‘양극화의 심화 및 계층상승의 가능성 약화’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 18일자 한겨레 10면 기사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하지 않는 보수언론이 수능과 평가원을 비판하는 것은 데스크의 자녀들이 수능을 봤기 때문일까, 아니면 분노한 군중여론에 업혀 가려는 포퓰리즘일까? 수능을 친 학생과 그 학부모들이 진정으로 분개했는지도 의문이다. 일선 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직관적으로 말도 안 되는 사안에서도 복수정답을 인정해달라고 포기하지 않고 요구한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면 사교육기관에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지금의 요구 역시 이해타산에서 나온 냉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수능이 등급제로 바뀐 이후 ‘한 문제’의 영향력이 매우 커진 상황에, 얼마 전 법원 판결에서 수능 시험의 오류가 정정되었다는 맥락까지 겹쳐 복수정답 인정의 기대감이 커져 나온 움직임일 것이다. 그래서 평가원이 인정하는 정답을 기재한 이들은 복수정답 인정이 안 되길 바라는 상황이 되어 있다.
수능이 자격고사화, 절대평가로 바뀌는 방향은 옳을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쉬운 수능’ 정책을 만들고 국사 과목에 대한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이 길이라는 예상도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 사설과 <한겨레> 기사를 읽으면 알 수 있듯, 수능이 자격고사화된다면 이젠 학생선발은 대학의 선택의 문제가 된다. 그들이 각 고교교육 수준의 지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전공영역에 걸맞는 서술형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나, 각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한다면 그들이 사실상 ‘본고사’를 부활시켜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 18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입시제도의 개혁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개혁이 효력을 거두기 위해선 전반적인 사회 체제의 개혁을 논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사회 체제가 이렇기 때문에 교육 문제는 풀기 어렵다”라고만 말할 수는 없으니, 현 실정에서 그나마 괜찮은 방향으로 작동가능한 제도 개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의 ‘수능’이 다른 나라의 어떠한 시험보다도 개인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결정한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상황에서, ‘완벽한 시험’을 만들어내라고 평가원 당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합리하다. 평가원이 범한 구체적인 오류와 잘못을 인정한다 해도 그렇다. 진보언론 역시 좀더 넓은 시선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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