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의 '낙하산 반대 투쟁'이 10일로 85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구본홍 YTN 사장이 현 정권 주요 인사들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사장에 선임됐음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구 사장은 사장 선임 뒤에도 현 정권 주요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청와대나 구 사장의 "낙하산 인사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9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원회를 상대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국정감사에서는 '정권이 YTN 사장 인선 개입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들이 쏟아졌다.

이날 국정감사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국감 대상으로, 구본홍 YTN사장,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 지난 9일 오전 10시부터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곽상아

구본홍, 사장 선임 이전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만나

구 사장은 주주총회를 통해 공식 대표이사로 선임되기 이전인 지난 5월 무렵, 최시중 위원장과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 위원장이 YTN 사장으로 선임되기 이전, 구 사장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YTN 사장 임명에 정권이 관여했다"는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구 사장이 YTN 이사회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것은 지난 5월29일이며, 이후 7월17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선임된 바 있다.

그는 "최시중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전병헌 민주당 의원 질의에 "기억이 없다"고 말했고, "사장으로 내정된 지난 5월 이후 최시중 위원장과 만난 적이 있냐"는 천정배 민주당 의원 질의에는 "YTN DMB 재승인 의견 청취 때문에 방통위에 와서 최 위원장을 공적으로 만난 적이 있지만 그 전에는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최시중 위원장은 "구 사장과는 오랜 교우관계가 있다"면서 "밖에서 한두 번 만난 적이 있다"고 구 사장 답변과 엇갈리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당황한 구 사장은 "(최 위원장이) 두어 번 만났다고 하는데 만났을 수도 있겠다"면서 "YTN 사태가 복잡해서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명했고, 이에 천 의원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어떻게 YTN을 운영하냐"고 강하게 비난했다.

구본홍, 사장 선임 이전 박선규 청와대 비서관 만나

구 사장은 사장 선임 이전 시점인 지난 7월2일부터 4일까지 YTN이 예약한 한 호텔에 묵으며, 이 기간에 청와대 박선규 비서관을 만났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7월2일 박선규 비서관의 연락을 받고 만난 적이 있다"며 "언론 비서관이 된 것을 축하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당시 박 비서관은 KBS, MBC 등을 돌면서 인사하러 다닌다고 말했다"면서 "만나서 YTN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 비서관은 최근 YTN과 관련해 "청와대는 구본홍씨를 사퇴시키기 않을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다" "YTN주식 1만주를 이미 팔았다. 이를 노조위윈장에게 전해달라" 등의 발언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인물로, 두 사람이 '단순히 축하를 위해, 그것도 호텔방에서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국정감사에 참석한 최시중 방통위원장(왼쪽)과 구본홍 YTN 사장(오른쪽). ⓒ곽상아

KBS대책회의 있던 8월17일, 최시중-구본홍 만남

최시중 위원장,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김은구 전 KBS이사, 유재천 KBS 이사장이 KBS 사장 대책회의를 가진 지난 8월17일, 구 사장은 이날 오전 최 위원장과 따로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구 사장은 "8월17일 최 위원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혹시 만난 적 없나"라는 조영택 민주당 의원 질의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겠다"고 둘러대다 뒤늦게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천정배 의원은 "8월17일은 최시중 위원장의 주도로 유재천 이사장을 비롯한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만난 날로 이는 결국 권력 핵심 실세들이 의논하면서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에 따른 결과가 KBS와 YTN에 대한 (정권 차원의) 장악 시도"라고 맹비난했다.

구본홍, 우리은행 YTN지분 매각 이전에 매각 가능성 언급

우리은행 YTN지분 매각과 관련한 구 사장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구 사장이 노조와 실국장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에게 우리은행의 YTN지분 매각과 관련해 언급한 시점은 지난 8월3일이며, 실제 우리은행이 YTN주식을 매각한 시점은 14일이다. 우리은행이 YTN지분을 매각하기 이전에 구 사장이 이를 알고 간부들과 노조원들에게 언급했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지난 6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 추가 질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이종휘 우리은행장을 향해 "8월3일 구본홍 사장이 우리은행이 주식을 매각할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구 사장이 우리은행이 주식을 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질의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구 사장은 9일 국감에서 "사장이기 때문에 보도국을 포함한 여러 부서에서 보고를 받는데 이를 바탕으로 실국장회의에서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천정배 의원은 "우리은행의 YTN 주식 매각에 대해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아무 데도 발설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회사 간부들이 이를 알고 구 사장에게 말을 하느냐"고 반문한 뒤 "이는 이 정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음모"라고 우려했다. "절대 외부로 나갈 수 없는 정보"인 우리은행 내부 YTN지분 관련한 사안을 구 사장이 이를 언급했다는 것은 정권 내부에서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노종면 YTN지부 지부장(오른쪽에서 두번째) 옆으로 구본홍 YTN사장이 지나가고 있다. ⓒ곽상아

구본홍 "낙하산 사장은 전문성, 경력 없는 사람이 힘에 의해 임명되는 것"

이날 국정감사에서 구사장은 '낙하산 사장'을 "전문성이나 경력이 없는 사람이 힘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구 사장은 스스로가 '낙하산 사장'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적어도 '힘에 의해 임명된' 사람이라는 점은 국정감사를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났다.

YTN 사장 인선 과정은 물론 인선 뒤에도 청와대 쪽과 방통위가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낙하산 사장'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 YTN에 대한 '관여' 표현에 대해 청와대와 방통위가 반발할 수도 있으나, 과거 청와대 관계자의 전화 한 통에 광우병 위험을 다룬 EBS <지식채널ⓔ> 와 이동관 대변인의 엠바고 요청을 풍자한 YTN <돌발영상>이 각사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었다가 복구된 점을 미뤄보면 전화를 넘은 '만남'은 충분한 관여라고 짐작된다. 우연히도 이들 방송사 모두 '낙하산 사장'에 대해 처절한 투쟁을 한 적 있거나, 하고 있는 방송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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