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사매거진 2580… 오랜만에 MBC가 고맙다”

16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이하 <2580>) ‘끝나지 않은 2000일의 비극’(취재 이호찬 기자)을 본 한 트위터리안이 남긴 말이다. <2580>은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벌어진 우리 사회 갈등의 한 축이었던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뤘다.

▲ 16일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

지난 13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정리해고는 유효했다’면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국제금융위기와 매출 급락으로 인해 자금난이 확대돼 불가피하게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었으며, 희망퇴직 권유 등의 방법으로 정리해고 회피 노력을 했다는 회사 주장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다.

<2580>은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13일 오후,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얼굴을 비추며 시작했다. 이들은 올해 2월 7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받아냈으나 이번 대법원 선고로 인해, 2000일 간 이어져 온 복직투쟁은 끝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회사가 2646명의 인원을 잘라내겠다는 대규모 정리해고안을 발표해, 본격적으로 ‘쌍용차 사태’가 시작됐던 지난 2009년 5월, <2580>은 해고노동자 고동민 씨 집을 방문했었다. 파업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빠와 떨어지기 싫다며 울음을 터뜨렸던 5살 꼬마 이든이가, 어느새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어 있는 모습은 무심히 흐른 2000일의 시간을 가늠하게 해 주는 장면이었다.

<2580>은 대량 정리해고로 인해 삶이 통째로 바뀐 노동자들을 조명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려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를 짚었다.

고동민 씨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라고 하면 당연하게 겪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피해와 불명예를 벗고 싶다고 고백했다. 일자리를 구할 때 쌍차 얘기만 나오면 ‘바로 아웃’이 됐던 일화를 덤덤하게 털어놓았던 최성국 씨의 바람도 같았다. “옛날처럼 동료들하고 같이 현장에서 웃으면서 같이 일하고 싶은 것밖에 없다”

▲ 16일 시사매거진 2580 방송

이날 방송에는 경영상의 이유로 ‘중대 결단’을 내린 사측에 항거하는 노동자들을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도 고스란히 담겼다. 정부는 2009년 7월 20일부터 8월 5일까지 1154명의 인원을 투입해 노동자들을 진압했다. 살인 등 강력사건 용의자를 대상으로 한정적으로 쓰는 ‘테이저건’을 사용하고 곤봉을 휘둘렀다. 최성국 씨는 세 번이나 기절했고 정신을 차려 보니 경찰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하반신 마비를 겪었던 그는 다행히 움직일 수 있게 됐으나, 매일 ‘살을 도려내는’ 전신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폭력적인 진압작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 년간 정신병동에 가게 된 노동자도 있었다. 형과 함께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계영대 씨는 고통과 아픔을 술로 이겨내려고 하다, 과대망상 증상에 시달려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 주치의는 ‘혼란과 좌절이 중첩됐던 그 시간에 사로잡혀 있다’고 설명했다.

<2580>은 2심 판결을 뒤집고 회사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의 쟁점을 소개하며, 이와 함께 갈리는 노사의 극명한 입장을 같이 다뤘다. 이상구 쌍용차 법무실장은 “회계 조작설이라든가 기획부도 의혹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들을 대법원이 인정했다고 보시면 되겠다”며 “기업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어떤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했고, 해고노동자 가족 권지영 씨는 “해고되고 나서 갈피를 못 잡고 돌아가셨던 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그것을 ‘환영’이라 얘기할 수 있나 그런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 16일 MBC 시사매거진 2580 방송

<2580>은 “대법원의 판결로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법적 판단은 사실상 끝난 걸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논의엔 다시 불이 붙을 공산이 커졌다. 기업도 노동자도 함께 사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간이 돌아왔다”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MBC가 고맙다”

MBC는 김재철-김종국-안광한 사장으로 오며 불공정보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세간에서 ‘MBC뉴스 자체가 재앙’이라는 조소가 나오는 상황이지만, 이날 방송을 통해 민감한 노동 이슈를 시의성 있게 보도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은 “MBC에 고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삼성 노조 결성 및 대선 기간 투표시간 연장 관련 기사가 대폭 축소되고, MB정권과 맥쿼리의 관계를 다룬 영화 <맥코리아> 소개나 인혁당 피해자 유족 및 4대강 비판 인터뷰가 빠졌으며, 국정원 아이템은 아예 '불방 조치'까지 됐던 <2580>에서 해당 보도가 나온 것만으로 의미가 깊다.

한 트위터리안(@pol********)은 “MBC 시사매거진 2580... 오랜만에 MBC가 고맙다”고 말했고 다른 트위터리안(@cre*****)도 “아주 오랜만에 MBC를 본다. 시사매거진 2580. 쌍용차사태 2000일..”이라고 전했다.

“개콘 웃는 소리 속에 잠이 들었다가 깨보니 2580 화면 속에서 남자들이 울고 있다”(@kan**********)며 안타까워 한 이가 있었는가 하면, “대법판결은 났지만 그래도 2580에서 쌍차를 다루어준 건 다행이다. 그들의 싸움이 마무리 된 게 아니기 때문. 그들의 고된 싸움을 누군가는 잊지 않고 누군가는 이제라도 알 수 있기를. 쌍차, 힘내라. 잊지 않고 함께 갑니다”(@roc*********)라며 다시금 결의를 다진 이도 있었다.

해고노동자 이창근 씨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2580> 제작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MBC 2580 오늘 방송내용을 알지 못한다. 최종 어떻게 편집되고 어떤 부분이 잘렸는지도 모른다. 방송내용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MBC상황에서 쌍용차 아이템 자체가 도전이었을 것이란 점은 분명히 안다. 그 노력과 눈빛, 우린 기억한다”며 “방송 내용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아쉬운 부분과 촬영 했지만 방송 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방송으로 또 한 번 노동문제 알려 준 점, 무척 고맙다. 아쉬운 부분은 우리가 채울 몫으로 남겨달라. 고맙습니다”라고 밝혔다.

▲ 16일 시사매거진 2580에 나온 해고노동자 고동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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