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에서 일찌감치 개봉하여 제법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했던 <아더 우먼>은 한 남자에 대한 세 여자의 복수를 다룬 코미디입니다. 전형적인 주부인 케이트는 칼리가 난데없이 집을 방문하면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우여곡절을 거쳐 친구가 되는데, 알고 보니 이 남자는 또 다른 여자와도 만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급기야 케이트와 칼리는 새파랗게 어린 앰버까지 멤버로 합류시키면서 처절한 복수를 준비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더 우먼>은 딱 요란법석 코미디 영화일 거 같습니다. 여자 셋이 남자 하나를 놓고 통쾌한 복수극을 벌인다고 하니 다른 걸 바랄 필요가 있나요? 사실 제가 굳이 <아더 우먼>을 택한 것도 시름을 내려놓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감독이 닉 카사베츠라고 해서 약간 의외긴 했습니다. <존 큐, 노트북, 마이 시스터즈 키퍼> 등의 전작은 코미디와 거리가 있거든요. 작정하고 코미디로 연출했을지 궁금했는데 역시나 그는 이 영화를 마냥 시끌벅적하고 가벼운 연출로 일관하진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케이트와 칼리가 가까워질 무렵부터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라면 서론을 건너뛰고 두 여자가 얼른 친해져서 복수극을 계획해야 하는데, <아더 우먼>은 케이트와 칼리의 관계가 진전하면서 나누는 대화를 진득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순간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지루하다고 느꼈지만 이내 두 사람의 심정에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중년)여자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비애 같은 거 있잖아요?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케이트는 내조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로 살았는데 돌아오는 건 외도였습니다. 남편이랑 섹스라도 한번 하려면 한참을 준비해야 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떠드는 건 듣는 척도 하지 않습니다. 이걸 보면서 공감하실 관객이 많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인 칼리라고 해서 특별하게 다를 건 없습니다. 직장인으로서의 그녀는 돈을 잘 벌고 유능하지만 여성으로서의 그녀는 젊디젊은 여자에게 밀리는 처지입니다. 의도적이진 않으나 남자로 하여금 칼리를 밀어내고 자신에게 오도록 한 앰버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남자가 환장하는 '쭉쭉빵빵'이지만 나이를 먹고 시들면 외면을 받고 말 겁니다. <아더 우먼>의 세 여자는 이렇게 물고 물리는 관계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케이트를 비참하게 만든 칼리와 앰버가 최소한 정신은 제대로 박힌 여자라는 것입니다. 둘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고 죄다 관계를 정리하여 케이트를 위로하면서 연합군을 결성합니다. (유부남인 걸 알면서도 사귀는 파렴치한 여자도 있으니 이 정도면 다행이죠?)

<아더 우먼>의 세 여자 중에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건 역시 케이트입니다. 좀 과도하게 수다스럽고 푼수 같은 캐릭터로 그린 걸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공감을 얻기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남편을 증오하고 복수를 꿈꾸면서도 달콤한 거짓말에 순간 흔들려서 갈등하는 대목 같은 건 사랑에 빠진 여자의 순박한 심리가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앞에서는 부인을 상냥하게 대하지만 뒤에서는 딴짓을 일삼고 있는 남자를 보는 것도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난 남잔데 왜 이런 것에 공감하는 거지?) 먼저 개봉한 <나를 찾아줘>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일 것 같네요.

애석하게도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잡던 <아더 우먼>은 앰버를 만나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지나치게 캐릭터와 이야기를 단순화킵니다. 칼리의 직업을 변호사로 설정한 이유도 그렇고, 여자의 애처로운 일생을 위로했으나 동시에 복수극을 다루려는 욕심이 더해지면서 흔하디흔한 코미디로 갈음하고 맙니다. 물론 대리만족을 안기려면 통쾌한 복수는 불가결하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시간에 쫓긴 성급한 전개와 마무리는 아쉽습니다. 반대로 저 남자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를 기대하시는 여자 관객이라면 <아더 우먼>을 보고 만족하실 수 있겠습니다. 저는 좀 안쓰러웠지만요.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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