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방송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악덕 기업’일 뿐입니다”. JTBC에서 컴퓨터그래픽(CG) 업무를 하다 갑작스레 해고된 프리랜서 허 아무개 씨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JTBC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링크) <경향신문>에 따르면, 허 씨는 SBS아트텍에서 스카웃 돼 JTBC에서 일을 하게 됐다. 업무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팀에서 일하던 프리랜서 A씨가 노동청에 퇴직금을 지급신청하자 그 팀 전원이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비정규직의 전형적 처지, ‘갑’과 ‘을’의 이야기였다.

▲ 9월 1일자 '경향신문' 8면 기사
손석희 JTBC <뉴스룸>에서 ‘갑을관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시리즈’ 보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패션계의 비정상적인 ‘갑을’의 문제들을 고발했다. 도제식 패션업계에서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견습’이라는 이름으로 교통비도 안 되는 10만원 월급을 받고 착취당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원치 않는 피팅모델까지 하게 되면서 성추행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갑을관계 부조리’를 조명하는 이 시리즈의 연장에서 지난 12일에는 이랜드 사태를 다룬 영화 <카트>의 주인공 배우 염정화 씨와 제작자 심재명 대표가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JTBC에서 해고된 허 아무개 씨의 사연은 <카트>의 그 주인공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랜드 사태 다룬 영화 <카트> 등 ‘갑을’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JTBC

지난 2007년의 이랜드 사태는 비정규직 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2007년 이랜드 계열의 홈에버와 뉴코아에서 계산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비정규직보호법)>과 관련해 민주노총·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해당 법안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등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참여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라는 이유로 강행했다. '이랜드 사태'는 그 법안이 시행된, 그 해 여름 터졌다. 스머프라고 불리던 마트 해고 노동자들의 파업은 511일 간 계속됐다.

▲ JTBC '뉴스룸'에서 이랜드 사태를 다룬 영화 '카트' 제작자 명필름 심재명 대표와 주인공 염정화 씨를 만났다(사진=화면캡처)
정치인들의 영화 <카트>에 대한 발걸음이 재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1일 을지로위원회의 주도로 단체관람을 했다. 이 자리에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비대위원 등 지도부가 총출동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비정규직차별개선포럼은 14일(오늘) 한국노총과 함께 국회에서 상영회를 개최한다. 포럼의 대표는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맡고 있으며 당 지도부가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 <카트> 흥행에 따른 ‘비정규직’ 문제를 어느 당에서 선점하느냐 눈치보기가 시작됐다는 평가까지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은 이 대책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 대책”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방송계 역시 가장 익숙하게 그리고 다양한 비정규직 문제를 앉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방송계에는 '이랜드 사태'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2009년 KBS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42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 380여명을 자회사로 이관시켜 간접 고용하거나 해고할 방침을 밝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KBS 드라마 FD(연출보조)로 일했던 오진호 씨의 사연은 <조선일보>에서도 소개될 정도였다. 국회 문방위(현 미방위)에서 비판이 거셌지만 당시 KBS 이병순 사장은 “KBS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방만경영”이라고 주장했다. KBS가 138억 원의 흑자를 냈다고 홍보하던 때였다. 결국, KBS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1년 8월이 되어서야 ‘전원 복직’이 결정됐다.

비정규직 그리고 갑을관계, 방송사라고 다를까?

<경향신문>이 JTBC에서 해고된 프리랜서 허 아무개 씨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별도의 기사를 배치해 방송사 내 프리랜서로 불리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를 전했다. 방송사 내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대부분 프리랜서로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MBC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2007년 CG담당 인력 전원을 프리랜서로 전환했고, YTN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향은 방송사 내 프리랜서의 현주소를 ‘소모품’이라고 규정했다. 방송계 비정규직은 이처럼 일상적이다. 작가는 물론 스타일리스트, 조명·음향·카메라 등 이른 바 새끼 스태프들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새끼작가의 주 업무는 자료조사와 섭외 등 숨 쉴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들의 월수입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보조작가’의 수입은 그보다도 밑이다. 2014년의 JTBC는 2009년 KBS에서 한 걸음도 오지 못했다.

▲ 2009년 6월 24일 오후2시에 진행된 'KBS는 비정규직 대량해고 방침을 철회하고, 정규직 전환에 나서라!" 기자회견ⓒ미디어스
JTBC에서 해고된 허 씨는 부당함을 주장하며 노동위원회의 구제를 신청했고 다행히도 지난 12일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아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냈다. 그리고 <경향신문>은 14일 기사를 통해 “방송사 프리랜서 CG 디자이너가 노동위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아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이번 결정은 단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시간외수당·퇴직금 등 근로자로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당수 방송사 프리랜서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맞다. 그리고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JTBC의 행보에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JTBC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는 명필름 심재명 대표에 “이 질문을 꼭 드려야 한다는 요청도 있었다”며 “영화 <카트>에서 ‘갑을관계’를 이야기하는데 갑을관계하면 영화계가 대표적이더라. 어떻게 받아들이냐?”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묻고 싶다. ‘갑을관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시리즈’를 보도하고 있는 손 앵커에게 같은 물음을 던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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