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라는 영화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화제 때문이었습니다. 늘 참석하던 영화제에서 그렇게 길게 늘어선 인파를 보는 건 드물거든요. 줄거리를 읽으면서 십대 청소년이 뜨거운 관심을 가질 영화는 아닌데 왜 이런지 의아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엑소의 멤버가 출연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영화가 아니라 배우에 쏠린 관심이 씁쓸하기도 한편, 덕분에 저처럼 <카트>라는 영화를 알게 되는 효과도 있으니 마냥 부정적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카트>는 또 하나의 의외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천우희, 디오 등이 출연하는 상업영화에서 다룬다는 점이 그랬습니다. 독립영화에서는 간간이 봤지만 극장개봉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는 상업영화가 이런 민감한 소재를 본격적으로 내세웠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반면에 큰 기대는 하지 말자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아무래도 상업영화니 본질로 깊이 들어가는 대신 적당히 버무려서 드라마로 그리는 데 그칠 줄 알았습니다. 제아무리 부지영 감독이 인권영화를 연출했던 경력이 있더라도 판세가 달라진 곳에서는 물러설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기분 좋게도 이 예상은 어느 정도 무너졌습니다. <카트>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사이의 중간지점에 서길 바라면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아서 소재가 가진 성질에 따른 우려로 관객이 무조건 기피할 영화는 아닙니다. 보기 전에는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또 의외였으나 제가 본 <카트>는 오히려 더 진지하게 다루길 바랐습니다. 일부 감정적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것이나 냉정하고 암담한 현실의 민낯을 여지없이 담아내지 못했지만, 상업영화에서 이 이상을 바란다는 건 욕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재부터가 자칫 관객에게 큰 거부감을 줄 수 있으니 지금의 이야기와 연출 정도라면 균형잡기가 성공적이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카트>에서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인물 하나하나를 소중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입니다. 실상 이 영화는 비정규직 문제의 근원이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구가 아니라, 그로 인해 피해자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자 사회적 약자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카트>는 염정아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인물을 허투루 다루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가 관객에게 바라는 건 마지막에 염정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호소하는 말, 즉 "우리가 바라는 건 얘길 좀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우릴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와 직결됩니다. 이것이 목적이라면 <카트>는 아마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것 같습니다.
★★★★
덧) <카트>는 대기업 위주의 불공정한 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군소 기업들이 모인 대안배급사 리틀빅픽처스의 영화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관능의 법칙>을 제작하면서 국내 최초로 모든 스탭들과 표준계약서를 작성했던 명필름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뜻 깊은 배경도 있는 만큼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