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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대법판결과 진보운동의 무기력 그리고 한국 사회우리는 여전히 '전태일의 기일'과 '박정희의 생일' 사이에 있다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11.14 11:03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노동자들이 510일 동안이나 벌였던 파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카트>에 나오는 한 관리자의 대사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5일 <한겨레>에 실린 <영화 ‘카트’의 투명인간>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 대사에 대해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시절 쉽게 엿볼 수 있는 사용자들의 생각이었다”라고 덧붙였다. 
 
   
▲ 목포 MBC PD 출신 김경찬씨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해 화제다. 사진은 오는 13일 개봉하는 카트 포스터. (연합뉴스)
 
영화 <카트>는 ‘전태일의 기일’인 11월 13일에 맞춰서 개봉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44년이 내려진 시점에 나온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여전히 ‘사용자들의 생각’이 ‘사회적 상식’인 사회의 풍경을 보여준다. 대법원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경영상 긴박하게 필요했으며, 경영진이 해고를 피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인정했다. 해고노동자 측이 제기한 경영상 위기 문제, 인력규모 산정의 문제, 손상차손의 과다 계산 문제, 회계조작 관련 문제 등에서 모두 회사 측의 입장을 수용했다. 
 
공교롭게도 ‘전태일의 기일’의 다음날은 ‘박정희의 생일’이다.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에서 태어난 한 독재자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현재 한국 사회의 질서를 형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일각에 흐르는 약간의 풍요가 그의 공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1970년 11월의 전태일의 죽음은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도 큰 충격이었다. 1971년 신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유력한 야당 정치인인 김대중은 ‘전태일 정신 구현’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해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김대중의 장충동 유세 때는 당시 서울시민 500만명 중 100만명이 몰렸다. 박정희 정권은 국가예산의 10%를 대선자금으로 쓰고 “문둥이는 문둥이를 찍어라”는 노골적인 지역감정 선동을 했음에도 결과를 안심하지 못했고 개표 부정마저 의심하게 하는 선거를 치렀다. 두 후보의 격차는 94만표였는데, 전남의 무효표는 서울의 무효표보다 두 배나 많았다.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과 조합원들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이날 쌍용차 해고노동자 노모(41)씨 등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연합뉴스)
 
이는 박정희가 군사쿠데타 이후 대선에 나왔음에도 1963년에 윤보선을 근소하게, 1967년에는 좀 더 큰 격차로 이긴 상황과도 달랐다. 1960년대의 시민들이 박정희가 내세운 조국 근대화와 경제성장이란 슬로건에 일정 부분 동조를 했다면, 1970년대의 시민들은 ‘사람을 갈아넣는’ 방식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이 아닌 다른 방식의 경제에 대한 희구를 지녔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된 배경에는 전태일이 있을 것이나, 박정희는 멈추지 않았고 1972년 10월 유신을 선언한 이후 자신이 만들어낸 ‘질서’를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전태일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시민들은 이 사회의 방향 전환을 고민했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그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폭력으로 강행돌파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고개를 돌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질서’의 세상에 살고 있다. 한 명의 분신에 충격을 받았던 그 한국 사회는 사라지고 우리는 수십 명이 죽어가도 응답하지 않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하루 아침에 2600명을 해고하고 5년 동안 스무 명이 넘는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이 죽어가도 이렇게 응답한다.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
 
우리는 여전히 ‘전태일의 기일’과 ‘박정희의 생일’ 사이에 위치한다. 1987년의 민주화는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사이의 결별 위에서 성립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노동운동마저 특정 세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것으로 고립되었다. 하종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민주노총의 역할이 영화 <카트> 곳곳에 구체적으로 묘사됐다면 어떠했을까? 영화를 보며 반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슬픈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46일이나 단식을 했을 때도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것을 이유로 ‘골수노조원’이 ‘노조’를 ‘배후’에 두고 ‘정치적 의도’로 단식을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5일자 한겨레 30면에 실린 하종강 칼럼
 
영화 <카트>에서 ‘투명인간’이 된 민주노총이 세상을 바꾸는데 역할을 해왔다는 하종강의 지적은 물론 옳지만 오늘날의 민주노총이 교두보로써 충분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가진 기득권 그 이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조직노동과 진보정당 운동의 파행은 각종 활동을 ‘개인’의 이름으로 전개하게 하는 원인이 되며 그런 활동의 결과 조직은 점점 더 약화된다. 투쟁할 때마다 발생하는 해고자를 상근자로 고용해야 하는 민주노총은 후세대를 고용할 때는 ‘88만원 세대’ 취급을 하게 되고 한국노총보다 나쁜 고용조건을 제시하는 그 세대 노동운동은 다시 한 번 후세대로부터 원망을 듣는 실정이다.  
 
물론 누군가가 잘못했다고 단죄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단은 대법원의 외면으로 제도적 해결의 가능성이 난망해진 그 해고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것은 아니라는 위안을 주는 일이 필요하다. 47억 손배소도 모자라 110억 구상권 소송을 제기하는 회사에 맞서 작년의 시민사회는 ‘노란 봉투’ 운동을 보여줬다. 시민들의 자율성을 긍정하면서도 조직노동에 대한 혐오를 방치하지는 말고 다른 종류의 조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하나마나한 소리들일 수밖에 없지만, 그 ‘하나마나한 소리’들을 방치하고 어떤 종류의 ‘묘수’를 찾아온 태도가 지난 십여 년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의 약화를 부채질해온 것이 사실이다. 당을 찢었다 붙였다 찢었다 하면서 할 일을 했다 자위할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씨앗’ 뿌리고 ‘뿌리’내리게 하는 소소한 실천들의 총합이 필요한 때이다. 옆 사람을 보듬는 것과 진보운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생각할 때다. 우리는 여전히 ‘전태일의 기일’과 ‘박정희의 생일’ 사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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