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설’ 등의 ‘악플’(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고 최진실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해묵은 이슈였던 악플이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오른 가운데, 우리사회의 악플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민언련, 언론연대, 참여연대 등 6개 시민단체가 주최한 ‘악플문화 극복을 위한 합리적 대안 모색’ 토론회가 8일 오후 서울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망법) 개정에 고 최진실씨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정책입안자들이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 없이 규제일변도로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악플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정부 규제보다 △댓글 가이드라인·핫라인 구축 등 사업자의 자율규제 △교육 △장단기 과제를 통한 인터넷 사회계약 달성 등이 제시됐다.

다음은 토론회 참석자들의 주요 발언이다.

강장묵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규제와 검열’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를 정말 세련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입법 의원들은 창의력이 너무 없다. 네트워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제하려다보니 손쉬운 방법들만 떠올린다.

현재도 댓글 옆에 ‘신고하기’가 있지 않느냐. 입법하는 의원님들도 인터넷 체험 좀 해보고 네트워크를 다뤄주시라.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왜 이렇게 정부가 직접 규제하려고만 하나.

지금 외국에서 필터링(악플 발생시 자연적으로 사라질 수 잇는 기술) 기법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전세계인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없고, 인터넷사이트의 회원 가입도 편하다. 이메일만 가지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외국 사이트에 왜 ‘포르노그라피’ 같은 야잡한 글들이 없을까. 걔네들이 선량하고 문화적으로 앞선 민족들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규제가 너무 과도하다.”

박주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경찰에서 모 포털에 ‘쥐박이’(이명박 대통령의 별명)라는 단어가 들어간 댓글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이버모욕죄 신설되면 고소·고발없이 이런 식으로 검색한 다음에 해당 글을 작성한 네티즌들을 다 처벌할 수 있다. 앞으로 오히려 네티즌들이 ‘모욕죄에 해당 안돼야 마음놓고 퍼갈 수 있으니 검열을 먼저 해달라’고 하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벌어질 수 있다.”

김성곤 인터넷기업협회 실장

“요즘 규제 이슈들이 워낙 많아서 진짜 힘들다. ‘악플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도대체 사업자들은 뭐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댓글 옆에 신고하기를 마련했고, 글 펼치기 기능을 통해 댓글 보고싶지 않은 사람들은 안 보게 했다. 자체 모니터링도 하고 외부에서 문제있다는 말이 들어오면 삭제처리도 했다. 이게 지나치면 ‘검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 마저 있다.

사업자끼리 몇달 전부터는 악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정부는 제발 되도록 입법만능주의를 탈피하고, 사업자들이 자율규제할 수 있게 해달라.

악플 해결 방법은 교육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순진한 얘기라고 생각하시나? 그렇지 않다. 학교 교과과정에서 교육을 많이 하고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 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된 지 10년 넘었는데 정부는 그간 얼마나 교육에 투자했나.”

김보라미 법무법인 문형 변호사

“‘악플’은 매우 모호하고 다양한 개념이다. 악플의 유형에는 허위사실, 명예훼손, 욕설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지금 현행법으로도 처벌가능하다. 악플은 어제오늘 일인가. 지금 문제는 악플이 아니라 정부측이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거다. 정부가 고 최진실씨를 이용해 ‘망법 개정안 밀어부치기’를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최씨를 모욕하는 짓이다. 이건 정부가 추진하려는 ‘사이버모욕죄’보다 더 심각한 모욕죄다.

우리나라 인터넷사업자들은 굉장히 이기적이다. 사업자들이 자율규제하면 되는데, 자기들은 조금도 손해를 안 보려고 하는 이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권리침해를 당한 사용자들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이창범 법제분석팀장(플로어)

“사업자들이 자율규제하게 해달라고?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사업자들이다. 사업자들은 자율성을 방치하고 있다. 포털들은 과거부터 지속돼온 이런 문제에 대해 ‘조치를 만들고 있는 중’ ‘앞으로 하겠다’고 했었다. 당시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 만들겠다면 공짜로 만들어주려고 했었는데, 지금 몇년이 지났어도 하지 않고 있다. 사업자들이 근본적인 대책은 안세우고 시늉만 한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규제하겠다고 하니까 사업자들도 가이드라인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

“악플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단계적 제안을 드리겠다. 먼저 악플에 대한 개념 규정, 인터넷 규제 효과 검증, 사례 분석 등에 들어가자. 그래서 사업자 주도의 거버넌스(governance·협치) 체제를 만들자.

실제로 유럽연합은 2012년까지 장기적인 계획 하에 이를 하나씩 실행하고 있고, 시민사회 핫라인도 가동하고 있다. 시민 스스로가 신고할 수 있는 기능도 계속해서 교육하고 있다. 교육적 측면은 장기과제에 해당한다. 이 부분을 정부가 주도하면, 시민사회가 내용을 채워간다.

6개 시민단체가 준비한 이번 토론회에서부터라도 이런 논의에 대한 불을 댕겨야 한다.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지금부터라도 실천해 나가자. 결국 목표는 인터넷에서 사회계약이 맺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모델을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가 무엇을 해서 내려줘야 한다는,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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