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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노동자'의 죽음[기자수첩] 한국 사회가 기억하는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에 관해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11.11 17:01

입주자의 부당한 대우에 고통받던 한 경비노동자가 분신해서 죽음에 이르고 그것에 사회가 분개하는 과정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파트단지에서 온갖 잡일을 하는 그 경비노동자의 직군은 왜 때문인지 업무강도가 낮은 ‘감시적 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되어 최저임금 지급의 예외대상이 되어 있다. 원래는 2012년부터 사라질 예정이었던 이 예외조항은, 전국입주자대표자회의연합회가 최저임금이 적용될 경우 전국 12% 정도에 달하는 경비노동자들을 해고할 것이라 협박한 탓에 최저임금 100% 적용이 3년이나 유예되어 왔다. 
 
또 상당수의 경비노동자들은 간접고용의 상황에 처해 있다. 간접고용은 층층상하의 갑을관계와 불공정한 용역계약서를 만든다. 사건이 터진 후 용역 회사의 계약서에 노조활동 행위 금지, 모든 법률상 민형사상 문제에 대한 사용자 책임 회피 등의 조항이 들어있음이 다시 이슈화되기도 했다. 
 
게다가 사람을 직접 대하는 감정노동자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학대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저임금 감정노동자의 입지는 ‘계층적’이라기보단 차라리 ‘신분적’이다. 그 경비노동자의 죽음에는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문제들의 맥락이 중첩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한 아파트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동조합원들이 경비노동자 분신사고와 관련 재발 방지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그 죽음에 대한 사회의 분개에서도 우리 사회의 문제는 보인다. ‘가해자’ 내지 ‘범죄자’라는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그렇게 해석될 만한 사건들이 주로 이슈화된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도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해자’ 내지 ‘범죄자’를 몇몇 개인으로 특정할 수 있는 일에만 곧잘 흥분한다. 이 경우엔 경비노동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그 ‘사모님’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경우도 있다. 가령 고 신해철의 의료사고 의혹과 같은 것은 의사 개인에 대한 대중적 분개없이는 제도의 개혁도 어렵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제도를 만들어내고 근대적 사회를 구성하기 전, 구석기시대 부족의 인간관계에 적응하면서 구성되어 있다고들 한다. 근대 사회나 제도가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별도의 교육이 없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그 ‘무지’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조장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노동법의 권리를 가르치지 않고, 언론 역시 사회적 갈등을 개인들의 탐욕이 부딪히는 문제로 치환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탐욕,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탐욕이 신문 지상에 등장한다. 경비노동자와 입주민의 ‘신분적 관계’를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는 묻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을 욕했다고 하면 감정이입이 되지만, 경영혁신을 위한 대량해고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나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감정노동을 하더라도 그들을 학대하는 주체가 ‘막말’을 하는 손님이라기 보단 그 고용조건을 만든 기업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문제가 되더라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란 단어가 발화되면, 갑자기 단순한 감정의 표출로 선악을 가를 수 있었던 사안들도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귀찮아지며 회피하고 싶은 일이 된다. 추상화된 어휘나 대의들은 우리의 삶과 큰 관련이 없는 것이 되고 그 대의 뒤편에 실은 이기심을 가진 무리들이 있다는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다시 한번 ‘사람’의 단위로 내려가보자. 여기저기서 단말마의 비명소리와 만성적 고통의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고 흘러나오는 작금의 한국 사회는, 과연 이대로 유지가능한 것인가?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기적을 동시에 이뤘다고 하는 사회에서, 어째서 경제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의 숫자는 더 늘어났고 사람같지 않은 대접을 받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는가? 
 
중국 중앙정부의 입장을 옹호하게 된 홍콩 배우 성룡이 무명시절 그토록 도움을 받았다고 칭찬한 한국 사회의 그 ‘인심’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어려운 이에게 무료로 밥을 주던 이들의 사회가 수십년 후 먹을 수도 없는 것을 재미로 던져주는 사회가 되었다면 그 ‘사람’들의 변화의 뒤편에 있는 것은 뭘까? 
 
경비노동자의 죽음은 우리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분개의 감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대처로 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지 오래다. 그런 상황이라면, 이 죽음들을 만들어내는 것, 이 죽음들 중 특정한 죽음들만 지각하게 하는 것의 기제가 무엇인지를 물어야만 한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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