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는 영화 제목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변용하여 ‘죽은 창작뮤지컬의 사회’,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죽은 대형 창작뮤지컬의 사회’라고 시니컬하게 표현하는 게 맞을 듯싶다.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같은 스테디셀러 뮤지컬, 초연보다 재연의 진화가 두드러진 <모비딕>과 같은 성공적인 창작뮤지컬은 중소형 뮤지컬이다.
야심차게 기획한 <디셈버>나 <파리의 연인>과 같은 좌초 사례, 아니 2000년대를 풍미했던 대형 창작뮤지컬들이 뮤지컬로 재연되지 못하는 사례를 열거하다 보면 요즘 같은 시기에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는 건 라이선스라는 대형 공룡에 맞서는, 가히 ‘독립운동’에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대형 창작뮤지컬이 말라죽어가는 걸 막아준 단비 같은 뮤지컬이 <프랑켄슈타인> 이전 작년에 이미 태동했다. 뮤지컬 <그날들>이다. 어떤 이들은 이 뮤지컬을 관람하기도 전에 고 김광석의 노래와 <그날들> 속 경호원 이야기가 과연 궁합이 맞겠느냐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뮤지컬은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현재 시점에서의 대통령 딸의 실종은 20년 전 정학과 무영이 경호했던 그녀의 실종과 오버랩한다. 20년 전과 지금 사건의 공통된 주인공 정학은 대통령 딸을 추적하는 가운데서 20년 전 친구 무영과 사라진 그녀의 단서들을 하나둘씩 찾아가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녀가 남긴, 혹은 무영이 남긴 단서들을 퍼즐조각처럼 맞춰가며 정학은 20년 전에 놓친, 혹은 경호원이라는 삶의 세파에 찌들어 잊고 있었던 그녀와의 짝사랑에 대해 아름답게 회고할 수 있었으리라.
초연 당시도 그렇지만 <그날들>은 한국 창작뮤지컬에 있어 주크박스 뮤지컬의 시금석을 마련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실커튼을 활용한 투사 방식은 획일적인 투사 기법에 익숙한 무대 활용법에 자극을 줄 만한 획기적인 시도이면서 말이다. 산 자와 산 자의 해후, 산 자와 죽은 자의 아름다운 해후가 김광석의 아련한 정서와 성공적으로 녹아드는 데 성공한 <그날들>은 창작뮤지컬의 후발 주자에게 신선한 자극과 롤 모델로 당분간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