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는 영화 제목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변용하여 ‘죽은 창작뮤지컬의 사회’,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죽은 대형 창작뮤지컬의 사회’라고 시니컬하게 표현하는 게 맞을 듯싶다.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같은 스테디셀러 뮤지컬, 초연보다 재연의 진화가 두드러진 <모비딕>과 같은 성공적인 창작뮤지컬은 중소형 뮤지컬이다.

야심차게 기획한 <디셈버>나 <파리의 연인>과 같은 좌초 사례, 아니 2000년대를 풍미했던 대형 창작뮤지컬들이 뮤지컬로 재연되지 못하는 사례를 열거하다 보면 요즘 같은 시기에 창작뮤지컬을 만든다는 건 라이선스라는 대형 공룡에 맞서는, 가히 ‘독립운동’에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대형 창작뮤지컬이 말라죽어가는 걸 막아준 단비 같은 뮤지컬이 <프랑켄슈타인> 이전 작년에 이미 태동했다. 뮤지컬 <그날들>이다. 어떤 이들은 이 뮤지컬을 관람하기도 전에 고 김광석의 노래와 <그날들> 속 경호원 이야기가 과연 궁합이 맞겠느냐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 뮤지컬 ‘그날들’ ⓒ박정환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아바의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 가운데서 ‘아버지 찾아 세 아저씨를 헤집는 막장 프로젝트’가 아바의 흥겨운 노래와 100% 궁합이 맞겠는가. 잘 짜인 서사와 김광석 노래의 정서를, 억지춘향이 100% 배제되었다고는 언급하지는 못하더라도 효율적으로 끼워 맞추는 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뮤지컬이 <그날들>이다.

뮤지컬은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현재 시점에서의 대통령 딸의 실종은 20년 전 정학과 무영이 경호했던 그녀의 실종과 오버랩한다. 20년 전과 지금 사건의 공통된 주인공 정학은 대통령 딸을 추적하는 가운데서 20년 전 친구 무영과 사라진 그녀의 단서들을 하나둘씩 찾아가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녀가 남긴, 혹은 무영이 남긴 단서들을 퍼즐조각처럼 맞춰가며 정학은 20년 전에 놓친, 혹은 경호원이라는 삶의 세파에 찌들어 잊고 있었던 그녀와의 짝사랑에 대해 아름답게 회고할 수 있었으리라.

▲ 뮤지컬 ‘그날들’ ⓒ박정환
20년 전 그녀를 무영과 함께 사랑했던 삼각관계 러브라인과, 그녀와 친구 무영은 왜 사라졌어야 했을까가 매카시즘의 광기 – 이를 테면 군사독재가 허물어진 1990년대라 하더라도 안기부 담을 넘어간 공을 찾으러 안기부 담을 무단으로 넘었다가는 불구가 되어 돌아온다는 도시괴담과도 같은 광기 - 와 버무려져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데, 그 화학작용이 여간 신통하지 않다. 굳이 김광석의 노래를 차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야기 구조에 있어서는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하다.

초연 당시도 그렇지만 <그날들>은 한국 창작뮤지컬에 있어 주크박스 뮤지컬의 시금석을 마련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실커튼을 활용한 투사 방식은 획일적인 투사 기법에 익숙한 무대 활용법에 자극을 줄 만한 획기적인 시도이면서 말이다. 산 자와 산 자의 해후, 산 자와 죽은 자의 아름다운 해후가 김광석의 아련한 정서와 성공적으로 녹아드는 데 성공한 <그날들>은 창작뮤지컬의 후발 주자에게 신선한 자극과 롤 모델로 당분간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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