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제법 관심이 있는 시민들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시점에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별 이해관계가 작동하고 있다. 10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 구성이 완료되고 본격적인 ‘전당대회 준비 모드’로 전환된 것이 원인이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 ‘대선주자’의 당권 선거 참여 허용 문제와 당 대표 선거와 최고위원 선거의 분리 여부 문제다. 그리고 두 가지 쟁점 모두 그 핵심에 ‘문재인’ 의원과 ‘친노’가 개입되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번 당권 선거는 내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2015년 2월에 당권을 잡은 세력이 2년 간 권한을 행사하므로, 2016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거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당대표 선거에 ‘비노계’의 박지원 의원과 ‘범친노계’의 정세균 의원이 뛰어드는 것은 거의 확정되었는데, ‘친노계 좌장’에 해당하는 문재인 의원이 뛰어드느냐가 관심의 대상인 상황이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대위원 2명은 출마가 확실한데, 1명은 모르겠다”고 말한 상황이 아마도 이것을 지칭하는 것일 테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비대위원이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의원이 당권 선거에 나서는 상황은 ‘친노’는 반기고, ‘반노’는 비판하는 것일까. 박지원 의원이 10일 "우리당의 대권후보들이 정책과 아이디어로 경쟁하면서 국민의 인정을 받고, 당원의 검증을 받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당권을 맡게 되면 진흙탕에서 싸울 때는 싸워야 하고, 국민과 당원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 양보할 때는 과감하게 양보해야 하기 때문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의 목표인 집권을 위해서는 분리가 되는 것이 좋다"라고 말한 상황만 살피면 그런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박지원 의원이 말하는 바로 그 논거로 문재인 의원의 당권 도전을 반대하는 ‘친노’ 인사가 많았다는 것이 여의도 정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친노’는 자신들이 당내 주류인 상황에서 대선후보로 생각하는 문재인 의원이 상처입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대선이 가까워진 시점에 다시 등장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의견은 ‘친노’ 내부에서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하면 다시 대선에 나와도 필패다. 문재인 의원이 당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집권을 꾀할 수 있다”는 반론에 부딪혔고 현재 문 의원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상당히 공감하여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역설적으로, 문재인 의원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 ‘박지원 vs 정세균’의 당권 다툼이 너무 허망하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라고 귀띔한다. 말하자면 사실상 이미 ‘친노 일색’이 된 이 당에서 문재인 의원의 출마는 박지원 의원에게 ‘악재’이기는커녕 ‘덜 민망한 패배’를 위한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박지원 의원으로서야 ‘비노 연합’을 만들어 정세균 의원을 고립시켜 승리할 수도 있다고 여기겠지만 ‘친노’들 입장에선 일대일 구도가 되면 너무 싱거운 게임이 될까봐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라고 설명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부터), 문재인, 박지원 비대위원이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사정이 옳다면 문재인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가장 많이 지탄받는 최다 계파의 수장이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도 비판받는 딜레마에 처해 있는 셈이다. 그가 만일 당권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전면에 나서 상처 입지 않은 채로 대권 후보를 날로 먹으려는 심보’라고 비판받을 것이다. 하지만 당권 선거에 나서겠다고 결단을 내린다 해도 ‘당권 먹고 2016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한 후 적당한 시기에 사퇴하고 대선까지 나가겠다는 심보’라고 비판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대 계파인 ‘친노’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그들이 당내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최대 계파가 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친노’라는 것이 대단히 느슨한 규정인지라 그들을 배격하는 일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노선을 재정립하는 일과도, 규율을 정비하는 일과도 무관해진다. 당장 ‘친노’를 말한다 해도 문재인과 안희정의 성향이 다르고 정세균과 우윤근의 성향이 다르다. ‘비노’를 말한다 해도 ‘친노’보다 진보적인 정동영과 중도파를 부르짖는 조경태이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개혁 방향을 ‘친노 축출’로 잡는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요소가 별로 없을뿐더러 현실적인 차원에서 성사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의미한 대안이 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패배의 원인을 ‘친노 전횡’에서 찾는 비평에 일부 동의하더라도 ‘친노 불가론’에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는 이유다.
▲ 7일자 중앙일보 8면 기사
그렇기에, 첫 번째 논점에서 ‘문재인 비토’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두 번째 논점에선 소위 ‘친노’ 계열의 양보의 필요성이 요청된다. 문재인 의원은 7일자 <중앙일보> 8면에 실린 인터뷰에서 "미리 정해진 룰에 따라 (당 대표)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 밝히면서, "룰에 손을 대면 모든 요구가 분출돼 당이 더 큰 분란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를 두고 “최근 당 내 비노(비 노무현) 진영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당 대표·최고위원' 통합선거 움직임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라고 해석했다(10일자 인터넷판).
현재 새정치연합의 당헌엔 '당 대표와 최고위원은 분리해 선출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분리방식일 경우 경선 출마자들은 '당 대표' 혹은 '최고위원' 선거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중앙일보> 기사는 “만약 '강자'들이 대표 경선에서 패배할 것을 우려해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다면 그 자체가 불명예다. 반면 통합선거를 치르면 1위를 못해도 순위에 따라 최고위원이 될 수 있다. 최고위원이 되면 다음 총선의 공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계파 수장들 입장에선 통합선거 쪽이 부담이 작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의원은 “통합선거를 하면 당 대표를 나왔던 분들이 순위에 따라 최고위원이 되기 때문에 우리 당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파벌 정치가 어느 정도 용해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 대표·최고위원 선거 분리·통합 논점에 대한 정파적 유불리를 명확히 표현해준 것이다.
▲ 11일자 중앙일보 8면 기사
상황이 그렇다면 문재인 의원은 당권 선거에 나와 책임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되, 당내 계파갈등을 순화하기 위해 당 대표·최고위원 선거 분리 문제에 있어선 당내 비주류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이 옳다. 문재인 의원은 “친노는 없다”고 줄곧 주장하며 “필요하다면 ‘친노 해체’ 선언이라도 하겠다”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당내 정파란 것은 본인들이 부인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본인들은 그저 신념과 친분에 따라 움직인다 하더라도 남들 눈에는 정파로 보이는 것이 정치다. 그리고 문재인 의원은 실제로 어떤 이들을 조율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그렇기에 문 의원은 ‘친노 해체’ 선언을 하기 보다 “친노가 있을지언정 ‘친노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앞장 서서 막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당내 여러 이질적인 세력들이 공존하고 화해할 수 있는 정치를 펼치는 것이 옳다. 당권 선거에 참여하면서 전당대회 룰 문제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여부는 문 의원이 그러한 ‘큰 정치’를 할 수 있느냐 여부를 가릴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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