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중앙일보> 지면에 나란히 등장한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과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위원장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처하는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냈다. 김문수 위원장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르면서 농촌 지역의 대표성도 갖추려면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 반면 원혜영 위원장은 “농촌 인구가 적은 현실을 감안해 도농(都農)복합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비례대표는 늘리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제안은 공히 “국민들이 의원 증원을 원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기초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의 제안은 현행 지역구를 유지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것이다. 김문수 위원장은 <중앙일보> 4면에 실린 인터뷰에서 “국민 정서상 의원 정수(300명)를 늘릴 순 없다. 그래서 비례대표를 줄여 농촌 지역을 배려해줘야 한다고 본다. 비례대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인구가 적은 농촌의 주민들이 자기 지역 대표를 직접 뽑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김문수 위원장의 태도는 “국회의원은 자기 선거구를 없애지 않으려고 온갖 꼼수를 부린다”며 선거구 확정을 선관위에서 할 것을 주문했던 며칠 전의 태도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을 혐오하는 ‘반여의도 포퓰리즘’엔 마음껏 편승했으면서, 농촌지역 민심에도 또 한 번 편승하려는 모양새다. <중앙일부> 인터뷰에 나오는 “비례대표에 대해 많은 국민이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의원의 핵심적 생명은 대표성이며, 이건 국민이 투표를 통해 부여한 거다”란 발언이 정확히 그런 부분을 드러낸다. ‘정당’보다 ‘인물’을 중시하는 국민정서에서 정당투표보다는 인물투표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다.
반면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위원장의 제안은 좀 더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있다. 도농복합선거구제란 <미디어스>에서도 이미 분석한 바 있듯,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로 도시지역은 중대선거구제로 치르면서 지역구 숫자를 줄이는 복안이다. 원혜영 위원장은 “도시를 예로 들면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의 경우 현재 의석이 (갑, 을로 나뉘어) 각각 두 개인데 이를 하나의 선거구로 합쳐 3명을 뽑는다. 그럼 도시 의석이 하나 준다. 그만큼 비례대표를 더 뽑을 수 있다. 농촌은 소선거구제로 두면 도농 간 의석 격차도 줄게 된다. 대략 농촌과 대도시 선거구 인구를 15만 명 대 30만 명 기준으로 맞추면 헌재 결정(인구 격차 2대 1)에 부합할 수 있고 대도시에서 3인 이상 중·대선거구를 하면 (시뮬레이션 결과) 10여 석 이상 대도시의 의석 숫자가 절감된다. 그만큼 비례대표를 늘리고, 농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하면 압박이 줄어든다. 이 경우 비례대표가 늘어나므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나 석패율제 도입도 가능해진다”라고 설명한다.
▲ 10일자 중앙일보 4면 기사
두 제안의 공통점은 현행 선거구를 크게 건드리지 않는 안이라는 것이다.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의 안은 현행 선거구는 남겨둔 후 인구가 너무 많은 선거구를 쪼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비례대표 쪽의 훼손이 심할 가능성이 크다. 헌재의 결정에 따른 조정대상 예상 선거구를 보면 상한 인구수 초과 선거구가 37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편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위원장의 제안은 그의 설명대로라면 비례대표를 줄이지 않으면서도 김문수 위원장의 제안보다도 단순한 조정의 문제가 된다. 도시지역 네 개의 소선거구를 합쳐서 3개 의석의 중선거구를 만들면서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농촌지역 지역구는 그대로 둔채 비례대표 의석을 늘린다는 복안이다.
<미디어스>에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 시민의 반감이 크고,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구를 줄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로 두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하나는 ‘문재인의 2012년 대선공약’으로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회의원 세비 총액을 동결한 상황에서의 정수 확대’를 여론화해보는 것이었다.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의 공약을 보면 지역구 의석을 200석으로 조정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100석으로 늘리며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위원장의 제안에 보수적 합리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저대로 시행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 뿐 아니라 여타 군소정당들도 현행제도에 비해선 약간의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 10일자 중앙일보 5면 기사
하지만 헌재 판결이 나온 시점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처음으로 내세운 대안이 그 정치세력이 지난 대선에 내세운 안보다도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이다. 원혜영 위원장은 도농복합선거거주레르 채택할 경우 “10여 석 이상 대도시의 의석 숫자가 절감된다”고 제안했으나, 문재인 후보의 대선공약은 현행제도보다 54석의 지역구를 줄여준다는 제안이었다.
또 진보진영과 시민사회가 일종의 이상적 대안으로 그간 밀어왔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의 경우, ‘소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지역구와 비례대표 양쪽에 이중등록이 가능한(그래서 석패율제는 필요없는) 구속명부식 정당투표’의 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농복합선거구제의 취지에 동의하는 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정치개혁에 합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결국 ‘원혜영 안’의 틀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좀더 급진화시키자고 제안할 것인가, 아니면 김문수와 원혜영의 전제를 허물어 ‘국회의원 세비 총액을 동결한 상황에서의 정수 확대’를 실제로 여론화해 볼 것인가의 선택지가 남게 된다.
물론 양당의 입장이 아직 공고하게 정해진 것도 아닌만큼,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내부이견이 있을 가능성이 충분한 만큼 벌써부터 선택지를 이에 구속하여 생각해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의견 제시는 선거구제 개편 관련된 정치적 맥락이 <미디어스>가 제시한 바,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 시민의 반감이 크고,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구를 줄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라는 물음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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