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영상 제작진에 대한 사측의 해고와 정직 조치로 인해 돌발영상은 당분간 방송되지 못함을 시청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며 빠른 시일 안에 다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돌발영상> 제작진의 공지.

YTN 간판 프로그램 <돌발영상> 제작진은 8일 방송 끝 무렵에 이같은 공지를 띄웠다. 평소 '오늘 문득' '말을 말하다' 등 3꼭지로 구성되는 것과는 달리, 오늘 돌발영상은 '오늘 문득' 한 꼭지만 방송됐으며, 앞으로 이마저도 방송 여부를 가늠할 수 없게 됐다.

돌발영상 정병화 PD는 이에 대해 "3명의 제작진 중 2명의 제작진이 해고와 정직을 당한 상태에서 혼자 방송을 이어가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회사에 따로 알리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방송을 통해) 공지를 띄웠다"고 말했다.

YTN 앵커들, 노조원 징계 항의 '블랙투쟁' 시작

YTN이 노조원 33명에게 해고, 정직, 감봉, 경고 등 징계 조치를 내린 것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은 차분하고도 세심한 대응을, 그러나 강도 높게 실천하고 있다. 이들이 회사 쪽 징계 조처의 부당성을 알리고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의지를 드러내는 데는 평소 자신들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소중한 '방송'이 활용되고 있다.

YTN 앵커들은 노조원 33명에 대한 징계를 '언론인 학살'로 규정해 항의하는 의미를 담아 남자 앵커는 검은색 넥타이를, 여자 앵커는 검은색 상의를 입고 뉴스를 진행하는 '블랙투쟁'을 이날부터 시작했다.

▲ YTN <뉴스Q> 앵커들이 '블랙투쟁'을 하고 있다.

앵커들의 '블랙투쟁'은 새벽 5시 뉴스인 '굿모닝코리아' 1부부터 시작됐으며, 이런 가운데 오전 9시에 시작되는 '뉴스 오늘' 방송 시작 5분 전에, 남성 앵커의 검은색 넥타이 때문에 갑작스럽게 앵커가 교체되기도 했다.

'뉴스 오늘' 진행자인 호준석 앵커(한국기자협회 YTN지회 지회장)는 검은색 넥타이를 맨 채 방송을 진행하려 했으나, 이재윤 뉴스팀장이 "이대로 뉴스를 진행할 수 없다"며 호준석 앵커의 출연을 막고 자신이 직접 뉴스를 진행했다.

YTN, YTN앞 지키는 촛불 시민들까지 리포트로 보도

YTN 노조의 '83일간의 구본홍 반대'는 YTN 보도를 통해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다. 노조원들의 낙하산 사장 반대 의지는 그들이 지닌 최대 무기인 '방송'을 통해 모두 보도됐다.

YTN은 임시 주주총회에서 1분 만에 구본홍 사장 선임 안건이 통과된 이후부터, 구본홍 출근 저지 투쟁을 비롯해 노조원 33명에 대한 징계, 이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계의 거센 비난, 매일 저녁 촛불을 든 채 YTN앞을 지키는 촛불 시민들의 목소리까지 리포트로 내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노조원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많이 보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한 채,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보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회사 쪽에서 저지하는 움직임은 없고, 이 사태에 대해 다른 언론사들이 보도하지 않은 것이 조금 섭섭할 뿐"이라고 말했다.

YTN이 지난 7일 오후 9시 이후부터 8일 오후 4시까지 보도한 YTN 관련 리포트 목록은 다음과 같다.

"YTN 노조원 해고·징계 철회돼야"
민주당, "'낙하산' 사장은 YTN 떠나야"
무더기 해고...YTN 사태 새국면
'YTN 해고' 파문 정치권 확산
YTN '돌발영상' 존폐 위기
YTN 사태 해결위해 언론계 연대
YTN 사태, 국내외 지지 잇따라

이뿐만이 아니다. YTN 노조는 뉴스 생방송 도중 공정방송 투쟁을 알리는 손팻말 시위(피케팅)을 강행해 YTN을 통해 이들의 모습이 방송되는가 하면,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공정방송 배지와 리본을 패용한 채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징계 당한 일부 노조원들 YTN 출입 제한 받아…이메일도 사용 불가

▲ YTN노조원들이 8일 오전 10시 인사팀을 찾아가 회사 쪽이 ID카드를 조작해 일부 노조원들의 YTN출입을 막은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송선영

투쟁이 길어질수록 나날이 진화하는 노조의 투쟁 방식과는 달리, 회사 쪽은 여전히 80년대식 대응을 보이고 있다. YTN은 징계를 당한 노조원들의 회사 출입을 제한해 노조원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8일 오전 10시, 17층 인사팀으로 30여명의 노조원들이 몰려갔다. YTN이 해임을 통보한 노조원 6명뿐만 아니라 정직을 당한 일부 노조원들의 ID카드를 정지시켜, 이들의 정상적인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사용할 수 없도록 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원들은 해임을 통보한 지 이틀 만에 출입을 제지한 회사 쪽에 크게 분노했고, 일부는 감정이 격해진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노종면 지부장은 인사팀 관계자에게 "메일 계정을 풀어주고, 출입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ID카드를 회복 시켜달라"고 촉구했으나 이 관계자는 "경영상의 문제여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대답만을 되풀이했다.

한 노조원은 "후배들을 자른 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 다른 일도 이렇게 신속하게 처리했느냐"며 "인사위원회 징계 결과에 대한 재심 청구도 아직 안 끝났는데 어떻게 15년 동안 한솥밥 먹은 후배들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노조원들은 구 사장의 외부 직무실 비용에 대해서도 회사 쪽의 해명을 요구했다.

▲ YTN노조의 '구본홍 저지 투쟁'이 8일로 83일 됐다. ⓒ송선영

구 사장은 서울 중구 의주로 1가 ㅂ 호텔을 외무 직무실로 사용한 적이 있으며, 현재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ㄷ 아파트에 외부 직무실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임시 주주총회에서 사장으로 선임되기 이전, YTN은 지난 7월2일부터 4일까지 서울시내 한 호텔 15층 스위트룸을 예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구 사장은 스위트룸 객실을 사용했으며, YTN이 객실료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노조원은 "돈 10만원이 아까워서 영상 송출을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며 "어떻게 이끌어 온 회사인데, 우리가 아껴가면서 살린 YTN이 구본홍 한 사람에 수백, 수천만원의 허튼 돈을 쓸 수 있냐"고 성토했다.

그는 또 "IMF 때 6개월 동안 월급이 안 나올 때도 서로를 탓하지 않고 다같이 열심히 일했다"면서 "그렇게 성장한 YTN인데 왜 우리들을 회사에 못 들어오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YTN노조, 섣불리 총파업 안해

일각에서는 회사 쪽이 추가적으로 노조원들을 징계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YTN 사태를 분기점으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총파업 투표를 비롯해 연대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회사 쪽에서 더 이상 섣불리 노조를 자극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회사 쪽이 '징계'라는 카드를 꺼낸 것은 구본홍 사장과 노종면 지부장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는 9일 이전까지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 형식적으로나마 노조의 대화를 유도하려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노조가 76.4%로 가결시킨 총파업 수순을 곧 밟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으나, 당분간 총파업으로 YTN 방송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이번 징계 단행 이면에는 노조로 하여금 총파업을 유도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만들려는 꼼수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YTN 노조와 회사 쪽의 수싸움 실력은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게 안팎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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