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헌법재판소가 작심하고 칼을 빼들었다. 선거구간 인구 편차를 3 대 1까지 허용하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는 2016년 총선이 2012년 총선과 같은 방법으로는 치러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소선거구제, 중대선거구제, 정당명부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여러 가지 제도에 대한 논의가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이 논의의 정치적·정략적 함의를 알기는 쉽지 않다. 이에 <미디어스>는 각 선거제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3회에 걸쳐 정리해보도록 한다.

1편: 근데, 소선거구 단순다수다표제가 뭔 소리지?

2편: 중대선거구가 최선? 새누리당과 새정치는 밑질 게 없다!

지난 2회의 특집기사를 통해 우리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도농별복합선거구제’와 같은 제도들이 무엇이며 현 시점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온 제안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특집기사 2편의 말미에서 “국회의원 300명 정수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라면, 진보정당들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선거구제 개편은 차라리 소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비구속 명부식 정당 투표 및 석패율제 도입이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에서 오랫동안 밀어온 ‘독일식 정당명부제’도 비례대표의 비중이 지역구와 1대1로 대폭 늘어난다는 점을 빼면 이것과 흡사하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이런 식으로 기술해보면, 소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지역구와 비례대표 양쪽에 이중등록이 가능한(그래서 석패율제는 필요없는) 구속명부식 정당투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정당명부제가 무엇인지, 한국 사회에 정당명부제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부터 알아보자.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엔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와 별도로 정당에 대한 투표를 함께 실시하여 전국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고, 배분된 의석은 선거 전 각 정당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미리 등록한 정당 후보명부 순위에 따라 비례대표 의원 당선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다.
한국 사회의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지금의 선거구제 개편 파동과 마찬가지로, 2001년 7월 19일 헌법재판소가 1인1표를 통한 비례대표 의원 선출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만들어진 제도다.
▲ 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바른사회시민회의 회의실에서 열린 '헌재 발 선거구 지각변동, 파장은 어디까지 미칠까?' 긴급좌담회에서 김성기 법무법인 신우 대표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1인1표 비례대표 의원 선출에 대한 헌재 판결은 진보정당을 꿈꾸던 사람들에겐 이미 큰 관심사였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정파연합당이 출범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가 헌재의 위헌 판단이 멀지 않았고 그 경우 정당명부 비례대표가 한국에서도 실시될 거라는 전망이 공유되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였는지,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에서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가장 잘 대응한 정당이 되었고, 남들은 이 제도에 큰 관심이 없었던 2004년 총선에서 비록 지역구는 2석 밖에 얻지 못했지만 비례대표를 통해 8석을 얻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모두들 정당투표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2008년 총선에서 통일교가 '평화통일가정당'을 내세웠지만 1석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현행 방식은, “현재 비례대표 국회의원 정당 배분조건은 정당득표율이 유효투표 총수의 3% 이상을 득표하였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5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석할당정당)으로, 해당 정당 득표비율에 따라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이 배분”(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되는 것으로 소수정당에 문턱이 너무 높으며 지역구 246인에 비해 비례대표 54인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일전에 지적했다시피 지역별 지역구를 줄이지 못하고 지역구를 늘리는 식으로 선거구가 개편된다면 비례대표가 늘기는커녕 줄게 될 판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오랫동안 당론으로 밀었던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이 1대1이다. 의석이 300석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150대 150, 지역구를 200석으로 생각한다면 400석이 되는 것이다. 지역구별로 1명의 당선자를 배출한다는 점에선 물론 소선거구제인데, 정당투표에 나온 득표 비율로 전체 의원숫자를 조정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A당의 정당 지지율이 40%라면 의원수도 되도록 총원 중 40%를 맞추려는 것이 제도 취지다.
비례대표 의원은 현행 방식과는 달리 권역별 정당지지율로 배분한다. 그래서 비례대표 의원이 늘어나면 전국 이슈만 대변하게 될 거라는 비판을 무색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현행 방식과는 달리 지역구 출마자도 비례대표 명부에 이중등록할 수 있으므로, 석패율제 같은 것이 필요가 없다.
▲ 새누리당 황영철·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의원 등 여야 농어촌지역 의원들이 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헌재의 선거구 위헌 관련 티타임 간담회를 열고 인구를 중심으로한 수도권 위주의 판결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새누리당 정희수·장윤석·이철우·황영철·김종태·박덕흠,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강동원·김승남 의원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모든 제도가 그렇듯 제도의 취지를 100% 실현하지는 못하는 균열이 있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이는 무조건 의원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지율이 낮은 정당이 특정 지역구에서만 강세를 보여 많은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한 경우, ‘초과의석’이 생긴다. 쉽게 말해 제도 취지에 맞춰 의석 10%를 얻어야 할 정당이 지역구 당선자가 그 배분몫(전체 의석수의 10%)을 넘을 경우, 지역구 당선자를 그저 인정하고 의원 총수를 늘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매 총선 때마다 ‘초과의석’ 숫자에 따라 의원 숫자가 약간씩 변동이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장점은 단순히 지역주의를 타파한다는 부분을 넘어 유권자들의 다양한 이해를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행 지역구방식에선 영호남이 지역주의 정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대우를 받지 못한다.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에 양질의 후보가 나오고 선거자금이 집중되며 지역개발 정책이 나온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공화당/민주당 텃밭’ 지역과 ‘경합 지역’의 선거자금 격차가 엄청나다.
하지만 독일식 정당명부제 하에선 비록 지역구에선 ‘싹쓸이’를 당하더라도 지역주민들에게서 몇프로의 정당지지를 받았느냐고 고스란히 의석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모든 지역, 모든 계층에 고루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완벽한 제도’라고까지 상찬할 것은 없겠지만, 십여년 간 진보정당에서 꾸준히 밀었던 이유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제도다.
그러나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대한 더 이상의 상세한 설명은 이 논의에서 불필요할 것이다. 오히려 현행 방식과 사뭇 먼 거리에 있는 이 제도 사이에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딱 잘라 말해 한국 사회의 유권자들은 ‘정치’에 대한 신뢰가 없다. 또 그들은 ‘시스템’을 통한 문제해결 보다는 ‘탁월한 개인’을 신뢰하는 성향이 있다. 그렇기에 ‘정당’보다는 ‘정치인’을, ‘국회의원’보다는 ‘대통령’을 믿는다.
▲ 새정치민주연합 이해찬 전 대표와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이상민 법사위원장 등 충청권 의원들이 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선거구획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이해찬·박병석·이상민·노영민·박수현·박범계·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 시민의 반감이 크고,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구를 줄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새누리당에게 가장 좋은 길은 지역구를 ‘대충’ 조정하고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것이다. 명확하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떨까. 기사를 보면 그들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함께 체택할 수 있는 개혁적 선거제도로 올려두고 있다. 여기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따로 뺀 이유가 무엇인지 주목해야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포함한다.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를 별도 분류해 놓았다면, 그들이 내심 원하는 것은 ‘중대선거구제 하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된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치개혁보다는 인구가 많은 상대당의 지역 텃밭에서 되도록 많은 의석을 얻어내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지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현행 제도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한 번의 도약으로 변혁하는 것은 힘든 상황에서, 차후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나아갈 수 있는 중간단계의 정책으로 어떤 것을 제시할 수 있을까.
큰 틀에서 볼 때 두 가지 길이 보인다. 하나는 ‘문재인의 2012년 대선공약’이다. 모두가 잊고 있지만,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지역구 의석을 200석으로 조정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100석으로 늘리며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운바 있다.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벗어날 수가 없다면 나름의 합리성을 지닌 제안이다. 이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선공약이었던 만큼 이 부분에서 그들을 압박해볼 수 있다.
▲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공무원연금 논의를 위한 정의당-공무원노동조합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심상정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를 예방해 선거법 개정을 포함한 정치개혁 의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당·시민사회 연석회의'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연합뉴스)
다른 하나는 ‘국회의원 세비 총액을 동결한 상황에서의 정수 확대’를 여론화해보는 것이다. 시민들이 ‘정치’를, ‘정당’을, ‘국회의원’을 싫어하는 것은 사실이더라도 그들의 혐오는 주로 ‘효율’이란 측면에 맞춰져 있고 그 ‘효율’의 핵심은 비용이다. 지난 대선 안철수 의원이 무소속 후보이던 시절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축소하여 정책개발비로 쓰자는 제안이 사람들에게 잘 먹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비용 총액을 유지하되 400명으로 늘리는 ‘실험’을 해보자”는 식의 파격제안이 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국회의원 1인당 대변하는 유권자의 숫자는 너무 많은 편이나, 그렇다고 국회의원 1인에게 제공되는 비용은 적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제안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할 경우엔 독일식 정당명부제만을 염두에 두어 지역구 200명, 비례대표 200명으로 가자고 제안할 게 아니라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각 250명과 150명 정도로 가져 가자 제안하여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찬동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300명과 100명이 되더라도 254명과 46명이라는 현재의 참담한 비율에 비해선 많이 개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 개편에 저항하는 세력과, 지역구 숫자 감소에 저항하는 세력과, 국회의원 정원 증가에 저항하는 세력이 별도로 있다. 제도 개혁을 함에 있어 이들 모두와 싸우려고 한다면 성취가 불가능할 것이다. 누구와는 이 부분을 협력하고 누구와는 저 부분을 협력하는 식으로 동의를 이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정치개혁을 원하는 이들의 목표는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 보다는 비례대표 비중의 확대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이 하는 식으로 정치개혁 논의가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소선거구제에 여전히 매력을 느끼는 이들과 연합해서라도 ‘소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지역구와 비례대표 양쪽에 이중등록이 가능한(그래서 석패율제는 필요없는) 구속명부식 정당투표’라는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비슷한 구조의 틀에서 비례대표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고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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