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여의도통신
배우 최진실씨의 자살 이튿날인 지난 3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최진실씨의 사망 원인을 ‘악플(사이버 악성댓글)’로 지목하며, 이른바 ‘최진실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인터넷정화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고소·고발이 없어도 수사기관이 수사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사업자의 댓글 삭제 권한을 강화하는 등 인터넷 실명제의 전면 확대가 주요 내용이다.

대다수 언론들도 최씨에 대한 애도보다는 ‘왜’에 초점을 맞춰 각종 추측기사를 쏟아냈다. 이들 언론은 우울증과 증권가에 나도는 사채 관련 악성루머에 괴로워했다는 지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악플’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연일 선정적인 ‘악플 테러 사례’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조선일보의 ‘제멋대로’ 기사들은 단연 압권이다.

조선, ‘최진실법’에도 ‘좌파세력’ 들먹이나

조선일보는 인터넷을 ‘좌파세력’의 공간으로 명명하고 나섰다. 6일치 A8면 <‘최진실법 공방’ 이면엔 정치적 공방> 기사에서 “‘개인의 인권보호’(한나라당)와 ‘표현의 자유’(민주당)란 명분으로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계산도 깔려 있다”고 보도했다.

또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 입을 빌려 “‘좌파 세력이 익명 뒤에 숨어 인터넷을 자신들의 선전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이 정부의 국정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고 말했다”면서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던 ‘인터넷 괴담’의 문제점과 부작용 등을 이번에 함께 개선해 보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 조선일보 6일치 A8면.
보기에 따라서는 조선일보가 ‘최진실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략성’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다. 보도대로라면 “최진실 사망은 빌미이며 공권력의 인터넷 감시통제가 다시 등장한 것”이라는 인권단체들의 반박이 힘을 얻게 된다. 조선일보가 굳이 이런 내용을 보도해 최진실법을 이념 논쟁으로 한정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힌트는 이른바 최진실법의 핵심내용 중 하나가 ‘사이버모욕죄’라는 것이다. 이는 촛불정국이 한창이던 지난 7월 22일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 인터넷 유해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표현의 자유 침해’ 등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다’는 여론의 반발 속에 잠잠해졌다.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는 ‘최진실법’에 대한 반대 논리에도 이용될 수 있지만, 동시에 정부여당과 자신에게 유리한 새로운 프레임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조선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악플러(테러범) = 악성루머 확산 = 촛불 네티즌’이라는 전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최진실씨는 간데없고, 네티즌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게 인식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략성을 감추기 보다는 드러냄으로써 정략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고도의 정략적 전략인 셈이다.

‘자발적 실명제’와 ‘강제적 실명제’ 구분도 않고, 예찬론만

또 7일치 조선일보에는 ‘싸이월드 예찬론’이 등장했다. B1면 <완전 실명제, 악플 줄였다 - 싸이월드 3년전 첫 도입…신뢰도도 높아져> 기사에서 “악성 댓글과 검증 안된 정보에 질린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완전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는 추세”라면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만드는 네티즌이나 타인의 미니홈피 방문자나 모두가 실명으로 글을 올리다보니 정보의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사와 정반대되는 사례는 굳이 먼곳까지 가지 않아도 쉽게 발견된다. 김영홍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국장은 지난달 18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완전실명제인 싸이월드 방명록을 왜 닫았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의 싸이월드 홈피에 실명의 악플과 욕설이 난무하자 방명록을 폐쇄시킨 바 있는 사례를 들어 ‘인터넷은 통제가능하다’는 어리석은 기대를 깨야 한다고 역설했다.

완전실명제의 공간인 싸이월드가 ‘정보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데 더욱 치명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5년 함께하는시민행동이 발간한 제5차 빅브라더 보고서 <싸이월드와 정보 프라이버시>에 따르면, 싸이월드가 공개된 정보로 인해 주민등록전산망과 유사한 신원확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과거 밀양성폭행사건 가해자 및 서울대 도서관 폭행사건 등의 사례는“실명제가 오히려 공적 혹은 사적 복수의 효과를 높여 폭력을 극대화시킨다”는 인권단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 조선일보 7일치 B1면.
조선일보는 이런 실상을 외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 실명제의 개념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 같은 날 기사 <완전 실명제, 악플 줄였다>는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와 ‘자발적 인터넷 실명제’조차 구분하지 않고 있다.

기사에서 예로 든 삼성DSLR사용자포럼 등은 회원들의 '자발적 실명제' 도입 사례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정부가 추진중인 이른바 ‘최진실법’은 ‘인터넷실명제의 강제 실시’가 핵심이다. 이 기사가 정부 실명제의 강제 실시가 초래하는 인권침해 등 위험요소들은 빠뜨린 채 일방적인 실명제 예찬론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진보네트워크 등 인권단체들은 “인터넷 실명제는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해야지, 이를 국가가 강제해서는 안 된다”면서 “인권단체들은 정부가 도입하려는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조선일보는 이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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