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진실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 많은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어마어마한 뉴스의 양, 선정적으로 치닫는 기사들에 잠시 정신이 혼미했다. 그리던 중 조용히 올라온 한 건의 자살 사건도 눈에 띄었다.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었던 것 같다.

머리 속은 갑자기 실타래처럼 얽혔다. 그동안 수많은 자살을 봐온 터다. 어떤 죽음도 개인적인 죽음은 없을 터. 죽음도 맥락 안에 있다.

▲ 지난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이명박 정권 퇴진’ 등을 외치며 분신을 기도했다 끝내 숨진 고 이병렬 씨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사진은 지난 6월 14일 금남로에서 있었던 고 이병렬씨의 노제 모습ⓒ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한미 FTA가 가져올 암울한 미래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도 있었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장애인 가족의 동반 자살도 있었다. 카드빚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으며, 성적을 비관해 자살을 선택한 학생들도 있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비정규직을 없애라 절규하며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었다.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 사건으로 날벼락 같은 고통을 당했던 태안 주민의 자살도 있었다. 엊그제는 농촌 지역의 자살이 최근 3년 새 3천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국감에서 나오기도 했다. 죽음, 죽음, 죽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자살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죽음의 면면을 보자. 내 눈엔 ‘약하면 도태되는 비정한 사회’가 보인다. 조금만 잘못돼도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두려움이 읽힌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혀온 그 숨막히는 경쟁의 스트레스가 보인다. 그 좌절과 두려움은 이제 유령처럼 이 시기를 지배하는 주요한 정서가 됐다.

이 모든 죽음들이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이렇게 돼야 마땅하다.

“악플러만 보이는가”

그런데 정부와 한나라당과 언론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경박스럽기 그지없다. 그동안 인터넷 통제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았던 정부가 물만난 물고기처럼 ‘최진실법’(고인에 대한 예의를 무시하고 여론을 업고 슬쩍 넘어가려는 의도가 읽힌다. 하여 그들이 붙이려고 했던 이 이름 또한 경박스럽다)이라며 사이버 모욕죄라는 기상천외한 법을 들고 나왔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누군가의 절규가 새삼 와닿는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그토록 친하다 자랑하는 미국의 경우는 성조기를 태울 권리를 인정하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있다. 정부에 대한 저항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고 안재환씨의 자살 때에는 어땠는가. 곧바로 촛불 비하 발언에 대한 네티즌들의 악플을 자살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발언들이 나오지 않았나.

정말로 진심으로 ‘순수하게’ 악플러가 자살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 그 많은 네티즌들을 조사하는 수고로움을 덜고 선정적인 기사로 악플을 조장하는 언론과 연예산업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자살 권하는 사회

우리에게 친숙했던 연예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정부가 정말 사회적 타살인 자살을 막기 위해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일제고사로 또 다시 아이들을 시험 지옥으로 빠뜨릴 셈인가. 그리고 그 성적을 공개해 일렬로 세워 서열화를 공고히 할 것인가. 그래서 더욱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 것인가.

대한민국 2%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종부세를 계속 밀어붙일 것인가. 갈수록 얇아지는 사회 안전망과 복지는 관심 밖의 일인가.

사이버 모욕죄 대신 ‘살인적인’ 대부업법의 이자상한율을 낮출 생각은 정말 없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없다면 죽음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경박스러운 것이 맞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자살률이 줄어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역일간지 <광주드림>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광주드림은 한때 지역 문화잡지 <전라도닷컴>과 한몸이었으나 자본의 문제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문법 한 조항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정기간행물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문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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