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5층에서 진행된 문화부 국정감사의 히트작은 단연 유인촌 장관의 ‘문대성 IOC위원 지원’ 발언이었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이 문화부의 예산 내역 중 2억원이 4월2일자로 문대성 IOC 위원에 지원된 사실을 지적하며 “IOC 위원 로비에 국가예산을 2억이나 써도 되는 것이냐”고 비판하고 나서자, 유 장관이 “선수 혼자의 힘으로 IOC 위원이 되기 힘들다. 그래서 (위원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위원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문대성 선수에게) 기획사를 붙였다”고 시인한 것이다.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여의도통신
유 장관의 발언이 나오자, 국감장과 취재기자실에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순간 당황하는 기류가 흘렀다. 조 의원은 이어 “대통령이 직접 문대성 선수를 IOC위원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2억원 때문이냐”고 질문했고, 유 장관은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답변했다.

순간 청사 7층 기자실에선 ‘픽’하는 웃음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문화부 장관이 국감장에서 ‘국가예산의 IOC위원 선출 지원’을 곧이곧대로 시인하다니, 다들 장관의 순진함(?)에 어이없어 하는 반응이었다. 기자들은 이 문제를 회사에 보고하느라 바빠졌다.

‘유 장관이 순간적으로 실언한 것에 불과한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으나 유 장관은 자신이 한 발언의 의미를 모르는지 “이번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해서 지출이 많았다”는 등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고선 머쓱했는지 “이런 얘기는 방송에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의원의 질의가 끝나고 화제는 YTN 매각 등으로 흘러갔으나 문화부 대변인실 관계자가 기자실을 찾아와 “국가예산이 IOC 로비자금으로 쓰인 적 없다. 조 의원의 지적은 잘못된 것이다. 굳이 써야겠다면 막을 순 없지만 이런 얘기 자체가 논란이 될 수 있으니 좀 도와달라”며 곧바로 진화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유 장관의 ‘비보도’ 요청이 이어지자 조 의원은 “오늘 이 자리에서 28명의 의원들께 배포한 자료를 보면, 2008년도 업무집행금 집행 내역에 문대성씨에 대한 지원금액이 2억원, 일자가 문서로 정확히 ‘4월 2일’로 돼있다. 이걸 보고 나도 하도 기가 막혀서 질문한 것”이라며 맞받아쳤다.

그 뒤로 문화부 관계자도 기자실을 대여섯 차례 드나들며 기자들에게 ‘비보도’ 협조를 부탁했다. 스피커에서는 계속 의원들 발언이 쏟아져 나오는데 한쪽에서 문화부 관계자가 계속 큰 소리로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에 짜증이 났던지, 수십명의 기자들은 대다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급기야 문화부 관계자는 기자실 간사에게 ‘비보도 요청’ 부탁을 했고, 자신을 <연합뉴스> 기자라고 밝힌 간사는 기자들을 향해 “문대성 선수 관련 부분은 문화부가 언론에서 기사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며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기자들은 “장관이 국감장에서 공개적으로 발언을 한 건데 보도 여부를 왜 논의해야 하느냐. 매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구체적 자료도 주지 않고 무작정 쓰지만 말라고 하면 어떡하느냐”는 등 ‘비보도 요청’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문화부의 거듭된 ‘협조’ 요청에 기사화 여부가 고민되긴 했으나 ‘이걸 보도하지 않으면 도대체 뭘 보도하겠냐’는 생각에 편집장과 상의한 후 곧바로 기사화했다. 이날 국감장에서 오간 질의 가운데 장관이 딱 부러지게 시인한 것도 사실상 이것 하나뿐이었다.

‘비보도 요청’에 부정적이었던 기자실 분위기 탓에 <미디어스> 외에 상당수 매체들도 이 문제를 보도했을 거라 생각했으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유 장관의 발언을 주워담으려는 문화부 직원들의 ‘정성’이 통한 것일까. 6일 오후 7시경까지 이 문제를 보도한 기자는 나밖에 없었다. 혼자서 ‘배신자’ 된 기분이었다.

덕분에(?) <미디어스> 사무실은 기사가 나간 후 문화부로부터 걸려오는 항의전화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 진행하고 있던 정례회의마저 중단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편집장은 저녁식사도 하지 못한 채 문화부의 항의전화를 받아야 했다. 문화부 대변인, 체육정책과장 등은 기사를 빼달라는 요구까지 내놓았다.

장관의 국감장 발언을 기사화한 언론사에 전화해 다짜고짜 기사를 빼달라고 요구하는 문화부의 행태에 기가 찼다. 반박하고 싶다면 별도의 실증 자료를 제시하면 될 일 아닌가.

해당 국감장과 기자실에는 100명 가까운 기자들이 있었고, 카메라 역시 수십여대가 있었음에도 이 문제는 결국 대다수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았다. <미디어스> <미디어오늘> <PD저널>과 <한겨레> 정도가 이 문제를 다뤘을 뿐이다.

문화부의 ‘보도 자제’ 요청에 시큰둥한 반응으로 “왜 공식 발언에서 한 이야기를 보도하지 말라는 거냐”고 발끈하던 기자들은 왜 스스로 기사를 접었을까. “접대비나 선물비 같은 IOC 규정에 어긋나는 로비자금으로는 일절 쓰이지 않았다”는 문화부의 해명을 받아들여서, 기사감이 아니라고 판단했을까. 하지만 “로비자금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문화부의 항변은 구체적 자료가 없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언론은 ‘국정운영 비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내팽개치고 한국사회의 절대신앙인 ‘국익론’과 ‘애국주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인가. 우리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많은 언론들이 집단적으로 ‘자기검열’을 하는 모습은 새삼 나를 씁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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