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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장에선 ‘공개’한다더니, 꽁꽁 숨기기 바쁜 KBS이사회[기자수첩] 방송법 취지 무시하고 이사 ‘사생활 침해’ 우려하는 코미디
김수정 기자 | 승인 2014.11.03 19:37

   
▲ KBS이사회는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이사회를 '공개'했다.

지난달 22일, KBS이사회 이인호 이사장 출석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KBS에 대한 국정감사가 드물게 ‘현장감사’로 이루어졌다. 이날 “KBS이사회 방청과 관련해 이사장의 허가를 받도록 했느냐”는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의 질문에 이인호 이사장은 “(이사장 허가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KBS이사회도 방송통신위원회 수준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지금부터 물론 공개를 해야 한다. 그렇게(방통위 수준으로 공개) 하겠다”고 약속했다.

KBS이사회 수장이 국감에서 회의 공개 방침 변화를 공표했는데도, 2주 가까이 KBS이사회의 ‘회의 공개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직접 방청을 허용하고 의사일정·회의록·속기록이 일반에게 공표되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달리, KBS이사회는 여전히 TV 시청을 통한 간접 방청만을 허용했고 절차에 따라 신청한 녹음도 불허했다. 이인호 이사장의 “방통위 수준으로 하겠다”는 공표가 있었음에도, 국감 이후 처음 열렸던 정기 이사회에서는 이 부분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5월 28일 우여곡절 끝에 방송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KBS이사회는 ‘공개’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예외사항을 둔 방송법의 취지를 무시한 채, 세칙을 이사회에서 자체 결정해 허울뿐인 ‘공개’를 실시하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 놓고 <이사회 규정> ‘개정’

5월 28일 공포된 방송법 제46조(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등) 9항은 ‘이사회의 회의는 공개한다’고 밝히고 있다. 단, △타 법에 의해 비밀로 분류되거나 공개 제한된 내용이 포함됐을 때 △명예훼손 및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 △감사·인사관리 관련 내용으로 공개할 시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때 등은 예외로 하고 비공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방송법 개정에 따라, KBS이사회도 지난달 1일 이사회를 열어 <이사회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주요 내용은 △이사회 회의 공개에 관한 근거 마련-이사회 규정 제9조의2 신설 △속기록 작성 근거 명문화-이사회 규정 제13조 개정 △이사회 회의록 작성 시 회의 결과를 상세하게 공시 등이다. 

<이사회 규정>

제9조의2 (이사회 회의 공개 등)
이사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사회의 의결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1. 다른 법령에 따라 비밀로 분류되거나 공개가 제한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2. 공개하면 개인·법인 및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3. 감사·인사관리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하면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② 이사회 회의공개 등에 관한 사항은 별도의 규칙으로 정한다.

제13조 (의사록 등)
① 간사는 이사회의 의사과정과 그 결과를 기재한 의사록(별지 3호 서식)과 속기록을 작성하여야 한다.
② 의사록에는 의장과 출석이사 전원이 서명 날인한다.

개정 전 회의록에는 의결사항·상정자·일시·장소·출석인원·결석인원·참석자·회의전말 등 회의 개요만 담겨 있었지만, 앞으로는 회의에서 이사들이 한 발언이 요약, 정리돼서 올라온다. ‘이사회 회의록 작성 시 회의 결과를 상세하게 공시해야 한다’는 주문에 따른 것이다. 분기별로 올렸던 회의록 게재 주기도 줄이기로 했다.

물론 한계가 존재한다. <이사회 규정> 제9조의2에는 ‘이사회 회의공개 등에 관한 사항은 별도의 규칙으로 정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회의 공개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들을 이사회 자체 판단과 결정에 맡긴다는 의미다. 또한 속기록 ‘작성’을 의무화했을 뿐 ‘공시’ 부분은 빠져 있다.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방송법 개정 취지를 헤아린다면, 세세한 기술 없이도 최대한 공개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KBS이사회는 이렇듯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채 <이사회 규정>을 개정해 이사회를 숨기고 있다.

녹음·촬영도, 이사회 공개 여부 결정도 ‘이사님 마음대로’

회의 공개 이후 처음으로 열린 KBS이사회에서도 ‘최대한 공개’하는 것이 아닌, ‘최대한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사회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인호 이사장은 회의 시작 당시 “(오늘은) 처음으로 이사회를 공개토록 한 개정 방송법을 KBS에서 실시하는 날”이라며 “앞으로 개정 방송법 취지에 따라서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심의, 의결 과정을 거치는 모습을 다 같이 볼 수 있게 애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인호 이사장의 말과 달리 실제 이사회 공개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이사회와 사무국의 ‘준비 미비’가 확연히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로 예정됐던 85차 정기 이사회는 ‘재난방송시스템 시연 현장 참관’으로 인해 40분 이상 뒤로 미뤄졌다. 회의 시작 30분 전까지 등록을 마치고 방청 장소에 와 있던 기자들은 회의 시작 15분 전에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었고, 40분 동안 하릴없이 대기해야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누가 어떤 발언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자리 배치표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KBS이사회는 11명의 이사가 참석하는데도 “이사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라”는 안내만 했을 뿐이었다. 덕분에 기자들은 방금 누가 말했는지 여부를 서로 묻거나, 그때마다 이사회 사무국 관계자에게 물어야 했다.

그날 회의 공개를 할지부터 녹음·녹화·촬영·중계방송 여부까지 ‘이사님 마음대로’ 정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인호 이사장은 “안건 심의에 앞서 새로운 절차로서 개정방송법에 따라 이사회 안건에 대한 회의공개 여부를 먼저 결정하겠다. 오늘 회부된 안건들이 공개되는 데 문제가 없는가 하는 부분이다.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안건이어서 공개하게 됐다”며 “이의 없죠? 오늘 회의는 전부 공개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 10월 1일 KBS이사회가 규정을 개정하면서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하는 별지 양식이 일부 변경돼, 어떤 이사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표기하도록 했다.
회의 개최 하루 전까지 이름, 생일, 전화번호, 소속기관 등이 담긴 <회의방청 신청서>를 내고 ‘이사장 허가’를 거쳐 방청을 왔는데, 이사들의 동의에 따라 이사회 공개 여부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녹음도 현장에서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날 이사회를 방청한 한 기자는 녹음 신청을 했지만 이사회 사무국으로부터 ‘녹음을 하게 될 경우 속기록과 같은 역할을 하게 돼서 할 수 없게 됐다’는 설명을 들었다.

문제는 이 같은 ‘반쪽 공개’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송법이 5월 28일 개정되고 8월 29일 시행됐으며, 관련 KBS이사회 규정이 10월 1일 바뀌었는데도 KBS이사회 사무국은 ‘회의 공개를 처음 해 봤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완비가 안 됐다’는 말로 준비 미비를 변명했다. 이사회 공개와 관련한 책임과 권한 역시 ‘이사들의 뜻’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매 회의 때 회의 공개 여부를 결정할 경우, 방청 온 이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갈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KBS이사회 사무국은 “아직 저희가 공개란 걸 처음 해 봤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완비가 안 됐다. 그런 건 앞으로 회의 공개를 하면서 오시기 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녹음, 녹화 불허 이유에 대해서는 “녹음·녹화촬영·중계방송 허용 여부는 이사회 결정사항”이라며 “녹음은 이사 개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사 전원의 동의를 전제로 해야 하는 문제다. 지난 이사회에서는 (이사들이 동의를 하지 않아) 녹음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회의록이 언제 올라오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명확히 말씀드릴 수가 없다. 저희가 홈페이지에 올릴 테니 그때 보시면 될 것 같다”는 무성의한 답이 돌아왔다. 이인호 이사장의 ‘방통위 수준으로 공개하겠다’는 발언 후, 이사회에서 공개 방침이 안건으로 상정되거나 정식으로 논의된 적이 있는지 묻자 “이사회에서 이사님들끼리 결정해주셔야 되는데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벌써 삐걱대는 이사회 ‘공개’… 껄끄러운 안건은 ‘비공개 처리’ 꼼수

더구나 KBS 경영진이나 이사들이 공개를 꺼려하는 안건은 ‘회의 공개’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간담회 형식을 빌려 처리하려는 ‘꼼수’도 벌어지고 있다. KBS이사회는 5일 이사 11명이 전원 참가하는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날은 매년 KBS가 발행하는 <경영평가 결과 보고서>에 나타난 개선사항에 대한 이행 실적을 보고한다. 그런데 경영진이 ‘공개 이사회’에서 밝히기를 꺼려 간담회로 진행할 계획이다.

한 야당 추천 이사는 “간담회로 개최하는 것을 두고 여야 이사들 간에 논쟁이 있었다. <경영평가 결과 보고서>에 나온 개선 요구사항에 대한 이행 실적보고를 하기로 됐는데, 사측에서 이사회에 공개해 보고하는 것을 꺼려했다. 결국 이번에는 간담회를 열고 내년 1월 말쯤 정식으로 이사회에 보고하는 것으로 조율했다”고 전했다.

이사회가 회의 안건에 대해 매번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속기록도 이사들의 동의를 거쳐 공개하는 현재 방침은 회의 공개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속기록 공개도 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비공개 사안이 있을 때는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비공개 사안에 해당하는지를 이사회가 결정한다”며 “방송법 취지대로라면 무조건 공개를 하는 게 맞다. 회의 때마다 이사들이 의결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했지만 다수결에 밀렸다”고 밝혔다.

   
▲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4월부터 전체회의의 의사일정, 회의록, 속기록을 홈페이지에 올려 공공에 공개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미 공개로 진행한 회의의 속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지난해 4월 속기록을 ‘공공’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공개 범위에서 벗어난 ‘간담회’로 진행해 비판 받은 바 있다. KBS이사회는 방통위보다 한참 낮은 공개 수준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방통위가 만든 ‘나쁜 선례’을 따르는 데 급급하고 있는 꼴이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2000년 9월 5일(889회)부터 현재까지 경영위원회 의사록 전문을 비롯해 회의 자료까지 대부분 공개하고 있다. KBS처럼 이사회 세칙을 조정해 얼마든지 ‘비공개’할 수도 있는데 NHK는 왜 이토록 심의, 의결 과정을 이토록 투명하게 밝힐까. 이사들 개인의 ‘사생활 침해’보다,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들에게 공영방송 NHK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알리는 ‘알릴 의무’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KBS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KBS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둔다’는 방송법 46조는 그저 ‘법’으로만 존재할 뿐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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