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정상화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미래창조과학부 최양희 장관은 지난 10월1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줄곧 이같이 말했다. 이동통신 3사도 각종 요금제와 멤버십 혜택 등 단통법 맞춤형 ‘경쟁’을 시작하며 보조를 맞췄다. 과거 출혈경쟁을 하던 시절에 비해 단통법 이후 3분의 1 이하로 뚝 떨어진 보조금 탓에 이용자들의 불만이 폭발하던 시기에도 미래부와 이통3사는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기다리던 결과가 나왔다. ‘아식스 대란’이다. 11월1일 새벽부터 이동통신3사의 대형 유통점들은 아이폰6 16G 모델을 10~20만 원대 덤핑으로 팔아 치웠다. 출시일만 기다리며 같은 모델을 70만 원 후반대에 ‘예약’하고 개통한 이용자들은 한순간에 호구가 됐다. 애당초 이통3사는 아이폰6 16G 모델에 20만 원 안팎의 지원금을 약속했고, 각종 지원금을 모두 더하더라도 이용자가 부담해야 할 몫은 50만 원 이상이었다.

▲ 2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 한 휴대전화 판매점 앞에 소비자들이 '아이폰6'를 신청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날 새벽 곳곳의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아이폰6 16GB' 모델을 10만∼20만원대에 판매해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소동을 빚었다. 해당 모델은 출고가가 78만9천800원으로 이통사가 지난달 31일 공시한 보조금 25만원에 판매·대리점이 재량껏 지급할 수 있는 보조금 15%를 추가하더라도 판매가가 50만원선에서 형성된다. (사진=연합뉴스)

이동통신사는 유통점의 ‘단독범행’으로 밀어붙이며 꼬리자르기에 나섰다. 이동통신사는 ‘일부 유통점이 개통 실적에 따라 받는 리베이트를 포기하고, 이 돈으로 이용자를 지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통점이 대박을 기대하며 아이폰6 16G 물량을 미리 확보했지만 생각보다 팔리지 않았고, 재고를 없앨 목적으로 자기 몫을 포기하며 덤핑판매를 했다는 설명이다.

단통법으로 사정이 어려워진 유통점의 단독범행일까? 아니다. 일단 상황부터 진단하자. 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 경쟁을 멈춘 이통사 탓에 번호이동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통계만 보더라도 이동통신 시장은 25% 정도 얼어붙었다. 대신 이동통신사는 유통점에 주는 리베이트를 상향 조정했다. 이는 이통사가 자신의 책임을 줄여나가기 쉬운 구조를 구축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3G 가입자인 아이폰3~4 이용자를 LTE 요금제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실제 이통사는 아이폰 효과를 톡톡히 봤다. 방통위에 따르면, 단통법이 시행 한 달(10/1~28) 동안 번호이동 건수는 일 평균 1만3500건 수준이었는데 10월31일 2만9321건으로 2배 이상 뛰었다. SK텔레콤으로 갈아탄 건수만 1만1225건이다. LG유플러스는 1만508건, KT는 7588건이다. 신규가입과 기기변경까지 포함하면 10월31일부터 11월2일 오후 4시까지 23만2072명이 움직였다. 하루 평균 7만7357명이다. 단통법 시행 첫 달(5만700명)에 비해 1.5배 많은 수준이고, 단통법 시행 전보다 하루 평균 1만 건 이상 많은 규모다.

▲ (사진=미디어스)

단통법 이후 말라붙은 가입자 유치 경쟁이 아이폰으로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가입자당 매출(ARPU)을 올리는 데 목적이 있다. 1위 사업자 SK텔레콤의 경우, 아이폰6과 아이폰6플러스 고객지원금은 최소 7만6500원(아이폰6 16G로 LTE45 요금제 가입)에서 최대 19만 원(아이폰6 또는 6+ 128G로 LTE100 요금제 가입)이다. 이번 대란에 등장한 아이폰6 16G 모델의 출고가는 78만9800원인데 지원금은 7만6500원(LTE45)에서 17만 원(LTE100)뿐이다.

이동통신사는 이용자들에게 데이터 사용 트렌드를 설명하며 평균 ARPU인 3만 원 중반 이상의 요금제를 권하고, 유통점에게는 리베이트를 올려 마지막 남은 LTE 전환 수요를 불법으로 유인하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일부 유통점에서 기존에 확보한 가입자 정보로 예약을 걸어 아이폰 물량을 확보한 정황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동통신사는 예약판매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기종에 대해 수요조사를 실시했고, 리베이트를 올려줬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일부 유통점이 쌓인 재고를 덤핑 처리한 것 같다’는 이통사의 해명은 사전에 준비한 멘트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똑똑하다던 아이폰 이용자들마저 당했다. 한국의 반쪽짜리 법에 애플도 당한 셈이다. 예고된 정책실패다. 단통법으로 이동통신사의 대 정부·이용자·제조사 협상력은 더 커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마침 단통법과 아이폰6 출시시기가 겹쳤고, 이통사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통사는 유통점을 합법적으로 활용해 마지막 남은 LTE 전환을 불법적으로 끝냈다. 이번 아식스 대란이 유통점의 단독범행이라는 것은 단통법 착시효과다. 아이폰 이용자와 애플마저 호갱으로 만든 것은 단통법과 이통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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