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싶었던 PD들과 취재와 보도를 하고 싶어 입사한 기자들이 ‘현장’에서 쫓겨나 사업 관련 부서로 갔고 도무지 뭘 배우는지 알 수 없는 ‘교육발령’을 받았다. MBC가 최근 단행한 인사 후폭풍에 MBC 내부는 물론이고 바깥까지 술렁이고 있다.

MBC는 지난 31일 인사발령을 통해 130여명을 전보 조치했다. <PD수첩> 출신 PD 다수가 교육발령을 받거나 제작과 무관한 부서로 가게 됐고, 회사에 쓴소리를 해 왔던 기자들도 이번 인사로 희생됐다. (▷ 관련기사 : <교양국 해체한 MBC, 이번엔 ‘찍어내기’ 인사>)

“MBC 전체의 몰락 앞당기는 인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성주, 이하 MBC노조)와 MBC기자회(회장 조승원)는 인사 직후 성명으로 사측의 ‘보복인사’를 규탄했다.

▲ MBC는 지난달 24일, 31일 각각 단행한 조직개편 및 인사발령에 대해 '상암시대를 열어갈 조직개편'이라고 자찬했다. (사진=MBC 공식 블로그 M톡)

MBC노조는 “MBC 조직개편의 후속인사는 끝내 ‘밀실 보복인사’로 현실화됐다”며 “스스로 공영방송 포기선언을 하며 내세웠던 ‘수익성’과 ‘경쟁력’이란 구호조차도 결국 허울뿐인 것임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라고 질타했다.

MBC노조는 “(이번 인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교양제작국 조직 해체의 이유를 짐작케 하는 PD들에 대한 명백한 보복인사”라며 “‘신사업개발센터’,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등 이름도 생소하고 업무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신설 조직들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깨닫게 된다. 회사의 마음에 들지 않은 기자들과 PD들을 솎아내고 배제하기 위한 도구”라고 말했다.

MBC노조는 회사의 ‘교육발령’ 인사에 대해서도 “<이달의 PD상>,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한 PD들과, 기자회장 역임한 고참 기자, <숫자 데스크> 등 색다른 뉴스 포맷을 시도하던 기자 등 상당수가 영문을 모른 채 교육발령을 받았다. 이들을 무슨 기준으로 ‘실적이 미흡한 저성과자’라고 낙인찍는가”라며 “170일 파업 직후 파업 참가자들을 대거 신천교육대에 몰아넣고 브런치를 만들게 했던 김재철 시절의 ‘부당전보’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MBC노조는 “회사는 권재홍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3차례에 걸쳐 인력배치를 놓고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인사 당사자와 그 부서 부장들도 인사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다”며 “모든 것이 밀실에서 논의됐다”고 지적했다. MBC노조는 회사가 교육발령의 경우 노사협의회를 통한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이를 무시했고, 고유 직종을 벗어나는 인사를 하면서도 당사자들과 사전 협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점을 들어 “내용과 형식 모두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인사 폭거”라고 비판했다.

MBC기자회는 이번 인사를 ‘참혹한 인사’로 규정했다. 12명의 교육발령 대상자 가운데 기자는 5명이다. 보도본부 통일방송연구소와 미래방송연구실에 있던 부장급 기자들과 시사제작국 차장급 기자, 뉴미디어뉴스국 소속 기자 2명이 경영지원국 인재개발부로 쫓겨났다.

MBC기자회는 “이들 가운데에는 의욕적으로 새로운 포맷의 인터넷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해 사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기자도 있고, 30년 가까운 기자 생활 동안 정확한 판단과 성실한 업무처리로 후배들의 귀감이 된 고참 선배도 있다”며 “어떻게 이들이 ‘저성과자’이고 ‘배치 부적합 대상자’란 말인가. ‘미운 사람 찍어내 손보기 위해’ 사실상 징계성 교육발령을 낸 게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MBC기자회는 “인터넷, SNS 뉴스 제작과 편집을 책임져 온 뉴미디어뉴스국의 기자 대부분은 사업과 기획 관련 부서로 전출됐고,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현업 기자들은 난데없이 신설 사업부서로 보냈는가 하면 몇몇은 드라마와 예능 부문으로 내보냈다”며 “기자로서 누구보다 일 잘 할 수 있는 인력을 갈기갈기 찢어 전출시키는 게 과연 ‘적재적소 인력 배치’이며 ‘벽을 허문 융복합 인사’라는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MBC기자회는 “이대로라면 공정성과 신뢰도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MBC 뉴스 프로그램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영영 불가능할 수도 있다”며 “비상식적이고 납득하기 힘든 이런 인사발령은 MBC 뉴스, 더 나아가 MBC 전체의 몰락을 앞당기게 할 뿐”이라고 전했다.

“안광한의 MBC가 또 다시 대학살극 저질러”

<다큐스페셜> 팀에서 god 편을 촬영하고 돌아오니 자신이 제작과 무관한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받았다는 것을 알았다는 한학수 PD는 “경인지사, 신천교육대에 이어 세 번째로 가게 되는 비제작부서다. 최근 3~4년은 참 힘들다”고 밝혔다.

방송 프로그램 송출을 담당하는 편성국 MD로 가게 된 이근행 PD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사측의 보복인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근행 PD는 “MBC. 최소한의 양심도 상식도 연민도 용서도 설 자리를 잃었다. 오로지 인간의 악마성과 보잘 것 없음만을 확인한다”며 “이제는 ‘가해도 불가불 고통을 수반하리라’는 비현실적 순진함을 버리기로 한다”는 글로 심경을 표했다.

2012년 김재철 퇴진 및 공정방송 투쟁 170일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MBC에서 해직된 최승호 PD 또한 황당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최승호 PD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요. 안광한의 MBC가 또 다시 대학살극을 저질렀다”라며 “거칠 것이 없다. 이것도 7.30 선거의 후과일 것이다. 야당 눈치 볼 것 이제 없으니 보란 듯이 재기의 가능성을 다 잘라버리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MBC는 31일자로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사진은 상암MBC 신사옥 개막식에서 안광한 사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MBC)
최승호 PD는 “국회 야당의원들과 방문진 야당이사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부에서 움직이지 않는데 우린들 뭘 할 수 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변명만으로는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며 “야당은 지금 MBC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의 무능, 무기력이 사람들을 다치고 죽게 하고 있다.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라고 경고했다.

2012년 MBC노조 파업 지지 공연에 서기도 했던 가수 이승환 씨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MBC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같은 명곡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한 교양국을 해체했다. 그리고 능력 있는 PD들을 제작과 관계 없는 부서로 보냈다”며 MBC의 이번 인사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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