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월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세상에 내놓은 유재하는, 겨우 석 달이 지난 11월 1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라디오스타>는 '고품격 음악방송'답게 해마다 유재하를 기리는 방송을 해왔다. 2013년에는 유재하와 함께 '봄여름가을겨울'을 꾸려 김현식의 세션밴드로 활약했던 전태관, 김종진이 출연해, 유재하와 김현식을 추모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난 10월 29일, 유재하와 함께 '봄여름가을겨울'을 꾸렸던 또 다른 멤버 장기호와 절친이자 선배인 김광민, 그리고 유재하가요제 1회 금상 수상자인 조규찬과 2008년 19회 금상 수상자인 박원이 선배를 추억하기 위해 나왔다.

가장 사랑했던 벗을, 그리고 음악적 멘토를 잃은 지 25년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바로 그 시간의 느낌을 <라디오스타>는 보여주었다.

그의 부고를 듣던 당시 미국 유학 중이라 화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어 안타까워 하룻밤을 꼬박 세우고 그를 기리는 음악을 만들었던, 술자리조차 함께 나누었던 선배 김광민은 이제 '이런 얘기하기 뭐하지만, 사실 개구리상'이라며 그의 외모에 대해 농담을 내비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절친 장기호도 노래 부를 때 여운이 긴 목소리와 달리 평상시 유재하의 목소리는 '맹구'에 가까웠다며 그의 흉내를 냈다. 그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것들은 25년이란 시간이기에 가능했고, 25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맹구' 같았다는 유재하의 추억이 반갑기까지 했다.

또한 같은 가요제 출신임에도, 고교시절 유재하의 음악을 듣고 그 상식을 깬 코드의 조합에 한동안 말을 잊었다는 1회 수상자 조규찬의 찬사와, 사실 유재하보다 스티비 원더를 더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박원의 간극이 넉넉하게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시간이 25년이었고, <라디오스타>는 그렇게 25주기 유재하를 추억했다.

물론 이제는 아득한 그 옛날의 선배 유재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현식을 위해 썼던 음악들임에도 단 한 곡 '가리워진 길'을 제외하고는 선택받지 못해, 결국 '봄여름가을겨울'과 김현식을 벗어나 스스로 앨범을 만들게 되었다는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 그 단 한 장의 앨범이 없었다면 우리 가요사에 엄청난 공백이 존재할 것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은 유재하의 음악이 있었다.

김광민의 반주에 친구 장기호와 후배 조규찬, 그리고 박원이 각자의 특징을 살려 되살려낸 유재하의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나는 가수다> 유재하 편과 다른, 화려한 편곡에 변주되지 않은 소박한 맛의 유재하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유재하는 아니지만 유재하의 맛을 살리려 애썼던 장기호의 노래와, 그와는 전혀 상반되게 '스캣'의 맛을 한껏 살린 재즈버전 조규찬의 '편지', 그리고 '야한' 해석을 곁들인 박원의 '그대 내 품에'는 <라디오스타>가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무엇보다 이날 <라디오스타>의 백미는, 이역만리 미국에서 유재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타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후 그 마음을 담아 만든 김광민의 피아노 곡 '지구에서 온 편지'였다. 이제는 무뎌져가는 그리움을 농으로 되살려내던 시간들이 지나고, 김광민이 피아노 앞에 앉아 유재하를 생각하며 만든 '지구에서 온 편지'가 연주되는 순간, 25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재하라는 존재가 고스란히 그리움으로 되살아났다.

가슴 한가운데 철렁 던져지듯 다가온 김광민의 피아노 연주는 <라디오스타>가 마무리되고, 화면에 등장한 또 한 사람 신해철의 음악으로 그리움이 안타까움이 되어 번져갔다.

해마다 거리가 노랗고 붉게 물드는 때가 되면, 우리들은 25년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유재하와 그를 뒤따르듯 3년 후 세상을 떠난 김현식을 그리워했다. 그런 그리움에 농담을 얹을 수 있는 시간이 흐른 지금, 안타까움과 슬픔을 말로 형언하기 힘든 또 하나의 그리움을 보탠다.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라디오스타>가 추모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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