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시정연설을 하러 온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경제’로 59번이나 등장했다. ‘국민’은 31번이었고, 그 다음은 19번 나온 ‘안전’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총체적인 부실과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100여명 넘게 깔린 튼튼한 경호벽을 치고, 그 바깥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가볍게 외면했다.

▲ 국회 본청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는 유가족을 외면하는 박근혜 대통령. 왼쪽은 국회에 들어설 때, 오른쪽은 나올 때의 모습이다. (사진=오마이뉴스 이희훈 기자/공동취재사진)

300명 넘는 인명이 희생된 ‘참사’를 마치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듯 치부한 대통령의 모습은 많은 언론을 통해, SNS를 거쳐 널리 퍼졌다. 참사 196일째인데도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유가족들과, 그들을 없는 사람인 양 취급하며 위풍당당하게 레드카펫을 걷는 대통령이 너무나 선명하게 대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9일 지상파 방송뉴스는 대통령을 향한 삼엄한 경비 태세도, 유가족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입장하는 대통령의 모습도 대부분 들어냈다. 다만 “지금이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 “지금 재정적자를 늘려서라도 경제를 살리는데 투자해 위기에서 빠져나오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것”, “방산·군납비리와 같은 예산 집행과정의 불법행위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그 뿌리를 뽑을 것” 등 대통령이 선보인 ‘말의 성찬’을 받아쓰기에만 급급했다.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의 시정연설 보도는 대동소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여야 원내지도부와의 만남을 톱 뉴스로 뽑았고, 관련 꼭지를 3개 편성한 흐름이 유사했다. 대통령 말씀 받아적기에 가장 적극적이었고, 연설에 대해서도 가장 후한 평가를 내린 곳은 단연 MBC <뉴스데스크>였다.

<뉴스데스크>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인 경제, 국민, 안전을 나열하면서 “경제를 살리면서 국가의 기본책무인 국민안전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는 평을 달았다. 대통령이 줄곧 국민안전과 결부돼 있는 문제에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긋거나 아예 침묵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비판은 빠졌다. 전시작전통제권 재연기, 세월호 관련 내용이 없었다는 야당의 지적을 한 줄 언급하는 데 그쳤다.

▲ 29일 MBC 뉴스데스크 톱 뉴스

도리어 <뉴스데스크>가 날을 세운 것은 야당 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때 “야당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휴대전화에 몰두하거나 조는 모습을 보였다”거나 입장 때에 “야당의원들도 일어났지만 조경태 의원 등 일부만 박수를 쳤고”, 퇴장 때 “상당수 야당 의원들은 앉은 채로 시선을 외면했다”고 표현하며 29번 박수를 보낸 새누리당과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뉴스데스크>는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가장 충실히 전했지만, 102일 만에 발견돼 103일 만에 인양된 세월호 실종자 소식을 단신으로도 처리하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 및 11월 수색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국회 본청에서 대통령을 기다린 유가족들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모습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SBS <8뉴스>는 <박 대통령 "재정적자 늘려서라도 경제살리기 투자">, <"예산안 법정 시한내 처리"…'개헌론'도 언급>, <박 대통령-여야 지도부 '밀착회동'…일단은 화기애애> 등 3개 리포트를 배치해 <뉴스데스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발견 하루 만에 인양된 세월호 실종자 소식은 개별 리포트로 처리했다. 29일 진도군청에서 열린 기자회견 내용을 바탕으로 이미 ‘수색완료’라고 공언했던 곳에서 시신이 발견된 점을 들어 실종자 가족들이 ‘더 철저히 수색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KBS <뉴스9>가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세월호 유가족의 ‘국회 앞 기다림’을 보도했다. 세월호 실종자 수습과 국회 앞에서 열린 가족대책위의 기자회견을 별도 리포트로 소화했다. 시정연설에 대해서는,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의 논평을 넣어 야당의 비판을 조금 더 자세히 전했다.

JTBC, 실종자 수습 톱 뉴스로… 대통령과 유가족이 냉랭해진 원인 분석

반면 JTBC <뉴스룸>은 4월 16일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세월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 시정연설을 첫 뉴스로 보도한 지상파 3사와 달리, 103일 만에 선체에서 인양된 세월호 실종자 고 황지현 학생의 소식을 톱으로 배치했다. <뉴스룸>은 왜 곧바로 시신 인양을 하지 못했는지, 당시 인상착의는 어땠는지, 정확한 신원 확인은 언제 마무리되는지 등을 팽목항 현지 연결을 통해 자세히 전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서도 5꼭지를 배치해 상세히 보도했다. <연설 동안 '경제' 59차례 언급…'세월호' 말도 안 꺼내> 리포트에서 “올 한 해 가장 큰 이슈였던 ‘세월호’는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밤새 기다렸는데'…세월호 유족-박 대통령 면담 불발>로 유가족을 지나치는 대통령의 모습을 전했다.

▲ 29일 JTBC 뉴스룸 '세월호 유가족 외면한 박 대통령…그동안 무슨 일이?' 리포트

<세월호 유가족 외면한 박 대통령…그동안 무슨 일이?> 리포트에서는 5월 19일 대국민 담화 당시 “세월호 참사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눈물까지 흘렸던 대통령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유가족들을 냉랭하게 대하게 됐는지를 살펴봤다. <뉴스룸>은 △세월호 참사가 진영 논리로 번지게 된 점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점 등을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JTBC <뉴스룸>이 보여주는 세월호 보도는 ‘꾸준함’과 ‘상식적인 수준의 문제제기’, ‘피해자들의 입장 충실 전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쩌면 그리 대단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잊지 않겠다”면서 세월호를 망각하는 주요 방송사들의 보도는 이 ‘평범한’ JTBC <뉴스룸>의 보도를 차별화시키고 있다.

본 신문은 지난 10월 20일 『대통령 말씀 '받아 쓰고' 유가족 눈물 '외면'한 지상파 뉴스』제하 기사에서 10월 29일 MBC '<뉴스데스크>는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가장 충실히 전했지만, 102일 만에 발견돼 103일 만에 인양된 세월호 실종자 소식을 단신으로도 처리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게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당일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스물여섯번째 뉴스로 '어제 102일 만에 추가로 발견됐던 세월호 실종자 시신이 수습됐습니다. 민관군합동구조팀은 오늘 오후 6시 18분쯤 인양작업 한 시간 만에 시신 수습을 완료했고 신원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계획입니다.'라며 102일 만에 발견된 세월호 실종자에 대해서도 현재 상황과 향후 계획까지 별도 뉴스보도를 통해 명확하게 보도한 것으로 확인돼 해당 기사를 바로 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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