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초에 끝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겪은 일이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그렇듯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취재차 방문한 이들에게 ‘프레스 킷’이라는 이름으로 취재 안내문은 물론 각종 쿠폰, 홍보물, 선전물 따위를 전달한다. 프레스 킷으로 딸려 나온 가방 안의 물품을 이것저것 확인하던 중 영문을 모를 물건을 발견하게 되었다. CGV에서 운영하는 독립 · 예술영화 전용관 ‘무비꼴라쥬’가 올해 1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변한다는 말이 담긴 우편카드 사이즈의 홍보지였다. ‘변한다’는 말 이외에는 대체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10주년 기념 전시회나 영화제를 연다는 것인가. 그 생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린 것이 되었다. CGV 무비꼴라쥬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며칠 후 보도자료를 통해 창설 10주년을 맞이하여 영화제를 여는 동시에 이름을 11월 1일 ‘무비꼴라쥬’에서 ‘아트하우스’로 바꾼다는 소식을 전했다.

▲ CGV에서 운영하는 독립 · 예술영화 전용관 ‘무비꼴라쥬’가 탄생 10주년을 맞아 새롭게 바꾼 이름인 ‘아트하우스’의 로고.

동시에 CGV는 10월 31일 이미 총 6개의 상영관 중 절반을 무비꼴라쥬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CGV 압구정의 무비꼴라쥬를 ‘아트하우스’로 바꾸는 동시에 1개관을 ‘한국독립영화 전용관’으로 지정하며, 2015년에는 CGV 명동역의 3개관을 리뉴얼해 2개관을 독립 ·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나머지 1개관을 ‘시네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으로 무료 개방해 작업 공간 및 다양한 강연,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라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에는 CGV가 2004년 처음으로 독립영화 전용관을 만든 뒤 ‘다양성 영화’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자기 평가가 담겨있었다. 아마 이름을 (다양한) 영화들이 모였다는 의미의 ‘무비꼴라쥬’에서 독립 영화, 예술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일반명사인 ‘아트하우스’로 바꾸는 것도 그러한 자체 평가가 낳은 일종의 결과일 것이다.

분명 CGV의 말대로 CGV가 2004년 서울 강변점과 상암점, 그리고 부산 서면점에 ‘인디영화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독립영화 전용관을 설치한 이래 많은 노력을 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비록 몇 년 전에 사라지고 말았지만 ‘시네마 디지털 서울’(CinDi)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독립,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를 개최했었고 동시에 서울독립영화제 같은 각종 독립영화 행사에도 많은 후원을 해왔었다. 전용관의 수 역시 2004년의 3개관에서 2014년 현재 17개 지점 19개관으로 늘어났다. 전용관에서는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매주 토크 프로그램이나 큐레이터를 통해 영화를 설명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CGV 무비꼴라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몇 년 전부터 직접 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등 양질의 영화를 수급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 독립, 예술영화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90만의 관객을 모은 <워낭소리>(2009년), 그리고 340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비긴 어게인> 같이 폭발적인 흥행을 거둔 작품들이 등장했으며 이 둘의 흥행 성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년, 77만), <피에타>(2012년, 60만), <이태원 살인사건>(2009년, 53만), <울지마, 톤즈>(2010, 44만), <미드나잇 인 파리>(2012년, 35만), <원스>(2007년, 22만), <한공주>(2014년, 22만) 등 제작비, 수입가 및 확보한 상영관에 비해 꽤 쏠쏠한 흥행성적을 거둔 작품들이 등장했다. 특히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시얼샤 로넌, 애드리언 브로디 같이 유명 배우가 나오는 한편 예술 영화 치고는 많은 제작비인 3천 1백만 달러(한화 324억 상당)을 들여 ‘아트 무비’와 ‘블록버스터’의 합성어인 ‘아트버스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또한 매 영화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앞서 언급했던 웨스 앤더슨, 홍상수, 우디 앨런 등이 연출한 영화는 최소 3만 이상의 관객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들에 기뻐하기 전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다. CGV가 매년 독립영화에 투자를 많이 하고, 독립영화 흥행작들이 계속 탄생하고 있는 이 상황들이 곧 독립영화 전체의 성장과 발전을 의미하는 것인가.

2014년 현재 한국에는 약 60여 개의 독립영화 상영관이 존재한다. 여기에 전국 곳곳에 위치한 ‘작은영화관’(문화관광체육부 등에서 지원하는, 문화소외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해 설치된 영화 상영관)과 경기도에서 정책적으로 시행 중인 ‘G시네마’(경기도 다양성영화관)의 이름으로 독립영화가 상영되는 각종 공공시설, 그리고 각지에 위치한 미디어센터 중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을 포함하면 그 수는 조금 늘지만 이들 영화관은 매우 띄엄띄엄 영화를 상영하거나, 독립영화 대신 일반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한다. 그리고 이 중 CGV에서 운영하는 독립 · 예술영화 전용관인 ‘무비꼴라쥬’는 19개관, 롯데시네마에서 같은 목적으로 운영하는 ‘아르떼 클래식’은 9개관이다. 멀티플렉스에서 직접 운영하는 독립영화관이 한국에서 운영 중인 독립영화 전용관의 약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셈이다. 여기에 G시네마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기도 내 메가박스 3개관을 합치면 멀티플렉스의 독립영화관은 31개관이 된다.

이러한 상황은 곧 독립영화가 관객들에게 원활하게 상영되고 흥행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무비꼴라쥬나 아르떼 클래식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무비꼴라쥬에서 직접 배급하는 영화들은 자동적으로 자신들이 소유한 상영관에 걸리게 되니 이러한 경쟁에서는 자유롭게 된다.) 특히 9개관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는 롯데시네마의 아르떼 클래식과 달리 비교적 전국에 고르게 퍼져있는 CGV의 무비꼴라쥬 상영관을 얼마나 많이 잡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당연히 무비꼴라쥬는 모든 독립, 예술영화를 상영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영화만을 골라서 상영하게 된다. 그리고 무비꼴라쥬에 상영이 결정된 영화들은 포스터 하단에 자기 영화가 CGV 무비꼴라쥬에 상영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무비꼴라쥬’ 마크를 붙인다. 이제 곧 ‘무비꼴라쥬’가 ‘아트하우스’로 이름을 바꾸니 곧 ‘무비꼴라쥬’ 마크도 ‘아트하우스’ 마크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무비꼴라쥬의 선택을 받지 못한 대다수의 많은 영화들은 수도권과 경남에 편중되어 있는데다가 몇 안 되는 영화관들과 손을 잡기 위해 제 2의 경쟁에 나서게 된다.

▲ CGV 무비꼴라쥬에서 상영이 결정된 영화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무비꼴라쥬에서 상영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포스터에 ‘무비꼴라쥬’ 마크를 붙인다. 사진은 2014년에 개봉한 <모스트 원티드 맨>의 한국 포스터 일부.

그렇다면 멀티플렉스가 아닌 영화관들은 이러한 사정에서 자유로울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독립영화 상영관은 CJ가 소유한 CGV, 롯데에서 소유한 롯데시네마 등과 비슷하게 독립영화 제작, 배급사에서 소유하는 일이 많다. 물론 독립영화의 특성상 영화 흥행만으로는 회사를 꾸리기 어렵고 그러면서 세계 각국을 막론하고 자연스럽게 영화사가 극장을 겸업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갈수록 독립영화 내부의 상영관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영화사가 직접 상영관을 소유하였는지의 유무는 독립영화의 흥행에 있어 중요한 요인일 수밖엔 없다. 2014년 현재 영화사 진진이 씨네코드 선재를, KT&G상상마당이 시네마 상상마당을, 영화사 조제가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을, 태광그룹 계열의 티캐스트가 씨네큐브 광화문을, 영화사 백두대간이 아트하우스 모모를, 이모션픽쳐스가 필름포럼을, 엣나인필름이 아트나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곧 독립영화계 내부에서도 상업영화와 마찬가지의 빈익빈 부익부를 낳는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9월 초에 개봉했던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자유의 언덕>은 10월 18일 현재까지 총 46개 스크린에서 2,718번 상영되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상영된 독립, 예술영화인 이홍기 감독의 다큐멘터리 <순천>은 18개 스크린에서 415번 상영되었다. 순천의 경우, 개봉 초기에 전북 지역 한정으로 개봉한 뒤 추후 전국 개봉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스크린과 상영회수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하다. <자유의 언덕> 보다 일찍 개봉했던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은 스크린수는 45개로 <자유의 언덕>과 비슷하나 상영회수는 855번으로 큰 차이가 났다. <자유의 언덕>의 상영시간이 67분이라 일반적인 영화에 비해 짧아 하루에 많이 상영하기에 용이한 점이 있다해도 이 격차는 너무나도 상징적이다.

▲ 영화 <비긴 어게인>은 340만 관객을 돌파하며 ‘다양성 영화’ 중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지만 동시에 ‘다양성 영화’의 기준과 조어 자체 대한 비판이 조금씩 퍼지게 되었다.

한편 일각에서는 ‘다양성 영화’라는 말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애초 ‘다양성 영화’라는 말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2007년에 만들었던 단어로 독립영화, 예술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 규모로 개봉하거나 제작되는 영화를 모두 통칭하고 있다. 정부의 제작, 개봉 지원은 이 ‘다양성 영화’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다양성 영화’가 지칭하는 폭이 너무 넓다보니 독립, 예술영화 안에 존재하던 빈익빈 부익부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높은 제작비로 완성되었던 것은 물론 이십세기폭스코리아라는 할리우드 직배사의 배급망을 탔던 영화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수면 위로 오르게 만든 영화는 다양성 영화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둔 <비긴 어게인>이었다. 한창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상영관 독점 문제와 배급사-극장 간의 수직 계열 문제를 낳아 영화판을 더욱 시끄럽게 만들 때 <비긴 어게인>은 개봉 규모에 대비해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어 <명량>과 대비되는 용도로 흔히 인용되었다. 그러나 <비긴 어게인> 역시 <명량>에 최민식, 류승룡과 같은 배우가 나오는 것과 같이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같은 유명 배우가 등장하며 제작비도 2500만 달러로 할리우드의 상업영화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립, 예술영화와는 또 다른 차원의 영화였다. 그러한 영화가 어느 순간 <명량>에 맞서는 영화로 이름을 올리고 ‘다양성 영화’의 가능성을 보이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게 된 셈이다.

한창 <워낭소리>가 2009년 290만 관객을 달성해 한국 독립영화는 물론, 독립 다큐멘터리로써도 당분간 깨질 가능성이 없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을 때 누군가는 계속 독립영화 흥행작이 등장해야지만 독립영화가 뿌리를 박을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을 했었다. 그리고 그의 주장대로 2009년 이후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표면적으로 독립영화관의 수는 증가했고, 독립 · 예술영화 흥행작도 계속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의 뒷면에는 쉽게 상영관을 잡지 못하는 작품들의 현실과 함께 독립영화 내부의 격차가 있다. 사람들은 <명량>을 비롯해 <트랜스포머> 시리즈, <광해 : 왕이 된 남자> 들이 상영관 독점으로 논란이 될 때 독립영화를 비롯한 ‘다양성 영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고 그러한 영화들에는 희망이 있다고 쉬이 단정했던 것에 비하면 현재 독립영화가 처해있는 실상은 참으로 어렵고 곤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CGV는 자사의 독립영화관 이름을 ‘아트하우스’로 바꾸면서 자신들이 곧 ‘아트하우스’라 선언을 한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하거나 보기 위해서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거쳐 가는 장소가 CGV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의 장담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지금 독립영화가 놓인 현실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이는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때로는 교양을 충족하기 위해, 때로는 일반적인 영화와 다른 영화들을 관람하기 위해 계속 CGV의 ‘아트하우스’를 찾아가겠지만 그 곳에만 찾아가는 관객들은 결국 CGV에서 상영되지 못한 <탐욕의 제국>, <다이빙벨> 같은 작품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미 정부에서 관리하는 영화 교육기관인 한국영화아카데미가 CGV와 대놓고 손을 잡는 등 CGV는 상업영화는 물론 독립영화에서도 너무나 큰 손이 되었고 완전히 떼어버리기도 곤란한 존재가 되었다지만, 이러한 현실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

며칠 전,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인 ‘서울영상집단’은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남긴 바가 있다. 그 글에는 독립 다큐멘터리가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해 영화제나 각종 기관의 지원 프로젝트에 참여해 서로 간의 경쟁을 하고 그러는 사이에 독립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정신인 연대와 협동이 점차 퇴색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독립 영화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인 듯 하다. 시장 자체는 분명 커져가고 있지만 그 시장의 단물을 맛볼 수 있는 영화는 너무나도 제한적이고, 결국 독립 영화는 자본과 시장에서 ‘독립’되기는커녕 오히려 종속되는 길을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대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자리에서 현실을 쉽게 타파할 수는 없지만 결국 자본의 종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공공성과 공동체 운동과 연결을 짓는 행위이다. 지역에 위치한 작은 영화관, 자발적으로 세운 영화 상영공간 혹은 공동체 상영 등 기존의 멀티플렉스에 계속 의존하는 대신 조금씩 다른 시도를 꿈꾸고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CGV의 ‘아트하우스’ 출범은 그러한 고민을 낳는 시작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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