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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지고 사세요”의 나라, 저축 장려의 의미저축의 날,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저축을 원하는가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10.28 16:07

제51회 저축의 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날은 꼭 반세기 전, 그러니까 현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일 게다. 

대체로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공로를 부인하는 편이나, 그가 경제성장에 집착했다는 사실과 그 방면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 본인들이 한국 사회를 일으켜 세웠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국가가 주도한 ‘저축 장려’ 역시 그가 추구한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일본이 건넨 배상금, 그리고 한국군이 베트남파병 과정에서 송금한 돈과 함께 국민들의 저축 자금은 한국의 산업화를 일구어낸 ‘돈줄’, 아니 ‘젖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중 한일협정의 내용과 베트남파병이란 결정에 대해선 윤리적인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저축 장려만큼은 그런 비판도 필요없이, 나무랄데 없이 성공적인 정책이라 평해야 할 것이다.
 
그 후 오십 년이 지났다. 우리의 국가는 아직도 저축을 장려하고 있을까? 국가는 그렇다고 말한다. 금융위원회는 28일 오전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51회 저축의 날' 행사를 열어 훈장 1명, 포장 3명, 대통령 표창 11명 등 총 91명에게 저축 유공자 상을 수여했다. 배우 김희애 씨와 방송인 서경석 씨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아나운서 백승주, 방송인 변정수 씨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삼성 라이온즈 야구선수 장원삼 씨, 가수 김흥국 씨는 금융위원장 표창을 각각 수상했다고 한다.
 
   
▲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1회 저축의 날' 행사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제는 상을 준 사유가 예전과 다르다. 김희애와 서경석의 수상 사유는 “평소 저축을 생활화하고, 기부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온 점”이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한 박광식 씨는 “45년간 족발 재료 공급업체를 운영하면서 대금이 밀린 거래 상대방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매달 3∼4차례 자원봉사를 해온 점”을 높이 샀다. 박광식 씨는  "10살 때부터 매달 1원씩 용돈을 받아 저축을 시작한 것이 이제는 습관이 돼 매일 은행을 찾는다"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는데, 남을 돕다보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저축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수상 사유에 ‘저축’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끼워 맞춘 말일 뿐 ‘저축’이 핵심적인 사유가 아니다. 우리 시대에 저축은 더 이상 만인이 실행해야 할 미덕이 아니다. 수상 사유와 소감에 드러나는 시대상은 이렇다. 이 시대에 저축할 수 있는 이들은 부유한 이들 밖에 없으며, 저축 유공자 상은 부유하면서 그 돈으로 사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날 한국은행은 저축률을 발표했다. 지난해 가계순저축률은 4.5%이며, 1년 전의 3.4% 대비해서 1.1%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이는 9~13%에 달하는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저축률이 낮은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의 4.2%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던 1988년 24.7%를 기록하며 최정점을 찍은 가계저축률은 1990년대 평균 16.1%를 기록하며 하락세로 돌아선 이후 2001년 4.8%를 나타내면서부터 OECD 평균치를 밑돌고 있다고 한다. 
 
   
▲ 방송인 서경석(오른쪽)이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1회 저축의 날' 행사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으로부터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한국 사회의 극적인 변화의 기점에는 물론 IMF가 있다. IMF 이전 한국 사회는 ‘개인은 저축하고 기업은 빚지는 사회’였다. 시민들이 저축을 하면 국가 통제 하에 기업에게 그것을 빌려줘서 공장을 짓게 한 게 한국의 산업화요 경제성장이었다. 
 
하지만 IMF 이후 한국 사회는 ‘개인은 빚지고 기업은 돈 쌓아두는 사회’로 변모한다. 2천년대 초반 코스닥 광풍과 2천년대 중반 부동산 경기 과열을 거치면서 가계는 투기를 위해 대출을 했고 기업들은 사내보유금을 늘려갔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저축만으로는 주택가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가계 대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거품경제 정국에서 참여정부는 부동산을 잡는데 실패했고, 이후 등장한 보수정부는 부동산이 떨어지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막기 위해 대출을 부추겼다.
 
그 결과 중산층과 서민들의 상당수가 자산을 부동산의 형태로 부채와 함께 보유하게 되었고 상당수 청년세대는 올라가는 집값에 한숨을 쉬면서 부모님의 자산 유지를 위해선 폭락을 바라지도 못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물론 부동산이 없는 이들도 생계를 위해 빚을 지게 되었다. 
 
   
▲ 배우 김희애(오른쪽)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1회 저축의 날' 행사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으로부터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 더 이상 ‘쌍팔년도’ 수준의 저축률은 불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잠깐만 들여다봐도 한국 사회의 풍경은 저축을 장려하기는 커녕 미래를 대비하고픈 기본적인 욕망에서 나오는 저축마저 불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문제를 대면하지 않는다. ‘초이노믹스’란 이름으로, 수술을 해야 할 시점에 모르핀 주사나 놓는다. 그나마 이제는 진정제의 ‘약빨’도 떨어질 판이다. 허울만 남은 저축의 날, 국가가 주는 표창은 이런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국가는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소! 그래서 인정 많은 돈 많은 자들을 격려하였소이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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