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이 '촛불' 불렀단 적개심에서 끝내 교양국 '해체'까지 관련 정정 보도문]

본 신문은 2014년 10년 28년 '2011년 7월 주식회사 문화방송 <PD 수첩> 담당 김철진 부장이 제작진의 노트북을 뒤적이고 책상을 열어보는 등 사찰했다.'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2011년 7월 주식회사 문화방송 <PD 수첩> 담당 김철진 부장이 제작진의 노트북을 뒤적이거나 책상을 열어보는 등 사찰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기사를 바로 잡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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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교양제작국’이 끝내 해체된다. 교양제작국 소속 PD들 일부는 외주 제작물을 관리하는 콘텐츠제작국으로 나머지는 예능1국의 제작4부로 이동한다. 이와 함께 MBC 대표 교양 프로그램 <불만제로>, <원더풀 금요일> 등이 폐지가 이미 확정됐다. MBC를 관리감독하는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김문환 이사장은 이번 조직개편과 프로그램 폐지에 대해 “성과가 적어서”라고 답했다. MBC 이번 조직개편은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역할이 아닌 사업자로서의 ‘수익성’과 ‘성과’가 전면화 된 것이다. 보도국 내에 ‘뉴스사업부’를신설한 것은 너무 적나라한 위악이다.

MBC의 교양제작국의 뿌리는 ‘시사교양국’이다. 2012년 큰 집에 불려가 ‘쪼인트’를 맞았다는 김재철 전 사장이 조직을 개편하기 전 ‘시사’와 ‘교양’은 한 몸이었다. 그걸 김재철 전 사장이 쪼개고, 이번에 최종적으로 해체한 것이다. 근 5년 여의 세월이다. 수난의 MBC 시사교양국, 과연 MBC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MBC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MBC ‘시사교양국 수난’의 시작, <PD수첩> 흔들기에서 시작

MBC ‘시사교양국’의 수난은 2008년 정권교체부터 시작됐다. 타깃은 정확했다. <PD수첩>이었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사는 <PD수첩> 수난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잖아도 '방송 때문에 정권을 잃었었다'는 적개심에 불타던 정권에게 <PD수첩> ‘광우병 편’은 일종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이 한 편의 보도를 보수언론 전체는 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및 방통위원회,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매일 같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물어뜯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PD수첩의 광우병 사망자 조작 사실 밝혀졌다’는 제목의 사설을 싣었다. 지금까지도 보수언론들의 대표적 왜곡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기사다. 협공이었다. 여당의 진성호·김용태 의원은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PD수첩, 광우병 위험 어떻게 왜곡 과장했나’를 배포했다. 곧바로 바통은 정부여당 추천이 절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방통심의위가 이어 받았다. 방통심의위는 철저히 다수결 원리에 따라 MBC <PD수첩>에 최고 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했다. 당시, 여당 추천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은 <PD수첩>을 두고 “제작진들의 의욕이 넘쳐서 알면서고 그런 것(오역) 아니냐”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정부여권은 물론 보수세력 전체가 MBC <PD수첩>을 바라보는 시각을 대변했다. 해당 심의결과는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의 명예훼손 근거가 되면서 형사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내부에도 적은 있었다. MBC 경영진과 관리감독 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C 경영진들은 제작진의 의사와 상관없이 방통심의위의 ‘시청자사과’ 결정에 일방적으로 사과방송을 송출했다. 그리고 당시 정호식 시사교양국장을 다른 보직으로 인사발령했다.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은 “시사교양국과 보도제작국이 분리돼 있어 소재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한 뒤, 사실상 두 부처의 통폐합을 종용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외부의 간섭을 배척해야할 책임자들이 오히려 시사교양국 PD들의 적으로 나선 격이었다.

▲ PD수첩 동료인 이춘근 PD 연행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김보슬 PD ⓒ민중의소리

검찰 역시 뜨겁게(!) 화답했다. MBC에 촬영원본 제출을 요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검찰은 한 발 더 나아갔다. MBC <PD수첩> 이춘근 PD를 시작으로 밤 12시~새벽2시 사이에 조능희 PD와 송일준 PD, 김은희·이연히 작가를 연이어 체포했다. 도주의 우려가 없는 언론인에 대한 긴급체포, 결코 벌어져선 안되는 일이 대명천지에 벌어진 셈이었다.

이후 MBC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들은 길고 긴 법정 투쟁을 통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 당시 겪었던 수많은 고초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리고 MBC 시사교양국에 대한 수난은 그렇게 시작됐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2, 시사교양국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해야할까, MBC <PD수첩>은 그래도 살아남았다. 최승호 PD의 역할이 컸다. 2010년 4월 MBC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은 향응 및 성접대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검사 57명의 실명이 담긴 문건을 공개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비롯해 법무부 고위직 인사와 부장검사들이 다수 연루돼 있었다. 훗날, 최 PD는 그 압력을 버텨낼 수 있던 까닭에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이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MBC <PD수첩> 제작자율성에 대한 간섭은 점차 심해졌다. 시사교양국의 칼끝이 살아있는 권력을 향할수록 그 권력자들은 MBC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해 8월 일이 터졌다. MBC <PD수첩> 최승호 PD는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을 제작했으나, 김재철 사장은 ‘방송 보류’를 결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국책사업이자 천문학적 규모의 토목공사였던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권 입장에서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하는 문제였다. 많은 논란 끝에 방영이 됐지만, 이미 그때 시사교양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때부터 MBC 경영진은 노골적으로 조직개편을 압박하며,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흔들었다. ‘시사교양국’ 조직 전체가 타깃이 됐다. MBC 사측은 <후플러스>, <김혜수의 W>를 폐지했다. <후플러스>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가치를 가지고 만든 프로그램이었고, <김혜수의 W>는 심층적인 정규 해외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MBC 경영진은 해당 프로그램들에 일방적인 폐지를 통보했다.

▲ MBC <후플러스> 홈페이지 캡처

그리고 MBC는 2011년 2월 조직개편에 돌입했다. <PD수첩>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하는 조직개편안이었다. MBC 경영진은 조직개편의 이유를 ‘조직의 슬림화’를 들이댔다. 교양국을 폐지한 지금과 같은 논리다. 당시, 시사교양국 소속 PD들은 “시사교양국이 편성제작본부로 이동할 경우 <PD수첩>과 같은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경영진의 노골적인 간섭이 용이해지게 된다”, “편성본부장이 아이템 기획과 결정, 예산 확보 등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제작의 완성도보다는 사측의 입김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시사교양국장 자리는 김재철 사장과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윤길용 씨에게 돌아갔다. <PD수첩>에 대한 직할통치의 시작이었다.

윤길용 효과는 강력했다. <PD수첩>의 상징과 같던 최승호 PD가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인맥으로 활용되고 있는 소망교회를 취재하던 중 최 PD는 갑자기 강제발령 났다. 그 후, 소망교회 취재는 중단됐고 관련 방송은 끝내 전파를 타지 못했다. 이 때 최 PD와 함께 <PD수첩>을 만들던 제작진 11명 가운데 6명을 이후 다른 부서로 강제 발령났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사의 2라운드의 허망한 종료였다. 당시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PD수첩 희석시키자는 게 솔직한 속내”라고 대놓고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3,…방송프로램 ‘직접개입’

이후에도 <PD수첩>의 수난은 계속됐다. 1차 조직개편을 통해 <PD수첩>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시키고 최승호 PD등 유능한 PD들을 타 부처로 발령 낸 MBC는 급기야 프로그램 내용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기 시작했고, 소속 PD들에 대한 감시도 노골적으로 시행했다.

전성관 PD가 <PD수첩>의 코너 아이템으로 ‘MB 국가 조찬기도회 무릎 논란’을 방송하려했지만 막아섰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다만 “민감한 사안이다”, “헤프닝성 아이템”이라며 취재를 막았다. 민감한 사안을 다뤄야 할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민감성을 빼라는 지시였다. 문제는 취재중단에서 그치지 않았다. 윤 시사교양국장은 전 PD를 취업규칙 위반으로 인사위원회에 회부해버렸다. 이 밖에도 윤 시사교양국장은 <PD수첩>을 통해 ‘남북 경협 파탄 그 후’ 아이템을 방송하려던 이우환 PD와 '황우석' 편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눈물>을 제작한 한학수 PD를 각각 용인드라미아와 경인지사, 비제작 부서로 인사 발령했다. 갑작스런 인사였다.

▲ MBC스페셜 홈페이지 캡처

MBC 경영진들은 간섭은 이후 더 꼼꼼해졌다. MBC <MBC스페셜>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 편 불방(2011년 6월)을 결정했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 체제에서 ‘MB 무릎기도 사건’과 ‘남북경제협력 중단 1년’ 아이템에 이은 세 번째 불방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논란은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해당 편 불방이 ‘경남 사천’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의 아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김재철 사장이 해당 지역구에서 한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언론계에 파다할 때였다. 이후, 김 전 사장은 지난 4월 새누리당 사천시장 후보 경선에서 출마해 탈락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멀쩡하게 완성돼 내부 시사회까지 거친 프로그램을 불방시킨 셈이었지만, 이후 김 전 사장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시사교양국 PD들에 대한 감시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같은 해 7월 <PD수첩> 담당 김철진 부장이 제작진의 노트북을 뒤적이고 책상을 열어보는 등 사찰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으켰고, 새누리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다룰 예정이던 방송은 경영진과 시사교양국장의 지시로 인해 상당 부분 수정되기도 했다. 회사의 이런 기류는 노동조합에 속해있던 이들은 물론 비조합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PD수첩> 김영호 PD는 한미FTA 아이템과 관련해 촬영까지 모두 마쳤지만 김철진 시사교양2부 부장의 반대로 방송이 무기한 보류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1년 9월 14일에는 MBC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들에 대한 무죄판결이 선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는 김보슬·송일준·이춘근·조능희 PD등 제작진을 재차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조능희PD와 김보슬PD에게 정직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가 달렸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4…‘시사’와 ‘교양’ 쪼개기 그리고 교양국폐지까지

MBC노조가 2012년 초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내걸고 파업에 들어간 사이 MBC는 2012년 4월 <PD수첩>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해체하는 조직개편안(제2차)을 발표했다. 편성제작본부 아래 <PD수첩>이 속해있던 시사교양국은 보도제작국과 통합돼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됐다. 그리고 시사제작국장에 심원택, 교양제작국장으로는 김현종 씨가 각각 배치됐다.

심원택 시사제작국장은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다루려 했던 국정원 아이템을 불방시킨 장본인으로 지속적으로 시사·고발 보도를 막아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인물이다. 김현종 교양제작국장 또한 <PD수첩>을 망가뜨린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던 이였지만 회사는 오히려 보란듯 그들을 임명해 시사와 교양을 보는 시작을 과시(!)했다.

그리고 끝내 최승호 PD를 해고(2012년 6월)했다. 최 PD가 MBC노조 파업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고, 적절한 해명도 듣지 않은 채 해고가 확정됐다. 그리고 PD를 넘어 시사교양국 내 작가들까지 손보기에 돌입했다. <PD수첩> 작가 해고사태가 벌어진 게 2012년 7월의 일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 길목을 끊고 핵심 인사들을 축출하며 MBC <PD수첩> 길들이기, 시사교양국 장악은 완성됐다. 그 결과 <PD수첩>의 위상은 말할 수 없이 쪼그라들었다.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이지만 ‘돈’을 위해서는 언제든 방송시간을 내주어야했고, 연성 아이템으로 점철된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이 되었다. <PD수첩> 방영 시간에 철지난 영화가 틀어지기도 했고, 드라마 제작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됐을 때도 또 속절 없이 방송 시간을 내줘야 할 정도로 초라한 프로그램이 됐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MBC 사옥 앞에서 교양제작국 해체 반대 피케팅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끝없이 이어지던 MBC의 ‘시사교양국’ 손보기는 안광한 사장 체제에 이르러 조직개편을 통한 아예 교양제작국을 해체해버리는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시사교양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하나의 ‘국’이 통째로 사라지게 된 셈이다. MBC를 대표했던 교양 프로그램들이 사실상 전부 사라지게 됐다. <PD수첩>은 간판이 남을지도 불확실하지만, 남더라도 계속된 수난사 속에 이미 죽은 프로그램이 된지 오래다. 뭐가 더 남아있을까. MBC 경영진은 회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직원들을 아예 회사 밖으로 내쫓을까.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기대는 너무 낭만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영방송이 교양국이 없앨 수도 있다는 걸 언제 상상이나 해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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