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행위를 규제하는 네 가지 틀

사람은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는 다양한 규제들에 의해 구속된다.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은 그의 저서 ‘코드와 사이버공간의 다른 법률들(Code and Other Laws of Cyberspace, 1999)’에서 이러한 제약은 크게 법(law), 사회규범(social norms), 시장(market), 구조(architecture)라는 네 가치 차원에서 규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마다 구체적인 법, 사회규범, 시장, 구조의 내용은 다르지만, 이상의 네 가지 차원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체계를 관통하는 접근요소라 할 수 있다. 법은 성문화된 규제이며, 사회규범은 그 사회에 녹아있는 윤리·도덕적 행동양식 차원의 규제이다. 시장은 경제적 차원의 시장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공급과 소비라는 과정이 수반되며, 인간 행위의 상당부분은 경제적 행동이기 때문에 시장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 보여지지만, 대가라는 장벽을 통해 사람의 행동에 상당한 제약을 가한다. 마지막으로 구조는 구체적인 설계를 통한 제약을 의미한다.

레식은 사이버공간 상의 행위규제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동일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본다. 법은 저작권법, 명예훼손법, 음란물과 관련한 규제법 등을 통해 사이버공간 상의 행위를 규제한다. 사회규범 또한 사이버 공간 내의 행위를 제한한다. 예컨대, 특정 공동체에 올린 부적절한 글은 비방과 위협을 받게 되며, 이처럼 사회적으로 해서는 안될 행위에 대한 위협이 사회규범이라 할 수 있다. 시장의 가격체계는 온라인 접속을 제한하며, 구조도 사이버공간 상의 행위를 규제한다. 지금의 사이버공간을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즉, 코드(code)는 행동양식에 대한 일련의 제약을 가한다.

▲ 이미지 자료=참여연대

사이버공간 상의 문제를 풀어가는 관점

그럼 레식의 네 가지 차원적 접근을 바탕으로 실제 우리 사회의 사이버공간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이슈인 ‘마녀사냥’ 문제를 접근해 보자.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따르면 마녀사냥의 어원은 ‘중세 중기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일대에 행해졌던 마녀나 마법 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으로부터 형벌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로서,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문제이다. 디지털 시대의 태동과 함께 사이버공간 상의 마녀사냥 문제는 상당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인터넷공간 상의 마녀사냥 문제는 과연 법적, 사회규범적, 시장적,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예컨대, 명예훼손과 같은 법적 소송이 마녀사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특정 인물에 대한 공격성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소프웨어적으로 막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며, 효과적인 방법일까?

이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마녀사냥은 사이버공간 상의 문제이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인간의 인격과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격은 크게 보았을 때, 표면적/ 잠재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면/비대면적 차원에 따라 상이하게 표출된다. 사이버공간 상의 마녀사냥은 사이버공간이 가진 비대면적 특수한 상황이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쾌락성과 같은 잠재적 요소를 더욱 촉진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법적, 구조적 규제와 같은 제재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이버공간의 등장은 분명히 사이버공간 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탄생시켰다. 사람마다 사이버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지는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기존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사이버공간 상의 정체성은 분명히 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이버공간 상의 정체성은 현실 정체성과 혼돈되면서 ‘마녀사냥’과 같은 문제들을 더욱더 표면화시키고 있다.

이상의 마녀사냥의 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사이버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서 사이버공간이 만들어내는 특수성과 이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근저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금의 사이버공간 상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은 단순히 법적과 구조적 관점에서 풀 수 없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상주의처럼 들리겠지만, 사이버공간은 자유로워야 하며, 공유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아니 최소한 자유로워지고, 공유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공간이다. 물론 이는 사이버공간을 규제하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법적, 구조적 통제로 가는 것에 대한 경계임과 더불어 사이버공간 규제 이슈에 대한 보다 다양한 접근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예컨대 사이버 윤리 및 인격과 관련한 교육이나 캠페인을 사회적으로 강화한다거나, 개인정보보호 및 사이버 윤리를 실천하고 있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 컬렌 호백(Cullen Hoback)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Terms and Conditions May Apply)> 포스터 이미지.

사이버공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장치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이용자 개개인이 사이버공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자유는 훼손되어질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사이버공간을 형성시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자의든지, 타의든지 점차 사이버공간을 통제해 가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용자들이 사이버공간을 통해 추구해야 할 최종적인 목표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고, 재미를 추구하는 공간이어서는 안된다. 이용자 스스로 권익을 실현할 수 있고, 사상을 공유하며, 협력하여 사이버공간의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진정 여러분은 어떤 사이버공간을 원하는가?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컬렌 호백(Cullen Hoback)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Terms and Conditions May Apply)>를 보면서 한 번정도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물론 나의 생각과 감독의 프레임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박수철 _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