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방송된 무한도전 401회는 전편에서 방영된 400회 특집 – 비긴 어게인 2를 이어나갔습니다. 한 팀이 된 유재석과 정형돈은 급기야 인적 없는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습니다. 두 사람의 유명세에 몰려든 인파, 혹여 시민의 도시락에 먼지라도 들어갈까 염려한 국민MC 유재석의 극진한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벌써 8년이나 이런 유재석과 동행중인 정형돈은 누구보다 그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인적 없는 곳을 한번 찾아볼게요.” 두 사람은 검색을 통해 정형돈이 알아본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사람 없는 곳을 찾아 찾아 달려온 강원도 영월. 열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 캄캄한 밤하늘을 덜컹대는 트럭 타고 달리는 둘이 꼭 사람 많은 낮 시간을 피해야 하는 흡혈귀 일족 같아 안쓰럽더군요.

“운전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몸소 마중 나온 숙소 주인의 트럭에 옮겨 타기 전 벨트를 풀며 정형돈이 건넨 낮은 목소리에 문득 뭉클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그의 입에서 듣는 ‘선배님’이라는 호칭.

되새겨보면 유재석과 정형돈은 무한도전의 어느 멤버보다 특별한 관계죠. 자유분방한 연예계에서 특출 나게 서열이 엄격하다는 개그계. 거기다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KBS 공채 개그맨으로 연결된 두 사람은 이미 출신 성분부터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여있는 셈입니다.

동명의 영화에서 주제를 빌려왔을 Bebin Again, 비긴어게인. 일명 나 다시 돌아갈래! 특집에서 멤버들은 우연으로 맺어졌지만 각각의 팀은 나름의 주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미혼 남자와 유부남. 이제 둘 만의 세계가 전부 아닌 우정의 그늘을 비추며 쌉쌀한 새드엔딩으로 마감됐던 노홍철, 하하의 죽마고우 특집.

박명수의 아양 섞인 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정준하의 참을성 강한 태도는 박명수의 태도를 견딜 수 없어 프로그램을 그만두려 했었다던 초창기 무한도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무렵 운동을 하던 그가 지난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던 자신의 찡그린 얼굴. 그 짜증스러웠던 감정을 삭이고 쌓은 오랜 우정과 신뢰가 투정쟁이 정준하를 얼마만큼이나 성장시켰는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파트였습니다.

그렇다면 유재석과 정형돈은 어떤 주제의 비긴 어게인이었을까요. “운전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고생은 무슨. 이게 여행이지.” 하루의 절반을 달린 고행길이 끝나고서야 선배의 운전에 고마움을 표하는 정형돈과 서글서글하게 장난으로 받아주는 유재석의 너그러움을 보며 그 해답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유재석은 무려 아홉 시간 이상을 운전해야 했습니다. 바로 옆 자리에 10년차 기수의 어린 후배가 앉아있는데도 말이죠. 운전하면서도 내내 옆 자리에서 투덜대는 정형돈을 넉살맞게 위로해주었고요.

돌이켜보면 지난 8년간 유재석과 정형돈은 줄곧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예능계에 데뷔한 이후 줄곧 부정적이었던 어린 후배와 그의 기를 한껏 북돋아주었던 10년차의 대선배. 산장에 도착한 두 사람이 진실게임 비슷한 걸 할 때 정형돈은 ‘지나치게 높아진 무한도전의 기대치에 사람들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며 그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던 유재석은 이 순간의 정형돈에게 반드시 필요한 혜안을 전했습니다.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는 안 좋을 수도 있지. 그럼 아홉 가지 좋은 거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

한글날 특집에서 증명되었듯 방송과 사석의 말씨가 차이 없는 유재석이지만 어쩐지 유독 사적인 대화처럼 느껴졌던 그의 목소리 톤이 진심을 더했습니다. 어둠에 가려 아른거렸지만 선구자의 말을 듣는 것처럼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형돈이 진심에 신뢰를 더했습니다. 매번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을 건네주는구나. 저 사람은.

얄궂게도 전회 특집인 한글날 에피소드 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는 불유쾌한 사건이 터졌었죠. 무한도전 멤버들이 얼마나 예쁜 말을 쓰는가를 관찰하고자 준비한 제작진의 몰래카메라에서 욕설 순화용의 삐- 삐- 경고음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유재석의 말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유재석의 한결 같은 말씨는 딱히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네티즌이 더 집중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죠.

반응이 좋았던 정형돈의 라디오 진행을 유재석과 하하가 짓궂게 놀리자 이것이 그를 무시한 거라며 트집 잡는 과대해석이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시청자 게시판은 한동안 전쟁 전야처럼 살벌했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유재석이 정형돈을 싫어한다, 정형돈의 라디오가 잘 되자 질투하는 것이라는 의견 또한 있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어디 낯간지러운 칭찬을 하는 사람들인가요. 정형돈을 야유하는 멤버들의 반응이야 흔하고 흔했던 상황극 장난질일 뿐이었는데, 무려 8년간 무한도전을 시청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들만의 애정 표현을 이해 못하는 상황이 당황스럽더군요. 장장 9시간 이상을 후배를 대신해 운전대를 잡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럴 땐 그냥 웃어야지. 그럴 땐 그냥 웃는 거야.”

“나는 그런 게 고민이 아니야. 형돈아, 되게 아까워. 시간 가는 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정말 이 일이 재밌어졌던 적이 있는 것 같애. 명수 형은 그게 일이 잘 되니까 재밌지 라고 하는데 그런 게 아니었어. 정말 웃겼어. 너랑 방송하면 네가 웃겨서 정말 재밌구. 명수형이 웃겨서 정말 재밌구. 난 솔직히 말하면 진짜 솔직히 말하면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건 별로 걱정이 안 돼.”

무한도전이 언제 끝날지가 고민이 아니라는 유재석이 다음 말을 잇지도 않았는데 그의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답을 맞히는 정형돈을 보며 그간 유재석이 얼마나 많은 따뜻한 말들을 그에게 전해왔는가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어! 난 그게 고민이야. 그래서 좋아, 나는. 어떡하지. 일출을 볼래. 형돈아?”

두 사람은 결코 어색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불빛도 인적도 없는 산장. 그 캄캄한 어둠에서 모닥불에 의지해 놀이거리 하나 없음에도 그저 대화만으로 몇 시간을 훌쩍 넘길 수 있는 진국 같은 두 사람의 관계.

여전히 유재석은 정형돈의 의문에 답을 하고 그의 고민에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정형돈이 정말 잘 되길 바랐던, 그리고 지금도 바라고 있는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일 것입니다.

왜 무한도전에게만, 혹은 나에게만 이토록 가혹한 잣대를 들이댈까. 라고 불평했던 정형돈은 이제 그런 생각들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그 단단한 멘탈을 갖게 되기까지, 그간 선배 유재석이 건넸던 무수한 격려가 있었겠죠.

“어떻게 열 가지가 다 좋아. 그런 인생은 없어.”

정형돈과 유재석의 비긴 어게인. 그 주제는 딱히 비긴 어게인 할 필요가 없이 8년 내내 한결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유재석은 지친 정형돈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드라마와 예능 연예계 핫이슈 모든 문화에 대한 어설픈 리뷰 http://doctorcal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