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에서 최전무로 출연 중인 이경영이 이재문 PD에게 보낸 트위터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일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일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있다’ 당연히 미생은 후자의 경우라는 뜻이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경영이 보낸 트윗 내용은 누군가의 댓글을 전달한 것이다. 적은 분량이지만 미생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에게 참 뿌듯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묘하게도 미생 역시 여느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높은 빌딩과 번듯한 일류기업의 내부가 비쳐지지만, 그것이 보는 이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애환과 연민을 갖게 한다. 좀처럼 사무실 풀샷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미생이라는 대전제가 살아 있는 탓으로 봐야 할 것이다. 특히 4회 마지막에 인턴에서 2년 계약직이지만 다시 사원으로 돌아온 장그래에게 “우린 모두 미생이야”라고 말하는 오과장의 대사는 시청자를 이 드라마에 쏙 빨려들게 하는 마력을 과시했다.

오과장의 이 말은 마치 “당신들은 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할 거야”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우리네 일상이 참 힘들고 때로 서럽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그 일상으로부터 도망치고 혹은 잊고 싶은 마음에 로맨틱한 이야기에 온 마음을 다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허탈감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미생에는 러브라인도 없고, 우리의 일상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과시도 없다. 그래서 또 미생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드라마의 진정한 신의 한 수는 이성민이다. 드라마 등장인물들과 전부 연관이 있는 유일한 배역인 오과장은 그만큼 주어진 임무가 막중했다. 최고위층 전무부터 인턴 장그래 심지어 다른 팀의 안영이, 한석율까지 오과장을 거치지 않는 배역이 없다. 그들 모두와 만나는 지점에서 오과장은 뜨거운 호흡으로 이들과 한 몸을 이뤄버리는 연기의 힘을 보이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케미를 살리지 못하는 상대가 없다고 할 것이다.

부하직원 김대리의 징계를 막아보겠다고 자신의 면담 요청도 무시한 채 퇴근해버리는 전무에게 다가가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모습부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미리부터 안영이를 자신의 부서에 올 것처럼 자리배치를 해버리는 설레발까지 오과장의 모습은 팔색조가 초라해질 지경이다. 그런 오과장 앞에 선 것은 안영이가 아니라 장그래였다. 그랬을 때 오과장의 반응은 신입사원 장그래에게 좀 심하다 싶었지만 그렇게 솔직한 상사여서 또한 다행이었다.

속마음을 숨기고 인자한 척 하면서 부하직원을 골탕 먹이는 상사도 얼마든지 존재하니 말이다. 그렇게 정식 직원으로서 첫 출근한 장그래를 겸연쩍게 만들더니 오과장은 이내 옥상에 올라간 장그래에게 정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을 슬쩍 알려준다. “버텨라,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는 모두 미생이다”며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동료의식도 확실하게 알려주는 인간미를 보이기도 한다.

미생의 일차 목표는 완생이지만, 완생이 곧 승리는 아니다. 미생 4회에서는 곤마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곤마는 버리라는 교훈도 나왔다. 곤마의 규모가 작을 때 포기하면 한 번의 전투에서 지는 것이지만 곤마를 키우게 되면 바둑 한 판을 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곤마는 미생의 가장 불행한 결말이다. 미생이 곤마를 피하기 위해서 선택한 가장 큰 것은 한국 드라마의 공식이라 할 수 있는 러브라인의 거부였다. 바둑 초심자가 곤마를 알아차리는 것과 그 곤마를 포기하는 것보다 더 큰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생을 좀 더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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