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가 꿈 대신 차선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직장에서 피곤해 잠들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번 방송의 백미였습니다. 오상식 과장이 부하직원을 챙기는 모습과 장그래에게서 자신이 잃어버린 가치를 다시 찾게 되는 과정이 드러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미생이다;
언제나 세상은 나보다 빨랐다, 토네이토의 중심에 선 장그래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프로 기사가 되지 못한 채 얼떨결에 시작한 무역회사 인턴 생활. 꿈을 위해 달려온 수많은 인턴사원들과 비교해 말도 안 되게 부족한 장그래는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좋은 회사를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고, 그곳에서 4년 내내 입사를 위해서 노력해왔던 이들. 그들 중 최소한의 인원이 선택되어 마지막 관문인 인턴 생활을 하는 그 세계는 전쟁터나 다름없었습니다.

학벌과 지연이 생명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그래는 외계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인턴에 뽑힌 이들은 쟁쟁한 대학을 나왔고, 그들보다 뒤늦게 낙하산으로 인턴 생활을 시작한 장그래는 고졸 검정고시가 전부였습니다. 이런 그를 따돌리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나보다 덜 열심히 했다고 생각되는 이가 자신들과 같은 위치에 함께한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현실은 장그래에게 힘겨움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꼴뚜기 사건은 다시 한 번 장그래의 현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고, 이런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결국 자신이 잘하는 최선이었습니다.

전무에 의해 낙하산으로 인턴이 된 장그래의 사연을 듣게 된 오 과장은 그래서 더욱 싫었습니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황당했지만, 최 전무의 낙하산이라는 사실이 더욱 큰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그래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오 과장은 그를 자신의 팀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딱풀 사건으로 명명된 오 과장의 본심은 장그래에게 감동이었습니다. 내치기만 하던 직장 상사가 처음으로 자신을 팀원으로 인정한 그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 그 이상의 감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 장그래를 자신의 팀원으로 받아들인 오 과장은 본격적으로 장그래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오 과장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장그래는 무역사전을 3일 만에 외우고 업무 파악에 집중해 놀라운 성취들을 보여주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타인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한석율은 다루기 힘든 인물이었습니다. 그라고 다른 인턴들과 다를 수 없었고, 인턴 PT를 자신에게 모두 맡긴다며 장그래를 부려먹기만 하던 한석율과의 인연은 그렇게 탐탁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인턴들이 자신을 폭탄으로 생각하고 접근했듯, 한석율 역시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안영이는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안영이의 인턴 PT 제안은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턴들이 자신을 폭탄으로 생각해서 한 제안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여전히 자신이 헛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영이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단순하게 업무능력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달랐습니다.

외국어도 안 되고 고졸 검정고시가 전부인 업무능력 제로에 가까운 장그래이지만, 그의 진심을 바라보며 그를 동료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인턴 PT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요행수를 바라는 다른 이들과 달리, 말 그대로 진심으로 승부하는 장그래와 함께 준비해 정직원이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바둑을 완전히 접고 새로운 도전을 한 장그래이지만 여전히 그에게 바둑은 꿈속에서 장그래를 지배할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수많은 명인들의 뒤를 따르고 싶었던 장그래.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그들이 자신 곁에서 산산이 부서져 나가는 상황은 서럽게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이를 우연하게 보게 된 안영이에게 그 남자의 눈물은 특별함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장그래와 안영이가 어떤 관계로 발전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원작과 달라지는 이야기들 속에 이들의 러브라인 역시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특별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주말도 반납하고 잠도 줄여가며 업무 익히기에 여념이 없던 장그래는 잠결에도 바둑에 대한 강렬한 애증을 보였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장그래는 그런 마음만큼 지독할 정도의 노력으로 최소한 기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장그래를 품었던 오 과장은 김 대리의 실수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합니다. 계약이 파기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직접 뛰어들어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끈끈함을 엿볼 수 있게 했습니다. 부하직원의 실수를 그의 몫으로 두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해결하는 오 과장은 진짜 상사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장그래에 대한 애정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한석율에 말려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장그래를 보며 보인 오 과장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를 도와주기 위해 없던 일을 만들고,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탄 상황에서 내리던 석율에게 발을 걸며 통쾌해하는 오 과장은 어쩌면 많은 회사원들이 원하는 선임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한석율은 토네이도와 같은 인물이다. 그런 사람 주변에 있는 이들은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는 없기 때문에 태풍의 중심에 들어서는 것이 좋다’는 오 과장의 조언에 장그래는 선택했습니다. 조용하지만 침착하고 철저하게 한석율을 활용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실제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 이상을 보여주기도 했던 한석율은 지금 장그래에겐 가장 좋은 티켓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고요한 토네이도의 중심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죠. 멀리 떨어지려 하면 차라리 그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 아닙니까"

"화도 났고 얄미운 사람이기도 하지만 저한테 한석율씨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존심과 오기를 버려야 한다는 것. 부끄럽지만 일단은 내일은 살아남아야 하니까"

화가 나고 분하기도 하지만 꾹 참는 이유를 그래에게 듣게 된 오 과장은 다시 한 번 그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는 장그래의 모습을 보며, 오 과장 역시 용기를 냅니다.

과거의 문제로 자신이 아끼는 후배를 위기에 밀어 넣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그래의 속마음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자존심이 앞서 있었지만, 그래를 통해 깨닫게 된 오 과장은 김 대리 구하기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이심전심 오 과장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희망을 얻고 회사 생활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장그래는 한석율과 옥상 혈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 과장을 비난하는 한석율에게 과감하게 주먹을 날리는 장그래는 그저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사람에 대한 강렬한 집념과 함께 모든 것을 걸 수도 있는 장그래는 그렇게 멋진 남자이기도 했습니다. 주먹다짐을 하는 과정에서 보인 장그래는 바둑이 철저하게 승부사 기질을 가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상대의 허점을 노리고 강력하게 공격해야만 하는 바둑은 정중동이지만 잔인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자연스러운 에피소드들을 통해 각각의 캐릭터들을 구축하고, 그런 캐릭터들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흐름들을 갖춰가는 <미생>은 웰메이드 드라마입니다. 현재 방송되는 드라마들이 캐릭터 구축에 실패하고 이야기 전개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것과 달리, 이 드라마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모든 것들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흡족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임시완이 꿈결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백미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그런 눈물은 우리 모두 한 번쯤은 흘릴 수밖에 없었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그 꿈이 깨지며 수많은 힘겨움 속에 내던져지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자신의 꿈마저 사라져버린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상황은 우리도 익숙하게 경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었던 임시완의 눈물은 <미생>이 큰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꿈은 존재하고, 그런 꿈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 그건 또 어쩌면 그만큼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드라마 이상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엿보게 하는 <미생>은 흥미롭기만 합니다. tvN을 상징했던 <응답하라 시리즈>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아성을 넘어서는 전설과 같은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는 <미생>은 진정한 힐링 드라마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미생들을 위한 단단한 찬가는 아프면서도 행복하게 다가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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