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와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임방글 변호사가 함께 삼척으로 갔다. 어쩐지 생소해 보이는 조합의 세 사람은 왜 모였고, 왜 하필 ‘삼척’에 갔을까.

▲ 25일 오후 10시 25분, KBS 2TV에서 방송되는 '거리의 만찬' (사진=KBS)

KBS가 한국판 아크로폴리스 재현을 꿈꾸는 본격 정치 버라이어티를 준비했다. 25일 오후 10시 25분, KBS2TV에서 방송되는 <거리의 만찬>(연출 남진현·이지운·유경현, 작가 황민주)은 뉴스 현장에서 1~2분 리포트로 잠깐 소화되거나 그마저도 다뤄지지 않은 ‘갈등의 현장’을 방문해 팽팽한 양측의 ‘속내’를 듣는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갈등을 조정하고,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모든 행위가 정치”라는 주호영 의원과 “정치란 뭐가 옳으냐를 가리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은 국민의 밥그릇을 채우기 위한 싸움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노회찬 전 의원은 원전 유치를 둘러싼 주민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삼척으로 가 ‘진정한 정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돌아본다. MBN, 채널A, 뉴스Y 등 다양한 방송 출연 경험을 가진 임방글 변호사는 조력자가 되어 그들과 함께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지난 9일 민간 주도로 실시된 원전 유치 관련 투표에서 삼척 주민들의 84.97%가 반대표를 던졌다. 주민투표율 역시 67.94%로 매우 높았다. 주민들의 원전 반대 열망이 높은 상황이다 보니, 원전 유치를 고수하는 정부에 대한 반감 역시 거셌다. 주호영 의원의 등장에 시민들이 고성과 냉대로 정부여당 결정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표현해 험악한 분위기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회찬-주호영 두 사람은 각각 안전성 문제와 지역 개발론이라는 입장으로 갈린 양쪽 입장을 모두 듣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삼척 장호항에 밥상을 차렸다. ‘거리의 만찬’을 통해 양측의 진솔한 심정을 듣는 데 귀 를 기울이겠다는 것. 삼척시장-반대 주민-노회찬 VS 산자부 차관-찬성 주민-주호영으로 나뉜 양 편은 가감 없는 대화를 나눈다.

▲ 삼척 장호항에서 삼척 원전 유치 찬반 입장을 가진 이들이 각각 3:3으로 나와 가감 없는 이야기를 풀어놨다. (사진=KBS)

제작진은 <거리의 만찬>을 일상 곳곳이 정치인 ‘현장’을 끌어내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판을 까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정돈된 인터뷰나 정갈한 내레이션보다는 현장음 전달에 더 공을 들인 것도, 기존의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와는 차별화된 시도를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거리의 만찬>이 어떤 ‘답’을 던져주는 프로그램은 아니라고 말했다. 남진현 PD는 “‘그래서 뭐?’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하니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다만 저희는 이런 뜨거운 갈등 현장을 사회적 관심사로 끌어올려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이쪽저쪽의 이야기를 충분히 나와서 이야기를 했다”며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판을 제공하는, 시사 프로그램이라고 보시면 된다”고 전했다.

MBC에서 30년 전통의 교양제작국을 없애는 등 지상파의 시사교양 기능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KBS가 새로운 정치 버라이어티를 선보이는 점도 흥미롭다. 보통 예능국과 교양국에서 시도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를 주로 담당하는 기획제작국에서 탄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입사 11년차인 이지운 PD는 지금까지 기획제작국에서 시사 프로그램 파일럿을 해 본 건 처음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지상파 전반적으로 시사 기능이 위축돼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KBS가) 정면 승부수를 던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당초 8부작 시즌제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던 <거리의 만찬>은 지난 5월 길환영 사장 퇴진 및 공정방송 쟁취 파업 사태를 거치며 제작이 잠정 중단됐고, 논의 끝에 1부작 파일럿으로 축소됐다. 1회 분량만을 가지고 시청자뿐 아니라 사내외 반응을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맞게 된 것. 힘들게 제작된 <거리의 만찬>이 치열한 갈등이 존재하는 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지며 시청자들에게 ‘한국판 아크로폴리스’를 보여줄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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