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가 동계올림픽 2연패를 향한 희망을 드러내 눈길을 끌고 있다.

소트니코바는 최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난 정말 열심히 스케이트 탔다. 영광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한 뒤 김연아 금메달을 가져갔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올림픽 이후의 논란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소트니코바는 또 다른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2연패 달성을 기대해도 되겠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항상 우승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원한다. 정상을 위해 훈련할 것”이라고 답했다.

▲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연합뉴스
이 같은 소트니코바의 발언은 얼마 전 밝힌 내용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내용이다.

소트니코바는 지난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는 "예전의 기량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어느 순간 회복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며 "특히 피로가 쌓이면 힘들다. 웬만하면 그러지 않으려고 하나 가끔은 집에 도착하면 침대 위에 털썩 눕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현역 은퇴를 선언할 듯한 기세였다. 엄청난 논란 속에 따낸 동계올림픽 금메달의 부담을 떨치지 못한 ‘승자의 저주’에 희생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소트니코바의 발언은 정신적인 면에서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 결과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은 발끈하는 분위기다. ‘감히 너 따위가 다시 올림픽 금메달을 노려?’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소트니코바의 발언에 대한 국내 누리꾼들의 악성 댓글에 가까운 반응을 소개하면서 소트니코바의 평창 금메달 획득 발언을 ‘황당 발언’으로 규정하는 언론도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일부 국내 언론의 반응과 태도는 솔직히 유치해 보인다. 어차피 현역 선수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이미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한 차례 획득했던 소트니코바라면, 그리고 차기 대회인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금메달 획득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시상식 ⓒ연합뉴스
소트니코바의 평창 금메달 도전 발언에 필요 이상으로 발끈하는 국내 언론의 반응은 보기에 따라서는 김연아의 은퇴 이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설 수 있을 만한 기대주는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한국 피겨의 현실에 따른 자격지심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2014-2015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가 개막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가운데 소트니코바가 동계올림픽에서 차지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대회에 나서는 반면 한국 피겨는 그랑프리 대회 출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피겨 그랑프리 시리즈의 6개 대회는 세계 상위 랭커들이 출전하게 되는데 남녀 싱글의 경우 엔트리가 12명이다. ISU는 직전 시즌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을 가지고 상위 6명(조)을 2개 대회씩 배정하고 세계선수권대회와 세계랭킹, 시즌베스트 성적, 그랑프리 대회 주최국 어드밴티지 등을 고려해 6개 대회에 다음 랭킹의 선수들을 배정한다. 선수들은 최대 2개 대회까지 초청되며 순위가 밀리면 1개 대회에만 초청된다.

오는 24일부터 시작되는 2014-2015 시즌 ISU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의 6개 대회에 여자 싱글의 박소연(17)과 김해진(17)이 출전한다. 박소연은 그랑프리 1차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4차 ‘로스텔레콤컵’에 초청됐고, 김해진은 2차 ‘스케이트 캐나다’와 3차 ‘컵 오브 차이나’에 출전한다.

한국 선수가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하는 것은 지난 2010-2011 시즌 곽민정 이후 4년만이다. 김연아가 2010 밴쿠버올림픽이 있었던 2009-2010 시즌을 끝으로 향후 진로 구상과 휴식 등으로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박소연과 김해진이 시니어그랑프리 시리즈에 나란히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동계올림픽 시즌 직후 시즌인 탓에 세계 톱랭커들이 대거 휴식에 들어간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시즌의 여자 싱글은 김연아가 은퇴하고 아사다 마오(일본)와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가 휴식에 들어간 상태다.

여기에다 이번 시즌부터 각 대회 남녀 싱글 엔트리가 지난 시즌보다 2명이 늘어난 12명이 된 것도 도움이 됐다.

이렇게 한국 선수가 두 명이나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은 앞서 김연아에 대한 관심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 박소연, 김해진 << 연합뉴스DB >>
김연아가 떠난 세계 피겨계는 김연아의 자리를 대체할 ‘포스트 김연아’가 누가 될지를 놓고 설왕설래 중이지만, 김연아가 떠난 한국 피겨계에서 ‘포스트 김연아’를 논하는 것은 언론의 기사 제목 뽑기에서나 의미가 있을 뿐 실질적인 의미를 찾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 스포츠 전문매체 'Sport.fr'는 최근 "빙판을 뜨겁게 달궈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하뉴 유즈루(19·일본)와 소트니코바가 자신의 위상을 재확인하려 한다고 전하면서 소트니코바가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편파판정 내지 불공정판정 논란 속에 김연아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내용을 소개했다.

이어 이 매체는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 안나 포고릴라야(16), 엘레나 라디오노바(15. 이상 러시아), 그레이시 골드(19), 폴리나 에드먼즈(16. 이상 미국) 등 소트니코바의 위상에 도전하는 경쟁자들을 언급했다.

소트니코바의 경쟁자로 거론된 선수 가운데 한국 선수는 없었다. 소트니코바가 논란의 챔피언일지언정 세계 정상을 다툴 선수로서 인정받고 있는 반면, 한국 선수는 전혀 조명 받고 있지 못하는 이 같은 현실이 김연아가 떠난 한국 피겨가 직면한 냉정한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4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다시 노리겠다는 소트니코바를 비웃을 일은 아니어 보인다. 소트니코바를 비웃는 한국 언론이 오히려 세계 피겨계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안정환에게 골든골을 얻어맞으며 충격의 패배를 당한 뒤 지금까지도 기회만 있으면 한국 축구를 비웃는 이탈리아 언론을 우리나라 언론을 비롯한 세계 언론이 비웃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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