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 코믹스가 있다면 한국은 웹툰

현재 할리우드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블과 DC가 접전을 벌이고 있는 히어로 코믹스, 그리고 <헝거 게임, 메이즈 러너>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코믹스는 한창 정점을 달리고 있으니 이제 시작이라고 봐도 될 것 같고, 소설 역시 잠잠해지면 하나씩 성공을 거두면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소설과 만화가 극장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적지 않은 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리우드와 다른 게 있다면 만화 중에서도 인터넷 문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웹툰의 성공이 영화로 속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출판시장이나 팬층의 형성에서 미국과 사정이 달라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웹툰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작품이 영화로 제작된 강풀을 필두로 곧 개봉하는 <패션왕>도 일찌감치 화제였던 웹툰이 원작이고,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케이블 드라마 <미생>도 웹툰이 원작입니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웹툰 원작 드라마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리학을 다룬 웹툰 <닥터 프로스트>

네이버에서 연재했던 이종범 작가의 <닥터 프로스트>는 여느 웹툰과 달리 한 가지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작가 자신이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이력을 살려 <닥터 프로스트>를 심리극으로 그렸다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된 닥터 프로스트는 한 대학의 상담실에서 근무합니다. <닥터 프로스트>는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상담하는 과정을 통해서 여러 가지 심리를 분석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담은 웹툰입니다.

<닥터 프로스트>와 윤성아

<닥터 프로스트>에는 닥터 프로스트와 더불어 또 한명의 인물인 윤성아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대개 짝을 이뤄서 상담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파트너를 이룰 때는 종종 대립구도를 이루기 마련입니다. 상호보완의 역할을 하는 한편으로 두 사람의 크고 작은 갈등이 극에 재미를 더하는 도구로 쓰이곤 합니다. <닥터 프로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리학 전문가임에도 정작 닥터 프로스트는 공감능력이 결여됐습니다. 그에게 인간은 데이터고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하는 실험과 다름없습니다. 공감이라는 걸 하는 대신 철저하게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반면 윤성아는 좀 더 인간적인 감정으로 상담하러 오는 사람을 대합니다. 당연히 가장 이상적인 것은 둘을 합한 것입니다. <닥터 프로스트>는 이런 등장인물의 관계를 하나의 공식으로 활용합니다.

송창의와 정은채 그리고 <닥터 프로스트>

OCN에서 방영할 예정인 <닥터 프로스트> 드라마에서는 각각 송창의와 정은채가 닥터 프로스트와 윤성아를 연기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송창의는 웹툰 속 닥터 프로스트처럼 염색을 했습니다. 웹툰을 보면 윤성아는 참 발랄한 캐릭터였는데 드라마에서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자신의 심리가 어떤지 모르는 건 물론이고 알려 할 틈도 주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닥터 프로스트>와 같은 웹툰이 인기를 얻는 것은 일면 당연해 보입니다. 약간의 관음증까지 더해져서 비록 만화지만 사람의 심리를 읽는다는 것에서 얻는 쾌감 같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소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입장에서 보니 아무래도 웹툰이라서 그런지 흥미 위주로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뜬금없이 셜록 홈즈 흉내를 내는 것도 거부감이 생기더군요. 진짜 심리학이라고 하기엔 과장과 비약도 있으니 웹툰은 재미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괜히 몇몇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애먼 사람을 오해하기 십상일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OCN의 <닥터 프로스트> 드라마는 원작에 변형을 가해 수사물로 전환한 모양입니다. 이것 때문에 웹툰의 팬으로부터 빈축을 샀습니다. OCN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시도의 드라마를 방영하는 게 기특하면서도 늘 수사물을 지향하는 게 좀 아쉽습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웹툰을 보면 <닥터 프로스트>를 수사물로 각색한 게 완전히 엉뚱한 건 아닙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텅 빈 남자>만 봐도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면모까지 보여줬으니 심리학자로 고정하기도 애매합니다.

인기 웹툰 작가들이 총출동한 예고편

<닥터 프로스트> 드라마의 예고편에선 <신과 함께>의 주호민,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석우, <목욕의 신>의 하일권 그리고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를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의 아이디언지 몰라도 참 재미있는 기획이네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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