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벌집’을 건드릴 모양이다. 조만간 새로운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한다. 벌집 안의 벌들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비정규직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라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세계일보>는 23일 1면에 <비정규직 고용기간 3년으로 늘린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정부가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2년간 고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부담 때문에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경우가 많아 비정규직 고용안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게 추진 배경이다.

<세계일보>가 인용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간에 대해서 논쟁이 있을 수 있어 좀 봐야 한다”면서 “4년쯤 되면 근로자가 숙련되니까 해고하기 어렵다. 일본은 5년으로 돼 있어 합리적이고 아예 기간 제한이 없는 나라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점이 논란이 될지에 대해 분명히 예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노위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20일 ‘2014 비정규직철폐, 비정규직 투쟁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통해 25일 ‘2014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 개최 등의 계획을 밝혔다. 씨앤앰, 티브로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의 비정규직 투쟁사업장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데다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12월 중 기간제법, 파견법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비슷한 상황은 2006년 11월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통과될 때도 벌어졌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의 통과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와 당시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은 기업들이 고용기간 2년을 채우기 직전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방식으로 이 법을 남용해도 사실상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입법을 반대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공조해 이 법을 처리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진입하게 됐다. 지난달 29일 <한겨레>의 보도에 의하면 비정규직의 한 형태인 파견용역노동자의 숫자는 비정규직법 통과 직후인 2007년 전년대비 14만명이 증가한 76만7000명으로 급증했다. 또, 애초에 노동계와 진보정당 등이 우려했던 대로 고용 2년을 채우기 전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이 중 기업이 선호하는 노동자만 선별해 다시 재고용하는 편법이 널리 횡행하게 됐다.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서 이 법의 통과에 조력한 일부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문제도 똑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비정규직 고용 기간이 2년이든 3년이든 사용자는 그 기간 중 어느 때라도 편법을 써서 해당 법안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헌법 상의 권리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단결권 행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낼 수 있게 된다.

정부 역시 이와 같은 맹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응 논리를 개발했다. 앞서의 ‘4년 숙련노동자론’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논리를 재계 주요 단체들도 제기해왔다. 하지만 이 논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허술하다.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3년 또는 4년으로 정한다고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기간이 3년, 4년으로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고용기간을 2년 또는 4년으로 해도 사용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예를 들면 11개월, 17개월, 23개월마다 해고할 수 있다. 즉, 한 마디로 하자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은 해고와 재계약의 불필요한 편법행위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도록 재계의 편의를 봐주는 것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어차피 기업이 탈세를 하니 아예 세금을 깎아주자는 얘기나 다를 바가 없다. 더 쉬운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물건을 너무 많이 훔쳐서 절도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늘어나니 남의 물건을 훔쳐도 되는 걸로 법을 바꾸자라는 얘기다.

물론 이러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으로 전망할 수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130석의 의석을 점하고 있으며 당 내에서도 ‘을지로위원회’ 등 노동문제에 민감한 단위의 활동이 활발한 상태이고 중도적 입장의 의원들이라 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긍정 입장을 내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법 개정을 정부가 추진하는 것에서 볼 수 있는 정권의 ‘본성’이 어느 분야까지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까지 박근혜 정권은 사찰, 공작, 개입, 공안탄압 등의 사건을 화제로 만들며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해왔다. 박근혜 정권의 이런 ‘이념적 본능’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일 때부터 예측됐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을 대하는 박근혜 정권의 관점에 대해서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 16일 오전 경기도 수원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간부들이 경기도교육청과의 임금교섭 결렬에 항의하며 '삭발투쟁'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지난해 철도민영화 논란과 민주노총 사무실 침탈 등으로 박근혜 정권의 노동에 대한 본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된 이후 또다시 이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다시 도래하고 있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개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지 몰라도 이와 연관돼있는 수많은 노동정책에 대해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집행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시간제 일자리 문제나 공공기관 정상화 등의 대책에 있어서도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노동자 측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진보진영의 태세는 그야말로 보잘 것이 없는 수준이다. 이것이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마련을 ‘또 헛힘 쓴다’고 무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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