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은 서울 지하철9호선 재구조화 시행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현 박원순 시장의 주요한 성과 중 하나로 언급된 재구조화 사업은, 과거 시정부에서 맺은 잘못된 협약을 시정한다는 의미 등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특히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부결된 ‘사회성과연계SIB’ 상품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이, 공공재정의 대안으로 시민 직접 투자 방식이 적잖이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하철9호선 1단계 사업에 대한 재구조화 방식으로서 ‘시민펀드’의 성격을 재검토하는 것은 단순히 교통정책에 대한 정책평가에서 머무르지 않고 공공재정에 대한 관점, 그리고 사회정책에 대한 판단이라는 점까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좀 더 다양한 논쟁의 시작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지하철9호선 2,3단계의 이상한 민간위탁

노동당은 애초 지하철9호선 요금인상 문제로 촉발된 논란에서 ‘유상매입을 통한 직영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 이유로는, 이미 서울시에는 도시철도공사나 서울메트로와 같이 지하철을 운영하는 공기업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요금인상 논란의 핵심은 민간사업자의 일방적인 요금인상 발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민간투자사업의 구조적인 유인 탓이라는 점을 들었다. 사실 지난 8월에 끝난 지하철9호선 2, 3단계(1단계의 종점부인 신논현역에서 종합운동장까지를 2단계사업, 거기서 보훈병원까지를 3단계 사업으로 구분하여 사업을 진행했다)의 민간위탁은 서울메트로에게 돌아갔는데, “민간의 자율적인 행정참여기회를 확대하고 사무의 간소화로 인한 행정능률 향상을 목적"(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으로 하는 취지에 비춰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애초 민간위탁동의도 필요없이 서울메트로에게 운영을 맡기면 될 일을, 별도의 자회사까지 만들어 이를 수탁하게 만들었다.

▲ 당시 김맹곤 김해시장 등이 ‘경전철 성과급 반납'을 주문하며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사의 지분 70%를 가지고 있던 서울메트로에 밀렸다. 위의 사진은 <경남도민일보> 누리집에서 따왔다.

하기사 현행 서울메트로는 부산시와 김해시가 출자해서 운행중인 김해경전철의 운영사이기도 하며, 아닌 게 아니라 김해경전철 운행의 노하우가 높은 가점의 이유가 되었다고 전해진다(제한경쟁으로 이뤄진 지하철9호선 2, 3단계의 위탁과정에서 기존 지하철9호선 운영사가 중간에 입찰 포기를 했다). 그리고 그 김해경전철을 운영했던 서울메트로 자회사인 ‘김해경전철운영(주)’는 2012년 부산시와 김해시가 최소운영수익보장 조건에 따라 700억원의 추가적인 재정부담을 져야 할 상황에서 자체 경영성과를 통해 임원 3명에게는 322%, 직원에게는 18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만약 서울메트로라는 공기업이 운영하는 지하철 1, 2, 3, 4호선이었다면, 서울시가 재정손실을 봤는데 자체 성과평가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줄 수 있었을까?

결국 지하철9호선의 문제는 운영사의 일방적인 요금인상 발표때문이거나 주요 투자자인 맥쿼리가 악덕 자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공공교통을 ‘수익과 비용'만 고려되는 민간시장에 우겨넣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하철9호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여전히 재직영화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주'와 ‘시민펀드'는 뭐가 다른가

기억하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설 논란이 되었던 공항철도 매각과 관련하여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제안했던 방식이 ‘국민주'를 통한 사영화 방안이었다. 이 방식은 작년 연말 KTX 자회사 설립을 둘러싼 사영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나왔다. 요지는, 공기업을 민간기업에게 넘기는 사영화 방식에 시민들의 불만도 많고 비판도 많으니 차라리 국민들로 하여금 지분을 사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형태적으로는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전환하는 셈이어서 사영화이지만, 주식의 소유자는 일반 국민이 됨으로서 특혜시비 등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였다.

홍준표 전대표나 정부는 국민주 방식의 사례로 포스코를 들었다. 1988년 포스코 사영화를 통한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로 시행된 국민주 매각은, 정부지분 69.1% 중 34.1%인 3,128만주를 일반인 322만2천명에게 매각했다. 인수자 중에는 중하위 소득계층 310만1천명이 포함되었다. 즉, 계층별 안배를 한 것이다. 그런데 한번에 너무 많은 주식이 시장에 나오다보니 주가가 바로 오르지 못하고 결국 1991년에 국민주를 보유하고 있던 개인소유자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았다. 그리고 그 주식은 고스란히 기업 매수자들이 사들였고, 지금은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50.57%에 달하는 외국기업으로 변신했다. 주식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데, 개인소유자의 입장에선 당장 현금화될 수 없는 자산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장점이 그리 크지 않다. 결국 법인으로 주식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렇게 국민주 방식의 사영화를 길게 언급한 배경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입한 ‘시민펀드'가 있다. 서울시는 작년 지하철9호선 재구조화를 발표하면서, 우선 요금결정권한을 서울시의 승인사항으로 전환하고, 수입보전방식의 재원지원을 비용보전방식으로 바꾸며, 금융기관 등에게 집중되어 있는 투자자를 ‘시민펀드' 등으로 보완하여 복수의 자산운영사로 재구성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2013.7.27.<지하철9호선사업 재구조화 추진계획>). 이 중 시민펀드 계획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존의 재무적 투자자를 다각화하기 위해 총 1천억원 규모의 재원을 공모형 펀드로 조성하겠다는 내용으로 2012년 요금논란 당시 참여연대 등에서 내놓은 시민펀드를 통한 인수방안을 부분적으로만 차용한 것이다.

이 시민펀드는 기본적으로 투자자에게 고정수익률을 제공하는 것인데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투자'와 ‘출자'의 차이다. 기존 맥쿼리 등이 포함된 재무출자자의 총 출자액 819억원 정도였다(지하철9호선사업자의 자본금은 1,671억원 수준). 기본적으로 지하철9호선 운영사의 운영권에 대한 권리는 출자자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건설출자자와 재무출자자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시민펀드는 출자가 아니라 투자의 개념에 따라 조성된 것이고 기존의 4,960억원 수준의 일반 금융차입금의 일부를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1,000억원에 달하는 시민펀드는 지하철9호선(주)의 자본금 대비 59.8%에 달하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전무하다. 그저 시민펀드에 투자한 시민들은 여타 펀드를 구매한 것과 같이 약정된 수익률을 기대한 것에 불과하다.

각 호당 4.19%에서 4.5%까지 보장된 수익률로 공개된 시민펀드는 판매를 시작한 지 반나절도 안되어 동이 나고 만다. 5천명이 넘는 ‘시민'투자자가 대거 몰린 것이다. 1인당 총 구매 제한을 2천만원으로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펀드는 거의 한도액에 달하는 금액으로 팔려나간다. 서울시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해본 결과 가장 단기인 1호의 경우에는 1인당 평균구매액이 1,834만원에 달했고 가장 최장기인 4호의 경우에도 1,803만원에 달했다.

시민투자가 아니라 시민소유로 가야 한다

최소 4년에서 최장 7년까지는 펀드로 예치해야 되는 성격상, 과연 누가 이 펀드를 구매했는가라는 점이 궁금해진다. 참조할 수 있는 통계가 통계청이 2013년 11월에 발표한 <2013년 가계금융 복지조사>다. 이를 통하면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처분할 수 있는 금융자산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통상 자산이라면 부동산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특징인지라, 자산 중에서도 바로 처분할 수 있는 예치금 성격의 금융자산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지하철9호선 시민펀드의 경우에는 계획의 발표에서 실제 판매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서민들이 자신들의 기존자산을 유동화해서 재투자했다고 보긴 힘들다). 이 통계에 따르면, 적립식 저축(적금) 외에 예치식 저축을 하고 있는 소득 1분위 중위값은 1,500만원 정도다. 소득 2, 3분위까지가 2,000만원 수준이다. 소득 4분위 정도는 되어야 2,500만원까지 올라간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계층별로 차등적인 효과를 내는 공공재 중 하나인 대중교통의 특징에 따라 가장 높은 이해관계를 지닌 소득하위계층보다는 오히려 자가용 등 개인교통을 이용할 것으로 기대되는 소득상위계층이 시민펀드의 주요 구매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시민펀드라는 명목으로 고정된 수익율을 약속받고 서울시 대중교통정책에 ‘투자자'로 나선 이들이 대부분 대중교통정책보다는 자산 수익에 더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펀드는 정확하게 국민주 방식의 사영화와 겹친다. 의도여부와 상관없이 금융회사가 벌어가는 이익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발상이 대중교통요금인하 등과 같은 이용자의 시각이 아니라 투자자의 시각으로 나온 순간부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지하철9호선의 문제로 돌아간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한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과연 지하철9호선을 둘러싼 문제의 근원은 무엇인가? 노동당은 이를 ‘민간투자사업'이라고 제시했다. 그래서 해법은 그나마 시민통제가 용이한 공사체제로 흡수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이 어려운 일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서울시는 100% 귀책에 의해 부담해야 될 위약금 규모는 7,605억원으로 추산했다. 그리고 서울시가 장기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보전금액(관리운영권 가치)은 7,464억원이다(민간사업자의 투자금액은 6,631억원이었고, 3년동안 이미 800억원 이상의 수익보장에 따른 보조금이 지출되었다). 여기에 무인승차에 따른 보조금은 별도이기 때문에 사실상 운영비용만 따진다면 직영화에 따른 부담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아예 시민펀드 방식으로 위약금을 출자금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만약 1,600억원에 불과한 민간사업자를 출자자가 아니라 투자자로 전환시키면서, 서울시의 재정투자와 시민출자를 바탕으로 별도의 특수법인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기본적으로 투자와 운영을 분리하는 협동조합 방식을 차용하면서도 출자자 대표인 시민이 이사회를 구성하는 한편, 노동자와 이용자가 함께 참여하는 운영기구를 만들었다면 말이다. 기술자문과 운영에 대한 부분은 기존의 운영사인 서울메트로나 도시철도와 협약을 통해서 제휴하고, 시설 운영 및 임대 수입을 바탕으로 저소득층 및 학생에 대한 요금할인권을 지급하는 것이다. 비현실적이라고 타박할 수 있겠지만 이미 협동조합 방식의 대중교통 운영은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미국 메이슨 지역과 같이 스쿨버스 운영으로 특화된 형태는 부지기수이고 기존 철도망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협동조합 기차를 운영하는 영국 브리스톨의 ‘GO-OP’과 같이 아예 지역 간선망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많다.

아니 협동조합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시의 대중교통정책을 결정하는 데 이용자위원회를 통해 정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뉴욕이나 파리, 런던 등 주요 대도시 교통 행정의 기본 중 기본이다. 다시 말해 핵심은 투자가 아니라 소유이고 서비스평가가 아니라 운영권한이다. 박원순 표 혁신의 대표격인 지하철9호선 재구조화는 예쁘고 감동적인 이벤트를 걷어내면 ‘빙빙돌아 제자리'라는 다소 황망하기 그지없는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의 혁신이 근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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