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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끝내 무엇을 말할 것인가?[완군] 미디어의 잔혹한 떠듦이 면죄부를 얻기 위해선
완군/라이타 애호가 | 승인 2008.10.04 21:29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동시대에 적응이 안 된다고 고백해야 할까 보다. 이쯤 되면, 인터넷에 떠도는, 네티즌들이 내뱉는 모든 일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너무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혀서 상상조차 질려버리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던 일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가 된다. 그렇게 최진실이 죽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죽었을까? 며칠째 멍한 상태로 미디어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 외의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간혹, 무기력함을 질타하는 애절한 목소리도 들리지만 불가항력이다. 누군가는 ‘애도도 추측도 멈추라’ 하고, 다른 이들은 ‘윤리강령’을 외친다. 옳은 말이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그런데 그 잔혹한 요구를 실천할 자신은 생기질 않는다.

   
  ▲ 지난 2일 고 최진실씨 사건을 다룬 조선닷컴 첫화면 캡처.  
 
도덕과 규칙을 지켜가는, 품격 있는 선정성이란 있을 수 없다. 도덕적으로 순결한 관음증도 없다. 그건 ‘위선’이다. 이중언어(doublespeak)란 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누가 그걸 할 수 있단 말인가? 위선와 이중언어를 특징으로 하는 구술문화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미디어가 황폐한 영토가 되는 것은 불가항력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이버 모욕이 최진실을 죽였으니 ‘최진실법’을 만들자는 돌팔이 처방까지 나온 상황에서 어쩌면 이 죽음을 애도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차라리 솔직히 고백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낄낄거리며 마녀를 잡던 사냥꾼이었다. 당신은 아니었나? 그 근엄한 표정 왠지 겸연쩍어 보인다.

애도가 과했다고 탓할 생각도 없고, 난무했던 추측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예측 불가의 상황에선 때때로 강령보다 행동이 앞설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의 잔치에서 아무리 충고한들, 저널리즘의 원칙을 말한들, 기자들은 끌려갈 수밖에 없음을 기꺼이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미디어여, 단호히 말하건대 지금까지처럼 끝까지 맘껏 말하라. 사정상 인정을 베풀지 말고 해질 때까지 물고 늘어져라. 수사를 중단한 경찰의 발표를 믿지 말고 끝까지 가라. 그렇게 맘껏 말하라. 그 대신 딱 한 가지만 부탁하자. 그 말의 맨 마지막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만은 머리로 생각하라. 아무리 ‘조회수’가 급박하고, ‘장사’가 대목이라도 미디어에게 주어진 말의 자유에 따른 책임은 반드시 져야 공평하다는 말이다. 이 개별적 죽음이 상징하는 보편적 고통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무엇을 말하기에 앞서 아주 잠시만 호흡을 가다듬고 최진실의 죽음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라. 만원 짜리 점심은 먹어봤고, 10만원 정도 술값을 쏴 본, 100만원쯤 빌리고 빌려줘 봤고, 1000만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 왔던 적도 있었던, 평생에 한 두 번 쯤은 1억짜리 계약서도 써 봄직한, 그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 실물로써의 ‘돈’을 딱 그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말이다. 과연, 그들은 왜 연예인의 죽음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일까?

어쩌면, 최진실이라는 보통 명사의 죽음은 돈에 관한한 수치와는 무관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던 어떤 고유 명사의 죽음이다. 기자는 그 죽음에 관한 궁금증을 ‘압박붕대’, ‘문자 메시지’, ‘친권’, ‘연예인 조문’ 등과 같은 통속적인 단어들로도 충분히 묶어둘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성의를 기울여 세상에 대해 고민해보면, 돈이 부리는 잔인한 마법을 피해갈 수 있는 고유 명사는 없음을 안내해 줄 수도 있다.

연예인의 자살이 이토록 ‘핫(hot)’해지는 이유는, ‘돈도 잘 벌면서 왜 죽느냐’는 의문이다. 연예인들도 여느 자살자들과 특별하지 않게 삶이 외로워서, 무언가에 실패해서, 사생활이 우울해서 죽는다. 하지만 최진실과 같은 남들보다 특별히 더 돈이 많은 어떤 연예인의 경우 그 질문은 어느 지점에서 되돌이표를 달고 ‘돈이 있는데 왜 죽는가?’로 전환된다. 미디어의 잔혹한 떠듦이 면죄부를 얻기 위해선 최진실의 죽음이 보여주는 이 역설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이란 돈과 결부된 무엇이다. 가난이 특정한 물질의 결핍이 아닌 그 자체로 총체적 모멸인 사회에서 부유한 이들의 자살은 격렬한 감정의 충돌과 마주하게 되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돈의 본질을 설명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 생전 방송에 출연 중인 고 최진실씨.  
 
이번 자살은 돈이라는 악, 그 고통의 절패감이 ‘사채’라는 구체적인 형식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100억이 넘는 건물을 소유했던, 절대적인 부를 가졌던 최진실도 돈의 그 악마적인 속성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최진실의 돈이 안재환의 사채인지, 아니면 그 외의 또 다른 사채인지는 그야말로 부차적인 문제이다. 사채는 돈 놓고 돈 먹는 회로이다. 거기에 갇혀 버리면, 채권자이건, 채무자이건, 중개인이건, 연예인이건 상관없다. 엄청난 사회적 강자라고 해도 경우에 따라선 끝끝내 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 회로는 모두를 파멸시키는 죽음의 회로일 뿐이다.

이제, 호들갑스런 애도는 마무리하고, 사채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700만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악플이 그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악마와 같은 사채가 그녀를 죽음의 회로로 몰아넣은 것이다.

돈에 관련하여 슬퍼지는 일과는 무관해 보였던 그녀가 죽었다. 우린, 십대의 절반이 연예인을 꿈꾸는 시간에 살고 있다. ‘내일은 당신 차례’라는 사기가 전 국민의 오락이 되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 도시의 전봇대 곳곳과 차의 앞 유리에 10분 대출의 명함이 붙는 길에서 살고 있다. 이번 죽음이 슬픈 이유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대박의 꿈의 뒷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 누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던가? 당신은 아닌가? 이번 사건의 단 하나의 진실이 돈과 무관하지 않은 것뿐이라면, 그건 당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완군/라이타 애호가  ssamwa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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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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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수 2008-10-05 15:18:14

    너무하시네요 . 펀드와 사채도 안했다던데 그 증권사 여자 근거도없이.
    너무 나불거리시네. 근거 있으면 대보시라구요. 사진?아니 동영상 있어요?
    없자나요. 너무 악성루머 퍼뜨리지말고. 자기일에나 신경쓰시고.
    솔직히 기자님들도 안타깝게 돌아가신분들 너무 촬영해대시네.
    너무 하신거 아닌가? 자기가 돌아가면 촬영 500대카메라가 와주면 기쁘겠네??!?!
    최진실누나팬이라서. 서울시잠원동갔는데 그떄봤는데 슬픈 형태로 ㄷㄷ.   삭제


    지난 2일 고 최진실씨 사건을 다룬 조선닷컴 첫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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