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대중을 향한 손짓과 어울림을 위한 노력이 유쾌해 보인다. 새 앨범과 더불어 행동하는 모든 곳에서 확실히 예전 서태지와는 다른 보폭을 보이고 있다. 쑥스러움이 유달리 많은 성격이어서 평소 많은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소집단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었던 그가, 이제 제법 많은 사람과 교류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예능 <해피투게더> 출연을 시작으로 그는 9집 컴백 콘서트 무대를 마쳤고, 이어 기자들 앞에 나서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열린 마음을 보였다. 또 같은 날 출연한 JTBC <뉴스룸>에서는 생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앵커 손석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했다.

근래 모습을 보자면 확실히 서태지는 달라진 듯하다. 아니 사실 달라지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좀 더 활동하는 것일 뿐 그는 달라진 게 아니다. 스스로 ‘신비주의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정도이니, 신비주의를 의도치 않았다는 것을 알게 했고, 그 장면은 그를 향한 오해가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창작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그에게 쫓기는 스케줄은 많은 스트레스가 됐고, 어쩔 수 없이 공백기를 가져야만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방송사와 싸우더라도 시간을 갖는 것. 그래서 그는 공백기를 가졌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를 못 보니 자연스레 신비주의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고 그것은 공식이 되어 신비주의가 되어 버렸다.

의도치 않았지만, 해석은 모두의 자유라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그는 신비주의가 됐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내며 세상으로 나왔다. 그가 자신에게 쏠린 관심에 대한 의문을 푸는 과정은 무척이나 단순한 모습이다. 모든 걸 인정하고 순응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 그가 바뀐 것이라고는 단순히 좀 더 활동적이 된 것 이외에는 없는 것이 특징일 정도로 그 자신은 변한 게 크게 없어 보인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담담히 그는 수긍하고 부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도 상대를 먼저 배려했고, 악플에 대해서는 ‘내가 떡밥을 많이 던지지 않았느냐’라며 돌려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태지의 9집 ‘Quiet Night’ 앨범은 5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뉴스룸>을 통해서 밝혔다. 손석희는 그 시간 동안 만든 것인가? 를 질문했고, 서태지는 여러 조건이 있었지만, 그 기간 만들어진 곡이 쌓여 지금의 9집이 되었다며 신비주의이기보다는 그저 오랜 시간 생활 속에서 곡이 나왔음을 밝혔다.

9집 이전 앨범이 혁명적인 음악이었다면, 이번 9집은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노래로 그의 시도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죽은 언론의 사회이자 감시 사회인 한국. 폭력과 불통, 독재, 공포정치로 더럽혀진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국민은 피를 흘리고 수장되어 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1970~80년대 소격동을 뒤덮은 공포, 그런 사회를 살았던 서태지가 2014년 들고 나온 ‘소격동’은 과거를 그대로 베껴 놓은 듯 닮아 있다.

그는 이 노래가 과거 아름답던 어린 시절의 소격동. 한옥마을의 추억과 그곳이 사라져 가는 상실감을 표현했다고 했지만, 그에 더불어 80년대 서슬 퍼런 시대를 설명하지 않고는 소격동을 표현할 수 없어 메시지를 넣었다는 말은 그 의미가 꼭 아름답지만 않은 기억이 있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했다.

그는 정치 사회적 비판을 외면하지 않았다. 아무리 행복하다고 해도 행복할 수 없는 기억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불행한 국민들의 아픔을 그는 노래에 담아냈다. 서태지가 손석희를 만난 것은 그래서 더욱 큰 의미이기도 하다. 서태지는 시대의 아픔을 노래에 담아냈고, 그 아픔을 같이하고자 대중의 앞에 섰다. 손석희는 죽은 언론의 사회에서 유일한 언론 기능을 하는 JTBC의 대표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만났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반가운 일이다.

그의 노래 ‘크리스말로윈’에서 등장하는 산타는 ‘나쁜 권력자’이며 ‘교활한 권력자’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했다. 아이들이 슬프면 울어야 되는데 우는 것을 어떤 권력이나 공포로 제압하는 그런 권력자를 나타낸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권력자는 이 시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도 하다. 당연히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말하는데 조사받고 처벌을 받는 세상이 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서태지는 음악인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을 자신의 곡에 녹여내 보여줬다. 그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신비주의를 벗어 던지면서 다가왔으나, 어떤 무리들은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그를 폄하하기 바쁘다. 뮤지션은 음악성이 있어야 하고, 음악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건 절대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순위차트에서 밀리니 대중성이 떨어지고, 그래서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

9집에서의 서태지는 혁명가이기보다는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을 나누는 이웃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의 곡은 한결같이 슬픔과 기쁨을 같이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영삼. <미디어 속 대중문화 파헤치기>
[블로그 바람나그네의 미디어토크] http://fmpen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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