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이라는 제목 때문에, 잘 나가는 스타 은수(고준희 분)를 에로영화가 아니라고 꼬드겨 놓고는 약속과는 달리 에로영화를 만드는 에로영화 제작기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는 필자의 오해였다.

어느 배우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 ‘에로’라는 두 글자를 떼기 위해 에로 외의 다른 영역으로 무던히 진출을 시도했지만, 그럼에도 ‘에로배우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고 한다. ‘에로’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어느 배우처럼, <레드카펫>에서 윤계상이 연기하는 정우는 에로 영화만 전문으로 만드는 감독이 되고 말았다. 에로영화 외의 다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아보고는 싶지만 항상 그에겐 에로영화만 주어지는지라 ‘정우=에로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공식이 영화계에 자리하게 된다.

심리학으로 보면 이는 명백한 ‘낙인 효과’다. 정우가 에로영화 외의 다른 영역을 개척하고자 해도 ‘에로만 잘 찍는 영화감독’이라는 고정관념이 영화계에 강하게 박혀 있다. 정우가 다른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연출하고 싶어도 에로영화 감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는 영화 쪽 관계자들의 낙인효과 때문에 정우는 빼도 박도 못하고 에로영화에만 천착하게 된다.

‘정우=에로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낙인효과는 정우가 영화계에서 ‘소모재’가 되는 비애를 겪게 만든다. 정우의 시나리오는 정우의 이름으로 엔딩 타이틀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올라가고, 정우의 시나리오를 정우 스스로 연출하지 못하는 소모재로서의 비애 말이다. 언젠가는 상업영화계에 정식으로 데뷔하리란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같은 시나리오를 낳아도(?) 연출로 품지 못하고 다른 감독에게 자신의 시나리오를 입양 보내야 하는 비애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 속 낙인효과는 정우라는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우와 팀을 이루는 에로영화 스태프와 배우 모두에게 낙인효과가 적용된다. 술집에서 배우 딸기의 팬을 자처하는 남성이 딸기의 가슴을 더듬어 시비가 붙는 건, 그 일반인 역시 영화 관계자들과 다름없이 정우와 그의 스태프를 에로영화나 만드는 일행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에게 에로영화 제작이라는 낙인효과가 없었다면 딸기가 성추행을 당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오정세가 연기하는 진환이 “몸으로 타는 봅슬레이”와 같은 깨알 같은 애드리브로 관객의 눈주름을 팍팍 늘게 만드는 큰 웃음을 선사하지만, <레드카펫>이 마냥 웃고 볼 수만 없는 가슴 싸한 비애를 담을 수 있는 힘은 이 낙인효과 때문이다. 오정세 덕분에 유쾌하게 웃을 수 있으면서도 낙인효과로 인한 페이소스도 발생하는 것이다. 한 번 각인된 낙인효과가 정우 자신에게, 그리고 그의 스태프들에게 얼마나 큰 주홍글씨로 남는가를 새삼 되새기게 만든다. 2PM 찬성이 그의 똑 부러지는 외모와는 달리 극 중에서 어리바리한 콘셉트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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