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간 논란이 돼왔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지난 17일 공개한 이후 파장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 주요 인사들이 그간 ‘하후상박’ 등의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과 달리 정부 초안이 지난달 22일 한국연금학회가 제시한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에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한국연금학회가 주도한 공무원연금 개혁안 공청회는 공무원노조의 격렬한 반발로 시작 20여분 만에 무산됐다. 한국연금학회의 안은 공무원연금 부담률을 43% 늘리고 수령액은 34% 줄여 소득대체율을 국민연금 수준까지 끌어 내리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정부안 역시 평균 연금액의 2배 이상을 받는 고액 수령자에 대해 10년 동안 연금을 동결하는 조치가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공무원의 연금납입액을 단계적으로 41%까지 인상하고 수령액을 34% 삭감하는 등 한국연금학회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무원노조는 당장 총력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공무원노조는 20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가지고 총파업에 정권 퇴진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용도폐기’된 한국연금학회안을 정부가 재론하는 것인데다 고위직보다 하위직에, 퇴직자나 장기재직자보다는 젊은 공무원이나 신규자에게 고통이 집중된 안이라는 게 주요 이유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국민연금 수준까지 끌어내리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이 크다.

▲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열린 공무원연금 개악저지 전국공무원노조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노조 등은 공무원연금 수령액이 국민연금보다 높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에 반발한다. 공무원연금에는 공무원들의 보수가 낮은데 대한 보상과 4대보험 일부 및 연장근로수당 일부, 퇴직금 등의 요소가 포함돼있는데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한 국민연금과 이를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더 오랫동안 연금을 부었기 때문에 더 많이 것’이라는 설명도 친숙한 버전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그간 꾸준히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비교해 공무원연금기금이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으며 이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공무원연금을 지급해야 할 판이라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공무원의 고용주가 사실상 정부라는 점과 위에 제시된 맥락을 함께 볼 때 공무원연금에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보면, 현재 공무원에 적용되는 보수체계와 연동해 납입액과 수령액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의 문제에 논의가 집중되면 문제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애초 당정이 ‘하후상박’을 언급하고 공무원노조가 이러한 논의에 관심을 보인 것은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의 소득대체율을 국민연금 수준까지 낮추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금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정부가 애초 진전됐던 논의를 반영시키지 않은 한국연금학회안을 사실상 부활시킨 것에 대해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을 국민연금과 장기적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게 아니냐’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굳이 국민연금을 들어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론이다.

연금개혁에 대한 논란은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제기된 바 있다. 기초연금 문제다. 당시 새누리당 주요 인사들은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재원을 통합해 기초연금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기초연금 수령액이 국민연금 납부액과 일정 부분 연계돼있는 것은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로 볼 때 공무원연금 개혁안 역시 국민연금체제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고리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금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산하의 국민연금연구원은 지난해 국민연금기금의 빠른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 수급연령을 60세에서 2034년까지 68세로 올리고 수령기간도 18년 내외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이는 당시 기초연금을 둘러싼 논란에서 국민연금 재원을 기초연금에 투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근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보다 부족해서 볼만한 부분은 선진국의 경우 따로 기금 없이 그 해 필요한 급여를 그 해 걷어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설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재의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나누어 연금 고갈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그 외에도 국민연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식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은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개시연령 조정 등의 조치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보험료율 인상과 국민연금기금의 고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때문에 아예 공적연금제도 전반을 근본에서부터 손질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14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공무원연금에 하후상박 원리를 적용함과 동시에 신규 공무원의 경우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민간처럼 국민연금과 퇴직금의 구조로 통일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접점을 갖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대신 퇴직수당을 민간의 퇴직금 규모로 맞추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으므로 보수층이 끊임없이 이 부분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아예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높여 결과적으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일종의 ‘상향평준화’가 전제돼야 한다.

▲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열린 공무원연금 개악저지 전국공무원노조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어떤 경우든 공무원연금의 양보를 전제로 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노동자 대중에게 피해를 준다는 주장이다. 공무원연금은 공무원연금대로 두고 국민연금의 강화를 모색하는 게 ‘정공법’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노총 등에 소속된 노동운동가들이 언급하고 있다.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 놓고 다시 설계하자’는 주장은 처음부터 통합적인 관점으로 설계되지 않은 체제를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자는 취지라는 점에서 올바른 구석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 역시 도사리고 있다. 결국 연금제도와 관련해 모든 것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에서 진보는 연금을 통한 사회복지제도의 강화를, 보수는 복지 관련 비용 지출의 절감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 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개 잘 준비되어 있는 쪽은 보수다. 연금개혁과 관련한 논의에 진보정치세력이 얼마나 더 잘 준비된 상태로 임할 수 있느냐에 승부가 갈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지금 상황에서 다수의 시민들은 정부와 보수언론이 앞장서 제기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형평성 문제에 크게 동감하고 있다. 공무원노조와 일부 노동운동세력이 공무원연금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 국민연금을 강화해 형평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으나 그걸 실질적인 정치적 공간에서 제기해야 할 주체는 진보정치세력 등의 야권이다. 문제는 이들이 이를 감당할 의지와 힘을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연금개혁 논의가 뻔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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