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가 불붙이는 개헌론에 야당 원내대표가 찬동하고 나섰다. 21일 <서울경제>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개헌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심전심으로 그전부터 나눈 적 있다. 개헌에 대해선 김 대표도 긍정적인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또 우윤근 원내대표는 오스트리아형 이원집정부제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제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똑같다. 분권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김무성 대표하고 서로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개헌논의 자체에 대해선 “개헌을 찬성하는 155명의 개헌추진 모임이 있고 230명 넘는 의원들이 개헌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또한 국민 70%도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기 때문에 올해 안에 개헌특위는 당연히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헌특위조차 구성 안 된다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대통령 중임제든 이원집정부제든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개헌특위는 올해 안에 만들고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인 개헌특위가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은 선거가 없는 해이기 때문에 집중적인 토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와대에서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지금 보였지만 그렇게 되면 개헌은 늘 못하는 거다. 블랙홀이 안 되도록 정기국회는 차질 없이 하면 되고 박 대통령도 임기 5년 보장되니깐 걱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말만 들어보면 여당 대표와 제1야당 원내대표, 155명의 추진모임 회원에 230명이 찬성하는 개헌은 순풍일 것 같다. <서울경제> 인터뷰를 진행한 안의식 정치부장이 “의원님들이 개헌을 이야기하는 배경에 ‘자신의 정치적 이유로 접근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전 지사가 개헌을 통해 서로 기득권을 나눠 먹는 것이 아니냐는 ‘문무합작’ 이야기도 나온 상황이다”라고 말하는 등, 현재의 정치권력의 구조도 개헌에 유리하다.
▲ 19일 오후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대책본부가 마련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청을 찾아 본부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개헌논의에 비판적인 칼럼 <개헌은 싫다>를 21일 <경향신문>에 게재한 김민아 논설위원도 비슷하게 말한다. 김민아 논설위원은 이 칼럼에서 “결국 지금의 개헌론은 ‘당의(糖衣)’를 벗기면 여야의 짬짜미에 불과하다고 본다. 새누리당은 과거 이명박·박근혜와 같은 강력한 차기 주자가 없고, 새정치연합은 몇몇 유력 주자를 보유하고 있되 당 구조가 취약하다. 이래저래 불안하고 자신감 없는 양당이 나란히 가자며 어깨동무하는 격이다. 권력분점을 매개로 여당은 ‘영구 집권’을, 제1야당은 ‘영구 (의원) 당선’을 도모한다는 혐의가 짙다. 총대를 메고 나선 김무성 대표는 ‘독식하지 않을 테니 청와대 가는 길 도와달라’, 호응하고 나선 다선 의원들은 금배지를 보전하고 ‘실세 총리’까지 노리겠다는 것 아닌가? 노파심이나 기우인가? 시민들은 권력구조 논의에 숨겨진 함정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자칫하면 눈 뜨고 허방다리를 짚을 수 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는 개헌논의가 정치권의 필요 때문이지 시민의 필요 때문은 아니라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칼럼의 다른 부분을 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개헌 찬성 의원들도 할 말은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승자독식으로 인한 대립의 정치를 끝내고, 권력분점을 기반으로 한 타협의 정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일리있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당장 국회 차원에서 할 일이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이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 1명만 국회의원이 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뜯어고치고 비례대표 의석도 획기적으로 늘리면 된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연정’이 가능하도록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된다. 헌법은 대선과 총선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여, 많은 헌법학자들이 선거법 개정만으로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이 가능하다고 본다. 당장 바꿀 수 있는 선거법은 여야의 이해가 엇갈린다는 이유로 손놓은 채, 난도가 훨씬 높은 개헌만 외친다면 누가 진정성을 믿어주겠는가”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개헌찬성론자들도 할 말이 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민들께 다른 나라의 사례를 정확하게 알려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미국 대통령제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문제다. 독일 헌법학자 카를 뢰뵌슈타인은 250년 전 “미국 대통령제는 미국 외의 국가로 한 발짝 수출되는 순간 죽음의 키스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설명은 거의 100% 적용됐다. 남미, 아시아 등 미국 대통령제 수입해서 성공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는 것이 헌법학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미국은 국가 출범 당시부터 연방주의, 의회중심주의, 사법권 독립 등 다차원으로 분권화돼 있어 대통령 1인의 권력독점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같은 이유로 미국을 제외하고는 성공한 대통령제 국가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민아 논설위원은 “비법조인의 한계가 있겠으나, 현행 헌법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유다”라면서, “헌법은 ‘기본권’과 ‘권력구조’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당연히 기본권이 우선이다 (...) 개헌론 초기에도 기본권 문제를 도외시하는데, 국회 개헌특위라도 출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헌 논의는 권력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쥘 것이냐의 문제로 치환되고 말 것이다”라고 비판한다.
일리 있는 접근이요 비판이다. 그러나 반대로 현행 헌법의 기본권 부분은 제법 괜찮기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를 수호해야 하는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현행 헌법의 기본권에도 진전시켜야 할 부분은 존재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를 건드리려 하다간 오히려 새누리당과의 주고 받기 속에서 재계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의 기본권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김민아 논설위원이 제법 괜찮다 여기는 기본법의 부분은 아예 건드리지 말자고 요구하는 게 차선의 전략일 수도 있다.
▲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20일 제주경마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한국마사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상적으로는 개헌에 찬성하는 이가 많아 보이나 개헌논의가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찬성하는 이가 많을 뿐, 각자 개헌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부분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스>는 이전 분석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문제는 이원집정부제를 그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 및 선거구제 개편까지 얘기해야 겨우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구제 개편 얘기가 나오면 당연히 행정구역 개편 얘기가 따라 나온다. 현재 국회 개헌모임은 이미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의사를 천명했고, 이에 덧붙여 국회 헌법개정 자문위는 양원제를 제시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지 않는가?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두뇌용량은 우리의 것과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논의의 장이 펼쳐지면 이상하게 꼭 충청도 출신 정치인이 펼쳐내는 연방제론도 나올 것이다. 과거에 이회창이 그랬고 지금의 안희정이 그러듯이 말이다. 또 진보정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일부 세력은 당연히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결선투표제도 들고 나올 것이다. 분권을 하겠다면 마땅히 지방자치제의 강화를 위한 조치들도 필요하다.
물론 취지는 다 좋다. 하지만 아수라장이 펼쳐질 것이란 예측도 어렵지 않다. 원래 그랬다. 적어도 1987년 이후부터는 말이다. 1994년과 2004년의 선거법 개정이 혼돈의 도가니탕에 빠져 잡탕 부대찌개를 끓여대다 개혁이 아니라 ‘개악’으로 귀결되지 않았느냐는 학계의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
다만 그렇더라도 이왕에 정치인들이 개헌논의를 띄우는 상황에서 <개헌이 싫다>고 외치는 태도가 정답인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만약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생각처럼 현행 대통령제를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는 수준의 합의가 정치권에서 가능하다면 기본권 문제를 건드리지 않아도 충분히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일일 수가 있다. 다만 개헌을 말하는 국회의원들이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 속에서 엉뚱한 제안을 포함하여 기본권의 내용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될 뿐이다.
그렇기에 <미디어스>는 이전 분석 기사에서 “논의의 장이 펼쳐졌고 단지 발언권만 있는 상황에서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진보진영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특정 제도에 대한 찬반논의에 성급하게 끼어들지 말고, 개헌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이 가치가 실현되는 개헌일 때에만 찬성한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이롭다”고 지적한 바 있다.
▲ 21일자 경향신문 30면에 실린 김민아 논설위원의 칼럼
그러나 김민아 논설위원의 주장에서도 마저 들을 구석이 있다. 개헌은 국회의원 2/3 찬성 이후에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실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민생’을 말하며 개헌논의를 ‘블랙홀’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개헌논의가 정말로 확산되고 힘을 받으려면, 개헌이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김민아 논설위원의 칼럼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지금 국회의원의 뇌구조와 일반 시민의 뇌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해보면 많이 다를 것 같다. 상당수 의원의 뇌 속에선 ‘개헌’이란 두 글자가 적잖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을 게다. 시민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카톡’ ‘판교’ 같은 단어가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 연천 주민의 머릿속엔 ‘삐라’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겁내지 않고 카톡 좀 쓰게 해달라, 환풍구 볼 때마다 아찔하지 않게 해달라, 삐라 때문에 포격당할까 걱정하지 않게 해달라…. 필부필부가 바라는 건 이런 것들이다. 개헌을 열망하는 의원들은 헌법을 고치면 나와 내 가족이 얼마나 더 자유롭고 안전해지는지 설명하기 바란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같은 전문용어는 의원들끼리만 쓰시길”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김무성 대표와 이심전심이다”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내년의 개헌논의가 어느 정도 힘을 받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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