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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에볼라 보건인력 파견’, 조소만 하면 될 일일까대통령 비판에 매몰되지 말고 ‘지연된 세기말’을 보라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10.21 08:51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아셈·ASEM) 중 "한국은 여러 나라로 확산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데 이어 보건인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박 대통령, '에볼라' 보건인력 파견 결정이 비판받는 이유는?
 
대통령 발언 이후 정부는 20일 조태열 외교부 2차관 주재로 에볼라 대응을 위한 해외긴급구호대 파견과 관련한 부처의 협조사항을 협의했다. 이 자리에는 외교부, 보건복지부, 국방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 관계자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파견 인력의 안전을 위해 본대 파견에 앞서 외교부, 복지부, 국방부 관계자로 구성된 선발대를 11월 초에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건인력을 파견하겠다고 밝힌 뒤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도 에볼라 확산을 막지 못했는데 한국 보건인력을 통해 에볼라가 확산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비즈니스포스트>란 매체의 기사에서 발언한 한 의료단체 관계자는 “파견취지는 동의하나 정부가 에볼라 감염을 막기 위한 관리감독 대책을 충분히 세우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자칫하다 현지 파견된 의료진이 국내 에볼라 감염 첫 사례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을 위해 아프리카에 보내기로 한 우리 보건 인력의 현지 파견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외교부·보건복지부·국방부·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 등 관계부처 협의회가 20일 오후 서울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열려 조태열(오른쪽 네 번째) 외교부 2차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원론적인 찬성 의사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한국의 보건인력이 에볼라 대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의견도 있다.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경우 17일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의료진이 에볼라를 고치거나 예방할 기술이 없는 이상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열제를 나눠주는 정도”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보건인력 파견 결정이 비판받는 데엔 몇 가지 국내정치적 문맥이 있다. 박 대통령이 국내정치가 고착되고 민감한 시점에 거듭 해외순방을 나가왔단 점, 해외순방시 거창한 수사를 던지는 일이 많았으나 실적은 없었다는 점이 있다. 이번 보건인력 파견 결정의 경우도 유럽 순방 중 회의에서 혼자서 결정내린 것이 과연 온당하느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정하고 공정하게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은 그 정도 수준의 결단은 내리는 일이 허다했다. 또 에볼라 대응을 위한 보건인력 파견은 한국 사회에서의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며 다만 보편적 인권의 가치와 안전을 고려해서 결정할 일이다. 
 
'오래된 미래'였던 '에볼라'와 '지연된 세기말'의 문제
 
미국에서 에볼라 감염자가 발생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최근 에볼라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에볼라 확산 차단대책에 실패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고 에볼라사태에 대한 초기대응 방식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UN이 모금한 에볼라 기금은 3억7700만 달러로 목표액 10억 달러의 37%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최근에 발견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70년대에 처음 아프리카에서 등장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20세기말 지구 종말론을 실현할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수십 년간 간헐적으로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이렇게 미진했던 이유는 이 질병이 주로 거대 제약회사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살상해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에볼라 감염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국제사회는 에볼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 20일 오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4 ITU 전권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월드 IT 쇼 전시장을 방문, KT 전시장에서 황창규 KT 회장의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 하마둔 뚜레 ITU 사무총장, 김민아 아나운서, 구원모 전자신문 대표이사, 박 대통령,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서병수 부산시장, 황차규 KT회장. (연합뉴스)
 
20세기말, 역사적 라이벌인 공산주의 체제 이후의 자본주의 체제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중이었다. 세기말 종말론은 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체제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말의 불안감이었고, 일종의 상상된 공포였다. 파국은 상상되었지만 사회적인 차원의 그것을 상상하는 이는 없었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운석의 충돌, 핵무기 정도가 상상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에이즈 바이러스나 에볼라 바이러스도 그 후보 중 하나였다. 
 
오히려 요즘이 세기말에 가깝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페이스북에서 글쟁이들은 우울을 호소하고 술자리에서 만난 지식인은 “지금이 세기말인 것 같다”고 말한다. 디시인사이드 등 게시판의 분위기 역시 2년 전에 비해서도 비관적이며 이민을 말하는 이들은 더 이상 조소받지 않는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허'를 본 한국 사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세월호 참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자신의 어느 책에선가 디즈니 만화의 어떤 전형적인 장면에 대한 분석을 한 바 있다. 디즈니 만화를 보면 흔히 등장인물이 잠깐 허공을 걷다 추락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니까, 땅을 벗어나 허공을 딛게 된 등장인물은 바로 추락하지 않는다. 그는 허공을 몇 걸음 걷다가 자신이 공허 위에 떠 있을 뿐이란 걸 깨달은 그 순간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깨달음은 아래를 쳐다보는 순간 온다. 
 
이에 대한 지젝의 장황한 분석은 생략하더라도, 파국에 대한 느낌은 파국의 요소가 갖추어진 시점이 아니라 그것을 인지한 시점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바로 발 아래의 공허를 쳐다본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전엔 운동권들에게나 공유되던 우울증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미리부터 우울했던 운동권들은 내 말이 맞지 않았느냐고 질타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이미 허공을 너무 많이 걸어왔고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는 미리부터 바닥을 쳐다본 이들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소속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전단지를 청와대를 향해 날리려고 풍선에 가스를 주입하려던 중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이후 장사가 안 되기 시작했다"는 자영업자들의 주장은 그런 의미에서 사실일 수 있다. 바닥을 쳐다 보지 않고 돈을 쓰던 이들이 그만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니란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여전히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세월호 유가족들 때문이다"라는 자영업자의 주장은 승인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정말로 세월호 참사를 별 거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있다면 유가족들이 어쩌는지와 상관없이 소비는 다시 늘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납득할 수 있다. 공허를 인지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또다시 공허를 외면하고 눈을 앞으로, 위로 돌리고 계속계속 걸어가는 것 뿐이라고 그들은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유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는데, '정신줄'을 놓으면...
 
그러나 그렇게 결심하고 ‘초이노믹스’를 펼쳐봤자 경기가 무한정 부양되지는 않을 일이다. 애써 망각하려 해도 공허를 본 감상은 정신에 스며들어 있으므로, 우울은 지속될 것이다. 망각하지 않으려 하는 이들도 그 우울을 피해갈 수는 없다. 
 
세기말에 대한 감정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대통령의 판단을 국지적인 관점에서 즉자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에볼라의 창궐 역시 국제적인 관점에서 이 ‘지연된 세기말’의 문제를 보여준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세월호 참사를 두고 안전을 말하던 이들이 에볼라 대응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당장 기술이 없더라도 그 실상이 어떠한지 국제사회의 대응은 어떠한지를 보고 느끼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에볼라가 휩쓴 지역사회에선 해열제를 나눠주는 행위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발생 나흘째인 20일 오전 사고 현장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광장 환풍구 주변에서 인근 직장인들이 헌화 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연합뉴스)
 
이전 기사에서 지적한 바, 보수언론도 사실상 공론을 포기한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한 사태를 타개하기 위한 이성적 대처를 포기할 수는 없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는데 정신을 차리는 일은 물론 고통스럽다. 차라리 ‘정신줄을 놓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라면 모를까 사회적 대응은 달라야 한다. 대통령이 밉더라도 에볼라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에 힘을 실어야 할 이유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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