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노믹스’의 의문이 의문시되는 가운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연일 민감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연기금의 배당 관련 주주권 행사를 제약하는 관련 법령을 빨리 개정하면 연기금 수익률을 높여 국민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고 주식시장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11월 내에 개정을 추진해달라”고 발언했다.

최경환 부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이달 1일 금융위원회가 정례회의에서 같은 취지의 방향으로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또, 이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에도 마찬가지로 명시돼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실세’ 최경환 부총리가 다시 한 번 직접 ‘연기금 주주권 강화’를 특정해서 주장한만큼 지난 정부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논란을 일으켰던 연기금의 주주권을 둘러싼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부총리의 이러한 행보는 “초이노믹스의 약발이 다했다”는 언론의 평가가 나오는 와중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왼쪽)가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진행된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찬가지의 사례를 더 들 수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최근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연차 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서 “공무원도 임금을 3.8% 올리는데 민간기업도 그 정도는 올려야 하지 않겠나 라는 발언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후 언론은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소속 직원 임금을 공무원 보수 인상률과 동일한 수준에서 인상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이어갔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적정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전체 임금근로자 통상임금 절반 이상을 최저임금으로 고정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설명하면서 내놓은 것이기는 하지만, 경총이나 전경련 등이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0%에 가까운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부총리가 조건부이긴 해도 최저임금 인상의 당위를 인정한 것이어서 관심이 집중됐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 당시에 밝혔던 ‘이례적 구상’과 맥락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당시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임금 인상에 투입하도록 기업들을 유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전의 기업 위주 성장 일변도의 정책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과 우려가 맞부딫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의 반발로 이러한 정책 추진이 사실상 무위로 돌아간 이후 최경환 경제팀은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과 금리정책 등 단기부양책의 실시에 매달려왔다. 그러던 상황에서

최경환 부총리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는 취임 이후 잠시 올랐던 주가가 다시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언론이 저마다 최경환 경제팀이 위기에 빠졌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내자 애초에 구상했던 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밀어 붙이기로 작정을 한 것 아니냐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황소’, ‘불뚝’, ‘무대뽀’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추진력이 남다른 최경환 부총리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대로는 지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를 보여준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의 최근 발언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자해공갈 같기도 하고 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수요를 스스로 창출하는 고전적 대응같기도 하다. 최근 ‘잠재성장률 제고’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주장하는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나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좌우에서 모두 입을 모아 “이러다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된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의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에 제시된 전형적 해법의 관점으로서는 최경환 부총리의 행보를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가 당장 ‘연기금 주주권 강화’라는 민감한 부분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는 것은 ‘배당’을 강화해 주식시장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배당을 강화하면 외국인 등의 평가에 도움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기금 주주권으로 활용해 배당을 사실상 강제하고 이를 통해 연기금 수익률을 강화한 후 다시 적극적으로 연기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하면 ‘초이노믹스 무력화’ 비판을 야기한 주식시장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다는 복안이 아니겠냐는 얘기다.

하지만 최경환 부총리가 임금 인상을 통한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대를 말하면서도 집값 상승을 유도하는 부동산 부양 정책을 적극적으로 쓰고,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공공기관의 임금 상승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그간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이 발언이 현 상황을 타개할 어떤 ‘창조적인’ 해법을 내놓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인지, 기존에 제시돼있는 해법들을 그때 그때 유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자조를 내놓은 것인지 지금 상황에서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일부에서 최경환 부총리의 최근 정책에 대해 “일회적인 해법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정책 당국이 이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있는 행보를 앞으로 이어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최경환 부총리의 단기부양책 집중이 언론에 의해 ‘초이노믹스’라고 표현되는 어떤 총체적 비전의 실현을 위한 것이라면 이 비전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토론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만 정권의 국정운영동력을 연장하기 위해 기업 및 지자체의 민원과 일부 경제 관련 지표들의 ‘반짝’ 회복만을 위해 저돌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토론이나 평가 자체도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경환 부총리의 황소와 같은 돌진에 속수무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야당과 진보진영의 무기력도 문제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진보적 관점을 가진 인사들의 최경환 부총리 정책에 대한 비판은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고 가계부채를 늘리는 정책이라는 전형적인 비판 이상의 것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수언론이 최경환 부총리 취임 직후 ‘초이노믹스’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붐업’을 유도해 상황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갔던 것과 비교된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와 중국발 제조업 위기론 등이 만들어내고 있는 부정적 영향이 실물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것도 비판을 넘어 언론이 대안을 적극적으로 말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주가상승에 따른 보수언론의 ‘최경환 효과’ 타령은 결국 주가하락과 함께 ‘약발 다했나’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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