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를 먹고 새삼스레 깨닫게 된 건 모든 선택은 가보지 못한 길의 아쉬움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를 아쉬워하며 평생을 보낸다. 그 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밖에 없다.

무한도전 400회 특집은 뜻밖에 검소했다. 연출이나 콘셉트의 특별한 터치 없이 멤버들끼리 짝을 지어 소풍을 떠난 것으로 족했다. 그 소박함이 오히려 무한도전이 성장시킨 9년간의 결과물을 사색할 수 있게 해주어 좋았다.

유재석의 짝은 정형돈이었다. 둘은 세종대왕릉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벌칙 게임이나 미션 수행이 필요치 않은 단순 나들이라 비록 방송이지만, 소풍 떠난 초등학생처럼 설렜을 두 사람이다.

허나 기대감에 찾아간 나들이는 실패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인파에 밀린 두 사람은 5분 만에 자리를 떠나야 했다. 방송을 핑계 삼아 억지로 버틴다면 버틸 수야 있었겠지만 유명세로 몰린 인파가 그들을 다치게 할까 우려한 유재석의 배려 탓이었다. 시민의 안전을 그의 자유보다 우선시할 수 없는 유재석이기에.

“일이 커졌네요.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니고.” (형돈) 발길 닿는 곳마다 행인을 붙이고 다니는 두 사람은 하메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나 꿀 바른 단지 같았다. “조심해. 조심해. 다쳐. 다쳐.” 급기야는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 만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재석과 형돈의 뒤를 쫓아가는 어린이 무리까지 나온다.

그야말로 피리 부는 사나이, 혹은 각인된 엄마 오리인 채의 유재석. 정신없는 와중에도 시민의 내민 손을 뿌리치거나 잠시나마 정색하지 않는다. 이 아비규환의 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인간성이 놀랍기만 했다.

“자, 이제 우리 어린이들 다칠 수 있으니까 이쯤에서. 이쯤에서 헤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시종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해 부드러운 당부를 잊지 않았던 유재석은 정녕 안 되겠다 생각되었던지 5분 만에 나들이를 포기했다. 그의 유명세에 몰려든 인파가 나들이 나온 시민에게 민폐가 될까 염려한 것이다.

“차를 타고 가야 되거든요. 안녕, 안녀엉. 조심히 재밌게 놀고 가세요.” 시민의 안전을 위해 나들이를 포기했으면서도 자리를 떠나야 하는 이유를 꿋꿋하게 설명한 데다 친절하고 살뜰한 작별의 인사까지 놓치지 않았던 유재석의 손엔 어느 아이가 건네준 파란 풍선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제가 인적 없는 곳으로 한번 찾아볼게요.” 5분 만에 끝난 세종대왕릉 방문이었지만 그 결정에 군소리 없이, 산뜻하게 따라나선 정형돈의 선택이 이미 400회간 쌓인 그들만의 텔레파시. 굳이 ‘비긴 어게인’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불평, 불만 없이 선선히 유재석의 결정을 따르고 그가 겪는 곤혹을 이해하며 인적 없는 곳을 찾아보겠다고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정형돈을 보며 아, 정말 저 두 사람은 많은 길을 함께 걸어왔고 서로의 처지와 가치관을 이해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계획은 이게 아닌데.” 머쓱한 말 한마디가 담은 유재석의 마음씀씀이는 형돈이를 향한 배려까지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식사하시는 분들이 우리 때문에 먼지가 날려서 못 하실 수도 있고.” 애써 나온 나들이를 즐기지도 못하고 돌아오게 해야만 했던 그의 유명세가 미안해 부드러운 설명과 동시에 형돈의 눈치를 보는 재석. 뻥튀기 과자를 먹이고 흘러간 댄스 음악에 맞추어 재롱을 떨며 10년차 후배의 기분을 풀어준다. 결국, 흘러간 옛 노래에 함성을 담아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두 사람. 공간이 좀 협소하면 어떠랴. 커다란 유원지는 아닐지라도 차 안에 틀어둔 추억의 가요 한 소절에도 놀이할 수 있는 두 사람인데.

“명성황후 생가도 있어!” 눈이 휘둥그레져 찾은 다음 유적지에서도 두 사람의 나들이는 평온하지 못했다. 아니 나들이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어느 곳에나 그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였고 유재석이라는 사람은 시민의 안전과 자신의 자유를 바꿔치기 할 수 없는 유형이었다. 자막이 그들의 마음을 읽은 듯 역시 ‘우린 차 안이 편해’하고 위안하면서도 끝끝내 몰려와있는 사람들을 향해 차 안에서도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유재석을 보니 참, 이 사람 어디서 뚝 떨어져 왔나 싶다.

“아쉽기는 합니다만…” 끝내 끙 하고 아쉬운 소리가 새어나오는 정형돈에게 맞장구치는 유재석의 머쓱한 얼굴. “아… 저 생가를 못 보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유재석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더군다나 고통을 분담한 형돈에게 얽힌 미안함은 그보다 더 큰 부담이었다.

“근데 사실은 아휴… 미안하더라고요. 쟤(형돈)한테. 왜냐면은 오랜만에 이렇게 둘이 진짜 마음 딱 먹고 신나는 마음으로 출발할 때 너무 좋았잖아요. 음악하고 막 너무 좋은 거예요. 날씨, 하~ 이게 쭉 분위기를 타야하는데 그게 안 되고 계속 차 안에만 있으니까 진짜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운전을 계속 했어요.”

후배를 옆에 앉히고 대선배인 유재석이 줄곧 운전을 했던 이유 또한 나들이 하지 못한 미안함에서 비롯되었다. 혹여 그 상황이 하극상으로 비추어져 형돈이 오해 받을까, 굳이 덧붙여준 마음씀씀이에 더 감탄했다. 이후 그는 단독 인터뷰에서 아쉬움과 미안함이라는 큰 부담을 갖고도 자유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힌다.

“제가 9년 동안의 무명 생활을 겪으면서 그렇게나 간절히 바라왔던 일이거든요. 그렇게 바라왔던 일이 현실이 됐는데 그걸 제가 지금 (불편하다고) 하는 건,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인 것 같고 그런 부분은 아예 제가 포기를 해야 한다고, 포기를 한다고 할까요.”

그의 영원한 라이벌 강호동이 언젠가 일침했던 ‘스타가 갖추어야 할 미덕’이 떠오른다. 우리가 지금 겪는 불편함 또한 그 많은 출연료와 사랑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유재석이 국민MC라는 수식어를 달기 한참 전인 쿵쿵따 시절에 홀로 상을 받은 강호동이 수상소감에서 언급했던 유재석의 수식어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청년, 유재석 씨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 많고 많을 수상 소감 인명 리스트에서 강호동의 평생 은인 이경규와 더불어 유일하게 호명 되었던 유재석. 이름하야 아름다운 청년. 아마 그때부터 강호동은 그가 한국 예능계에 어떤 역사를 남길지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국민MC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미덕은 바로 대중을 잊지 않는 마음씀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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