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로 떠난 1박2일은 지금껏 없던 재미와 만족을 주었다. 주제는 전원일기. 이 말을 듣자 눈치 빠른 김준호는 “전원이 일하는”이라며 받아쳤지만 사실 그다지 힘들게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마을 어머니들이 멤버들을 하나씩 선택할 때에는 별 하나부터 여섯 개까지 노동의 강도를 정해놨지만 그것은 단지 멤버들을 어르는 목적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별 하나의 고추꼭지 따기를 했던 김종민이 정말 쉬운 일을 했고, 여섯 개의 데프콘이 그중 가장 힘든 피뽑기를 했지만 멤버들 누구도 일이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일이 덜 힘든 것도 있겠지만 7,80 할머니들 혼자서 해내는 농사일을 겨우 하루 거들면서 힘들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능은 3D에 근접할수록 재미도 강해지는 법이라 데프콘이 가장 알찬 분량을 뽑아낸 것에 주목할 필요는 있었다.

그렇게 여섯 명의 할머니들에게 멤버들을 하나씩 할당한 제작진에게도 하나의 고민은 있었다. 일을 시키라고 했으니 그 상황에서 게임을 하거나, 그 흔한 복불복을 하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멤버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니 멤버들 간에 케미를 살릴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비록 의미는 좋지만 자칫하면 지루한 ‘체험 삶의 현장’ 식으로 딱딱하게 가버릴 위험도 큰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게임 하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박2일 김제 편은 정말 재미있었고, 심지어 행복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사실 그럴 거라는 기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의외였고, 즐거움도 더 컸다. 평생 일만 해온 낯선 할머니들과 서울 연예인들이 갑자기 만나 어떻게 재미를 뽑아낼 거라 기대를 하겠는가. 그러나 그동안 봐왔어도 새삼 놀라게 한 1박2일 멤버들의 친화력은 그렇게 기대할 수 없었던 재미를 만들어냈다.

물론 거기에는 누구도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들에 대한 철든 연민이 멤버들의 의욕을 충전시켰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점심 식사 후에 할머니는 잠시 오수를 즐기시라 해놓고는 몰래 다시 논으로 나와 혼자서 피를 뽑는 데프콘의 행동이나, 촌동네 마을 축제에 자진해서 캐스팅되어 흐드러진 무대를 만들고는 단돈 2만원을 받아서는 함께했던 할머니와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값을 내는 김주혁 등 행동만으로도 전달되는 깊은 마음이 있었다. 비교적 조용했지만 김주혁이 남긴 사진 한 장은 이번 김제 편에 임하는 1박2일 멤버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단서처럼 보였다.

또한 유일하게 부부와 함께한 차태현은 정말 처음 본 사이 같지 않은 넉넉한 정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차태현과 함께한 노부부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짧게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자신들의 고되고 아픈 세월을 덤덤하게 말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태도엔 따로 소설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차태현에게 다짜고짜 “욕봤어”라고 한 할아버지의 말은 지난 세월 할머니의 고생에 대한 미안함이 참 깊이도 새겨져 있었다.

얼굴 한 번 못 보고 시집온 할머니였지만, 이제는 할머니 말에 꼼짝 못하는 할아버지의 행동이 어떤 코미디보다 웃겼고 흐뭇했다. 그런가 하면 동네에서도 일만 하기로 소문난 말례 할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제대로 못 살았응게, 또 만나서 살아야 혀” 할 때에는 차마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내색도 못했던 깊은 아픔이 느껴져 또 뭉클해져야 했다.

조금은 다큐멘터리 3일을 보는 기분도 들었지만 그런 것은 어때도 상관없었다. 예상치도 못한 할머니들의 깨알 같은 활약과 할머니들을 위하는 멤버들의 진정이 더해져서 1박2일 김제 편은 뒤가 개운한 즐거움, 행복한 재미를 주었다. 용케도 참 재미있는 할머니들을 찾아낸 것은 우연이었겠지만 아무튼 결과가 중요한 방송에서 그 우연도 능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1박2일 전북 김제 편은 다큐3일처럼 짠하면서도 개콘처럼 재미있는 모처럼의 재미있었던 구성이었다. 예능이면서 그 흔한 게임 하나 없이 만든 재미라는 점이 1박2일 제작진에게는 또 하나의 자극과 교훈을 남겼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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