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이 괴물 같은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미 웹툰을 통해 큰 성공을 거뒀던 <미생>을 드라마화한 tvN은 첫 회부터 괴물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완생을 꿈꾸는 미생들의 몸부림을 담고 있는 이 드라마는 완벽한 캐스팅으로 인해 원작의 완성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임시완이라는 배우의 존재감;
미생인 자아인식으로 시작하는 드라마, 괴물 같은 존재가 탄생했다

낯선 요르단 현지에서 누군가를 추적하는 장그래의 모습이 활기차게 이어졌습니다. 회사를 속인 자를 추적하는 장그래의 모습으로 시작한 <미생>은 다시 2012년 봄으로 돌아갑니다. 텅 빈 목욕탕을 청소하는 장그래에게는 앞서 보인 활기찬 상사맨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대 후 제대로 된 직업도 구하지 못한 채 목욕탕 청소와 대리운전을 하면서 살아가야 했던 그래에게도 꿈이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바둑 신동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어 최고의 바둑인을 꿈꾸었던 그래는 그렇게 프로 바둑선수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집안도 어렵고 아버지도 병으로 누워있는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은 사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승마저도 아르바이트를 막으며 오직 바둑에만 집중하라고 하지만, 알바라도 하지 않으면 그나마 가지고 있는 꿈도 이어갈 수 없는 현실에서 그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항상 반집 차이로 지기만 하던 그래는 끝내 프로 입문을 하지 못하고 한국기원을 나서야만 했습니다. 평생 바둑 하나만 보고 살아왔던 그래에게 세상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모든 길을 잃어버린 그래에게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도 무의미한 삶이었습니다. 평생을 걸고 바둑에만 전념했던 그래는 아버지의 죽음 후 프로 데뷔에 실패하고 기원을 나섰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서는 그래는 담담하게 자신을 다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해야 했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아픈 아버지, 가난한 집안, 누워 있는 어머니, 그래서 일을 병행해야 했던 현실.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되면 더욱 초라해질 것 같아 그저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는 그래의 다짐은 뭉클함 그 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실패 앞에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핑계의 대상으로 삼고는 합니다. 스스로를 인정해버리는 순간 그 지독한 현실을 감내할 자신이 없는 우리는 모든 실패에는 누군가의 탓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장그래가 대단한 것은 그런 모든 것을 담담하게 해쳐나간다는 사실입니다. 고졸 검정고시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는 자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장백기가 인턴들이 모인 자리에 그래를 오도록 한 것은 그를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두가 낙하산인 장그래에게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이들 앞에서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잔인한 장백기의 생각과 달리, 그래는 담담하게 자신의 현재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장그래는 그래서 강했습니다. 복사도 할 줄 모르고 종합상사에서 외국어 하나도 하지 못하는 이 한심한 낙하산 인턴이 대단해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을 꾸미거나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도망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음을 장그래는 보여주었습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장그래는 몸으로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장그래가 보여주는 지독한 회사 생활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낯선 공간에 떨어져 그 지독한 현실과 마주한 채 생존해야 하는 장그래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은 공감대를 형성했을 듯합니다. 고졸 검정고시가 전부인 장그래의 스펙이 주는 공감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미생으로서의 공감대였습니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둑의 길과 인생의 길을 교묘하게 결합한 이 길에 대한 장그래의 독백은 <미생>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장입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길이지만 그렇다고 그 길을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었습니다. 길에 대한 독특한 하지만 명확한 해석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입사 첫 날부터 느껴지는 지독한 현실의 벽. 그 벽에서 힘겨워하고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하고 도전하려는 장그래의 모습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가진 것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장그래가 그렇게 뚝 낯선 공간에 뛰어들어 정공법으로 이겨나가는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는 행복 이상의 가치로 다가왔을 듯합니다.

웹툰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드라마의 힘은 첫 방송에서 충분히 증명되었습니다. 웹툰에서 구현되지 않은 인물들 간의 관계 등도 20회라는 긴 흐름 안에서 잘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극과 극의 인물인 장그래와 안영이의 에피소드가 첫 회 등장한 것도 좋았습니다.

스펙과 능력이 모두 최고인 안영이와 모든 것이 부족한 장그래의 충돌은 당연히 흥미로운 대결 구도와 남녀 관계라는 점에서 로맨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턴사원들 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고졸 검정고시생인 장그래에게 가하는 잔인한 왕따 등도 첫 회 모두 등장하며 <미생>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오징어 속 꼴뚜기를 가려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장그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 역시 특별했습니다. 거액을 주고 큰마음을 먹고 어머니가 사준 신상 고가 양복을 입자마자 주어진 일. 현장에서는 작업복도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아 신상 양복을 입고 꼴뚜기를 가려내는 일을 해야 하는 장그래의 모습은 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양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래는 시간이 흐르며 온 몸에 젓갈을 묻힌 채 꼴뚜기 찾기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요령껏 일하는 것과 달리, 오직 하나의 사안에 집중하는 장그래는 홀로 남겨지고 맙니다. 냄새나는 양복을 입고 터덜터덜 회사로 들어선 장그래는 영이와 함께 인턴사원들이 모인 곳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냄새나는 자신을 외면하는 그들 앞에서 그는 현실의 잔인한 벽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이 지독한 현실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려 노력하는 장그래의 순수한 열정은 특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생>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을 참기 어려웠던 것은 이 드라마 안에 등장하는 장그래의 모습이 자신의 일처럼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정글 속에서 인간들의 관계들을 정교하게 표현한 <미생>은 분명 괴물 같은 드라마임이 분명합니다. 웹툰을 통해 이미 알려진 내용이라는 점은 검증이라는 측면에서는 득이 되지만 이미 내용이 모두 공개되었다는 점에서는 약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미생>은 원작 웹툰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우리시대 수많은 장그래를 위해 노력하는 장그래의 모습은 지독한 현실에 의지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 듯 든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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