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강소라의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첫 모습에 놀라야 했다. 가슴과 엉덩이를 부각시키기 위한 여성용 패드를 직접 착용하고 프리젠테이션에 임한 안영이(강소라)의 모습은 어쩌면 앞으로 볼 수 없기에 이 장면이 더욱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그것보다 먼저 인트로에 소개된 요르단 페트라 신전이 준 인상도 매우 컸다. 신비한 암벽 사이로 난 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발견하게 되어 더욱 놀라운 페트라 신전의 모습을 드라마에서 본다는 것이 무척이나 경이로웠다.

그렇게 강소라의 파격적인 모습과 페트라 신전의 신비로움까지 더해져 인트로는 일단 숨죽이며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미생은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미생은 페트라 신전을 찾아가는 미로 같은 길을 걷는 것처럼 힘겨운, 장그래(임시완)의 고난기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장그래는 낙하산이다. 평범하기에 죽을힘을 다해 스펙 쌓고 들어간 회사에 떡 하니 낙하산 동기가 발견된다면 이는 무조건 분개할 일이다. 그런데 이 낙하산 장그래가 더욱 심한 것은 학력이 고작 고졸 검정고시뿐이라는 사실이다. 시험치고 들어온 동기들의 분노보다 더 심한 것은 일을 해야 할 같은 팀 대리의 노골적인 무시였다. “26년간 살면서 복사 한 번은 해봤겠지?”라는 말에는 장그래에 대한 직속상사의 전혀 기대 없는 감정이 모두 실려 있다.

그렇게 시작된 고졸 검정고시 학벌을 가진 아주 이상한 낙하산 장그래의 직장생활 아니 지옥생활이 시작됐다. 낙하산이면 조금 태나지 않는 것이 좋겠는데, 장그래가 동기들보다 열흘 뒤에 채용되어 일단 눈에 확 튄 것도 이 지옥생활을 문을 더 빨리 열게 한 계기였다. 당연히 장그래는 곧바로 왕따가 되고 만다. 그런 장그래에게 유일하게 도움을 준 것이 안영이였다. 영어는 물론 러시아어까지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인터 중 단연 톱을 달리는 여성재원 안영이 역시 왕따였다. 그러나 왕따를 당한 장그래와 달리 안영이는 너무 뛰어나서 다른 동기들 전부로부터 독주하는 왕따라는 점이 다르다.

문제는 임시완이었다. 해품달과 적도의 남자에서 임시완은 아이돌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존재감 없는 멤버에서 일약 연기돌로 발돋움한 바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돌치고는 잘한다는 인상을 완전히 벗지는 못했다. 그러나 미생의 임시완은 달랐다. 아이돌치고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온전히 배우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 없는 연기를 보이고 있었다. 대사처리나 표정만이 아니라 딱히 신경 쓰지 않으면 눈치 채질 못할 뼈와 근육까지 캐릭터를 표현하는 모습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완은 아이돌치고는 키가 별로 크지 않은 편이다. 포털 사이트 프로필에 173cm로 나왔다면 실제로는 170을 조금 넘긴 비교적 작은 키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보통은 깔창을 높이 깔고 허리도 꼿꼿하게 편 모습이어야 했다. 그러나 임시완은 오히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해서 키를 낮췄다. 멋져 보일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시선처리와 호흡까지도 캐릭터 감정에 모두 동원하면서 임시완의 곱고 여린 미모는 오히려 가련하고 측은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아버지 옷을 입은 것 같은 허름한 복장에 허리마저 구부정한 임시완의 모습은 고립무원의 장그래를 딱히 연기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영화 변호인에서 고통에 일그러진 연기를 해냈던 장면도 겹쳐지게 된다. 이미 식상해진 표현이지만 임시완은 어느덧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로 훌쩍 성장해있는 모습이었다. 웹툰 미생에서 봤던 장그래보다 많이 미남인 임시완이라 역할을 잘 소화할까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첫 회를 봐서는 그런 우려는 더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사실 적지 않은 시청자가 이 드라마 미생을 오과장 역으로 출연하는 이성민에 대한 기대와 신뢰로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 이성민은 비록 첫 회에는 짧지만 매우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임시완, 강소라 등의 활약에도 뭔가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졌던 드라마의 무게감을 채워주었다. 게다가 그 밖의 연기자들 누구도 민폐 없는 착실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만족감을 더해주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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