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2014년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영화제는 역대 최고 관객 수를 갱신했고, 보다 풍성한 작품과 게스트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올해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김태용 감독과 결혼하며 세간에 알려진 배우 탕웨이도, 100편 이상의 작품을 만든 거장 임권택 감독도 아니었다. 유명한 감독과 작품을 제치고 최고의 화제에 오른 작품은 바로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제작 아시아프레스 씨네포트, 배급 시네마달) 이었다.

<다이빙벨>은 개최 기자회견이 열린 순간부터 문제가 되었다.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여전히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첨예한 주제이자, 사건이 발생한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세월호 침몰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건 발생 초기에 매우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구조 도구 '다이빙벨'(잠수종)에 대해서 다룬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에서 다이빙벨은 많은 논란 끝에 투입되었지만 결국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고 오히려 숱한 논란과 음모론을 낳은 도구가 되고 말았다. 당연히 이를 다룬 작품 역시 논란이 될 수밖엔 없었다. 게다가 작품의 영어 제목은 ‘The Truth Shall not Sink with Sewol’로 ‘진실은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이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제목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작품의 소재와 간단한 시놉시스만 공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포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화계 내 보수 인사로 유명한 최공재 감독이 있는 단체 '차세대문화인연대'에서 영화제 상영 취소를 요구하는 비난 성명을 발표했고 뒤이어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트위터에 상영 취소에 동조하는 글을 남겼다. 여기에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 측에 상영 취소를 강하게 요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파장은 더욱 크게 일어났다. 뒤이어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대책위원회도 영화를 비난하며 상영 취소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고, 이후 당사자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을 했지만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기자들이 모인 해운대 모 주점에서 문화관광체육부가 <다이빙벨>의 상영을 중단하지 않으면 국고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는 것을 폭로했다는 기사가 터져 나오며 한동안 영화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공동 감독 중 한 명인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영화제 중간 중간에 영화 상영과 개봉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한 것도 영향을 주었다.

현재 영화는 여러 논란과 상반된 주장을 잠시 뒤로 하고 10월 23일 개봉을 확정한 상태이다. 하지만 개봉을 약 일 주일 정도 남겨둔 현 상황에서 언론 시사회는 개최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영화가 전 세계에 처음 모습을 공개한 현장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표가 빠르게 매진되어 영화의 본 모습을 확인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자나 비평가가 영화제에서 극장 대신 차선책으로 택하는 '비디오 룸'에서도 영화 제작사 측이 스크리너(일반인이 아닌 영화 관계자나 언론인 등에게 미리 공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공하는 영화 본편)를 제공하지 않아 현재로써 <다이빙벨>을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단지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일었던 논란과 풍문, 그리고 세계적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 등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내놓은 리뷰 정도만으로 영화를 평가하고 이야기할 뿐이다. 필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려가 영화를 감상하려 했지만 감독과의 대화가 있던 첫 상영을 관람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두 번째 상영이자 마지막 상영을 겨우 표를 구해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관에 입장하자 다른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영화관 안 이곳저곳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영화제가 영화 상영 도중 일어날지도 모르는 돌발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인상을 들게 만드는 장면들이었다. 다행히 영화는 별 다른 사고 없이 순조롭게 상영을 끝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본편 그 자체에 있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 매우 난감한 모습으로 가득차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화제에 오른 작품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는 참으로 곤란했다. <다이빙벨>은 감독이자 세월호 사건 초기부터 진도 팽목항 현장에서 취재를 한 이상호 기자와 <JTBC 뉴스 9> 등의 매체에서 다이빙벨을 통한 구조만이 효과적이고 실제로 다이빙벨을 투입해서 구조를 시도했던 알파잠수기술공사의 이종인 대표, 이 두 사람이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활동했던 모습들과 인터뷰를 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에서는 영화는 바로 첫 번째 큰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내용들은 세월호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많은 이라면 여러 번 보았을 사건 초기의 모습들이고 이외의 영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고발뉴스>나 <팩트TV> 등에서 이미 취재해서 발표한 영상들이 다큐멘터리에 차지하는 분량이 제법 많아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물론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다큐멘터리와 같이 기존에 나왔던 영상들을 재조합해서 의미를 담게 만들 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그 지점으로 나아가는 대신 기존 영상 이외의 빈자리를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대표 두 사람의 인터뷰와 독백으로 메울 뿐이다.

분명 이 두 명의 당시 육성 증언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당시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대표가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던 막전막후의 상황이 <다이빙벨>에서는 가감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기며 자신을 기용하지 않고 믿지 않는 정부와 언론에 강한 불만과 불신의 자세를 시종일관 내비춘다. 울분에 차 욕을 내뱉기도 하고, 정부의 움직임을 쓸데없거나 할 수 있으면서도 괜히 하기 어려운 척을 한다고 강하게 단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곧 영화의 두 번째 한계이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자리를 잡고 만다. 다큐멘터리는 시종일관 두 사람의 입을 통해 다이빙벨의 가능성과 실패한 것에 대한 음모론을 말하지만, 정말 입으로 말하는 것에 그칠 뿐 심층적인 분석과 입증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고 참된 것일 뿐이다. 다큐멘터리가 중립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작품은 각자의 시선을 지니며 특히 실제의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그 특성상 어떠한 입장을 지녀야 할 수밖엔 없다. 그러나 영화의 제작진들은 단 한 번이라도 자신들이 다큐멘터리 중간에 계속 늘어놓는 각종 주장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근거를 갖추기 위해 전문가에게 조언을 묻거나 다른 이에게 인터뷰를 하는 시도 등은 하지 않는다. 주장은 거대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미약하니 영화는 부실해진다.

▲ 안해룡 감독과 함께 다큐 <다이빙벨>의 공동 연출자이자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함께 다큐의 주인공이기도 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이렇게 제작진들이 스스로 다큐멘터리를 사상누각의 형국으로 몰아넣는 순간 영화의 모든 부분은 결국 제 틀을 갖추지 못하고 내부에서 와장창 무너진다. <다이빙벨>의 후반부에서는 이종인 씨의 다이빙벨이 최종적으로 실패했던 전후의 상황을 다루면서 다이빙벨에 산소를 공급하는 호스가 찢어지고, 해경 쾌속정이 다이빙벨 작업 중인 바지선에 다가오다 쿵하고 부딛치는 상황을 모두 다이빙벨을 방해하기 위한 어떤 음모로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 음모는 오로지 이종인 대표의 주장만으로 이야기될 따름이다. 왜 찢어진 호스가 어떤 식으로 찢어졌는지 전문가에 소견을 듣거나 검사를 하지 않고, 쾌속정이 부딛친 것이 어떻게 부딛친 것인지 당시 바지선에 탑승하고 있던 다른 사람이나 해경 측의 해명은 담아내지 않는 것인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이 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인터뷰나 검사는 하지 않는다. <화씨 911>, <식코> 등 고발적 성향의 다큐멘터리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감독 마이클 무어도 주장하는 내용이나 발언의 세기로 가끔씩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최소한 그는 자신의 주장이 담긴 한 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풍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한다. 심지어는 자기와 입장이 전혀 다르거나 '적'이라 부를 법한 이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그들의 생각을 듣는다. 이처럼 다큐멘터리는 주장을 담는 만큼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확립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다이빙벨>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영화 초반 해양수산부 장관과 해양경찰청장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 정도가 유일하다.

이렇게 폭 넓은 조사 대신 현장에서 촬영했던 영상들을 반년도 안 되는 기간 사이에 빠르게 편집하고 빈약한 근거가 담긴 주장을 하는 다큐멘터리는 전혀 의외의 지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바로 영화 중간 중간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대표가 하는 발언들이 묘하게 모순적이거나 상호적으로 충돌하는 부분들이다. 앞서 언급한 해수부 장관-해경청장과 세월호 유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누군가 왜 구조 속도가 느리냐고 묻자 사고 지점의 유속이 너무 강해 작업이 지체되고 있다고 답한 것에 대해 (실제로 사고 해역은 예전부터 물이 빠르게 흐르는 곳으로 유명했고, 해당 지점의 유속은 최고 초속 120cm 이상에 달할 정도로 급물살이 흘렀다.) 이상호 기자가 "배 안에는 물이 강하게 흐르지 않지 않는가?"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하니 "그렇다면 바로 물이 흐르지 않는 배 안으로 들어가 구조를 하면 된다."라고 주장하고 유가족들의 호응을 얻는 장면은 감정적으로 동의하기는 쉽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많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분명 배 안은 각종 구조물로 막혀 있으니 그 밖보다 물이 세차게 흐르지 않지만 분명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급격한 해류의 흐름을 뚫고 나와야만 한다. 일종의 모순적인 발언인 셈이다.

이외에도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을 사고 현장에 투입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지만 해경이 줄이 꼬여 사고가 날 가능성 등으로 거부할 때 이 대표는 그런 것들이 전부 근거가 빈약한 이야기라고 일축하지만 정작 실제로 다이빙벨을 투입하자 현장에 설치되어 있는 가이드라인선과 얽혀 사고가 날 뻔 한 것을 보여주는 장면 등 영화는 의도치 않게 자신의 입장이 가지는 한계와 모순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만다. 이러한 영화 내적 충돌은 다큐멘터리가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대표의 주장과 현장에서의 모습들을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애쓴 결과의 2차적 효과로 보인다. 그들은 분명 세월호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내고 싶었고, 원활하게 구조를 하지 못한 정부에 대해 많은 불만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상호 기자는 원래 직장이었던 공영방송국인 MBC에서 부당하게 해고되는 과정과 이후 고발뉴스로 직장을 부득의하게 옮겨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많은 모습들을 봐왔기에 불신은 어느 누구보다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뜨거운 마음은 정작 현장에서 별달리 힘을 쓰지 못하고, 오로지 주장이 근거이고 근거가 곧 주장인 순환 논증에 스스로 묶여 침잠한다.

관객들은 이렇게 그들의 감정이나 행동들을 보면서 다큐에서 원래 말하고자 하는 것과 다는 방식의 접근을 하게 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는 이들의 허점을 짚으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담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비난하는 근거로도, 또 다른 누군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짚을 수 있는 심리 상태를 보면서 학문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원래 제공하고자 했던 텍스트와 다른 해석을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지만, 사회적인 주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로써는 상당히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만 셈이다. 이렇게 <다이빙벨>은 좋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의의를 구현하는 것은 물론 내적인 완성도적인 차원에서도 곤란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다이빙벨>의 이러한 모습들은 비단 이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사회 고발을 기치에 내걸은 다큐멘터리나 극영화들 대부분은 자신이 담고 있는 주장을 강하고 선정적으로 내보여주는 것에 익숙할 뿐 내적인 완결성이나 주장을 다듬는 것에는 소홀한지 오래다. <다이빙벨> 이상으로 초유의 논란이 일었던 극영화 <26년>이나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는 호응을 모은 것과는 별개로 완성도의 결함이나 주장의 황량함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장자연 사건을 소재로 삼았던 <노리개>는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는 핑계로 '익스플로테이션 영화'(의도적으로 선정적인 장면과 소재를 사용한 영화)에 가까운 전개를 보여 문제가 되었다. 기타 최근 발표된 <MB의 추억>, <슬기로운 해법>, <블랙 딜> 등의 다큐멘터리들도 이러한 비판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영화들을 만든 제작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마이클 무어 역시 각종 논란과 비판에 시달리고 있으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주장을 담기 위해서 많은 사전 작업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몇몇 한국 사회 고발물의 모습은 마이클 무어의 겉모습만 가져왔을 뿐 그의 내실은 닮지 못한 듯하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결과는

하지만 이렇게 <다이빙벨>이 화제를 모은 만큼 좋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가해진 각종 압박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애초에 이렇게 외부적인 문제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기는커녕 <MB의 추억> 등의 작품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조용히 작품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만 돌다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을 다큐였다. 하지만 서병수 부산시장을 비롯해 몇몇 이들은 작품의 등장 자체를 막으려 안간힘을 썼고 그 결과 작품은 한국 사회 전반을 휘감는 뜨거운 감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마치 누군가 막으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그것을 뚫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처럼 작품을 원천봉쇄하려 한 결과가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을 일종의 '투사'로 만들고 만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작품의 기대감을 한껏 올려준 주범은 이상호 기자, 이종인 대표, 세월호 단원고 유가족도 '종북 세력'이나 '반정부 운동 단체'도 아닌 서병수 부산시장과 하태경 의원을 비롯한 작품을 극단적으로 막으려 했던 이들 자신이다.

▲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은 후반부 설치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투입을 허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설치가 쉽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 역시 비슷하게 흘러간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한국에서는 영화 <래리 플린트>로 잘 알려진 성인잡지 <허슬러>와 근본주의적 목사 제리 폴웰 간에 벌어졌던 1983년의 법정 공방을 보는 것 같다. <허슬러>는 이전부터 유명인사에 대해 음담패설을 사용한 패러디와 풍자를 계속 해왔었다. 법적으로는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공공연히 남아있던 인종 차별을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성관계로 비유하며 비난하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나 대법원장을 동성애자로 그리고 난잡한 섹스를 하는 인간으로 그리며 그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이었던 제리 폴웰은 근엄한 척하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던 사람으로 그리며 패러디하자 폴웰 목사는 바로 <허슬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러나 도리어 이 사건은 법정 공방을 거치며 단순한 명예훼손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로 급부상했고 연방대법원의 판결 결과도 1, 2심과 달리 미국 수정헌법 제 1조에 적시된 표현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보고 <허슬러>의 무죄로 결론지으면서 결국 폴웰 목사는 고소하기 전보다 더 큰 명예 훼손을 당하고 말았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에 큰 코를 다치게 하려다 도리어 자기가 큰 코를 다치고 만 셈이었다.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결과였다.

분명 <다이빙벨>을 좋은 다큐멘터리라 말하기엔 어렵고, <허슬러>에서 계속 벌어졌던 성적 조롱도 그냥 웃고 즐기기엔 적당하지만 썩 괜찮은 비판이라 말하기엔 어려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문제들이 작품 자체의 등장을 막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 도리어 각종 무리수를 써가면서 작품을 막으려 했던 여러 시도들이 역으로 작품을 홍보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언론들은 이러한 난맥을 짚으려는 대신 한 쪽의 입장을 과대하게 다루거나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다이빙벨>을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사, 혹은 사기꾼이라는 식으로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었다. 어떤 사건과 인물에 대한 깊은 탐구 대신 드러난 겉모습만을 가지고 편을 가르고 싸움을 부르는 모습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몇몇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이렇게 <다이빙벨>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작품 내적은 물론 외적으로도 2014년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작품은 개봉하고, 하태경 의원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제기한 <다이빙벨> 같은 작품의 상영 여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토론회도 곧 열릴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동안 <다이빙벨>의 논란은 쉽게 지우기엔 어려워 보인다. 동시에 지리한 논쟁의 현장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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