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프로그램 ‘코미디의 길’이 지난달 28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됐다. 하지만 그 마무리는 ‘종영’이라는 부드러운 어감조차 어울리지 않는 잔혹성이 있었다. 28일 방영분이 마지막 방송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조차 그날이 마지막임을 알지 못했다. 시청자가 종영 사실을 깨달은 건 2주가 지난 15일이었다.

코미디의 길 마지막 회는 지금이 마지막임을 알리는 특집 방송이라든지, 하다못해 ‘이제까지 코미디의 길을 시청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는 형식적인 이별 문구조차 없었다. 방송사에서 딱히 공지해준 사항도 없었기 때문에 시청자는 끝난 프로그램을 붙잡고 지난 2주간의 결방을 기다렸던 것이다.

MBC의 잔혹한 폐지 방식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해 전 MBC의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는 출연진에게 사전 통보조차 없이 막을 내렸다. 무려 10년을 바라보는 연식의 장수 프로그램이 마지막 방송에서 시청자에게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날이 끝인지도 모르고 이별해야만 했다. 덕분에 유재석은 해당 프로그램의 방송사도 아닌 SBS에서 작별 인사를 건네는 촌극을 펼쳐야만 했다.

코미디의 길은 관찰 예능과 오디션 프로그램 이외엔 버티기 어려운 MBC의 정통 코미디를 살리기 위한 신념이 돋보였던 프로다. “망태망태 망망구. 없음 말랑께롱!”이라는 유행어를 남긴 MBC ‘오늘은 좋은 날’의 귀곡산장을 리메이크해 90년대 초반 쇼 버라이어티 이상의 위엄을 자랑했던 MBC 전통 코미디의 부활을 염원했다.

한때 MBC 콩트의 선봉장이었던 이홍렬을 앞세워 신구 세대의 파이팅이 돋보였던 코미디의 길은 이번만큼은 MBC 개그를 살려보리라는 최후의 다짐이 돋보였다. 최고의 희극인 찰리채플린의 모자와 콧수염이 로고였던 코미디의 길은 기획 취지부터 남달랐다.

‘앞으로 코미디가 걸어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진지한 코민과 함께 출발하는 새로운 MBC 코미디 ’코미디의 길‘ 공개 코미디와 꽁트,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감 코미디로 여러분의 웃음을 책임집니다.’

최소한의 작별 인사도 없이 16회 만에 무산된 그들의 원념이 안타깝기만 하다. 오정태, 전환규, 추대엽 등 MBC 공채 개그맨과 MBC 드림을 목표했던 박준형 등의 타 방송사 개그맨, 그리고 노장 이홍렬. 홈페이지에서 소개한 개그맨의 인원만 해도 무려 48인이다. 48인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이 정도 규모면 집단 부당 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률이 한 자릿수 남짓인데 계속 두고 버티기엔 버거웠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이 무려 일요일 심야 12시 5분이었다. 한 달여 방영했던 ‘코미디에 빠지다’ 역시 심야 12시에 방영되었다. 개그맨들의 입장으로서는 황무지 하나를 던져주고 한 달 동안 산을 만들라는 격이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지원조차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기적을 이루어내지 못했다고 인사말도 없이 종영시키는 짓은 아무리 그쪽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너무한 처사다.

방송사의 목적이 이윤 추구에만 있는 것인가. 잠시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키워야 할 미래의 비전을 MBC는 왜 망각하는가. 한껏 공채 개그맨을 뽑아 들이고 타 방송사에서 개그맨을 사와도 제대로 활약할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철저한 공간 낭비에 인력 낭비 밖에 되지 않는다.

개그맨들에게 ‘KBS 개그콘서트’는 꿈의 직장이며 KBS만이 할리우드 드림인 이유가 있다. 이대로 MBC 정통 코미디는 막을 내리는 것일까. 귀곡산장, 큰집 사람들로 한껏 즐거웠던 MBC의 다채로운 90년대 개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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