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이동통신 보조금 시장의 책임을 지우려는 이동통신사의 전략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정확하게 지적한 대로 “삼성의 의견에 공감”한 기획재정부(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의 핵심내용으로 꼽히던 분리공시제도를 삭제했다. 결국 단통법은 반쪽짜리가 됐고, 10월1일 전격 시행됐다. 보름이 조금 넘었다.

이용자들은 통신사 갈아타기를 주저하고 있다. 보조금이 줄어든 탓이다. KT가 공시한 휴대폰 보조금(지원금) 자료를 보면, 갤럭시노트4 SM-N910KW 모델로 완전무한 129 요금제에 가입할 경우 지원금은 16만2천 원에 불과하다. 더 낮은 단계의 추가 지원금을 포함하지 않은 액수이긴 하지만 과거 불법기준을 훌쩍 넘던 보조금이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이통사는 보조금을 얼려버렸다.

▲ 이동통신사는 여기저기 발을 뻗고 있다. (사진=구글)

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 얼린 이통사, 왜?

단통법 시행 효과는 확실하다. 이용자들이 먼저 반응했다. KT가 16일 배포한 자료를 보면, 이동통신3사의 일 번호이동 평균 건수는 단통법 시작 전 8월 1만6천 건, 9월 2만여 건에서 10월 9067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를 두고 KT는 특정 고객과 특정 시기에 집중된 보조금이 언제 어디서나 전 고객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단통법으로 시장이 안정됐다는 분석이다.

KT에 따르면 ‘67요금제 미만’ 가입자는 단통법 시행 전 37~38% 수준이었다. 그런데 시행 이후 가입자들의 60% 이상이 이 요금제를 선택하고 있다. 기기변경 비중도 21%에서 33%로 크게 늘었다. KT는 “단통법 시행 이후 고객들은 본인의 상황에 맞게 단말기를 선택하고 불필요한 통신비 지출을 줄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자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단통법이 시장 과열을 막고, 이용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럴 듯 하다. 그러나 KT가 제시한 시장안정화 증거를 거꾸로 읽어야 사업자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애초 반쪽짜리 단통법을 반대했고, 국회가 단통법 개정안까지 발의한 상황에서 이통사가 “지금 시장이 안정됐고, 가입자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냥 냅둬’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5천만 호갱님 시대, 출혈경쟁 이유 없는 업자들

복기해보자. 이동통신사들이 돈을 쏟아부었을 때 이용자들은 점점 고가의 스마트폰과 데이터요금제로 갈아탔다. 이통사들은 이용자 사이에 스마트폰과 LTE요금이 안착할 때까지 경쟁했다. 스마트폰 4천만, LTE 3천만 시대가 이 결과다. IBK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8월 기준 이동통신3사 가입자의 70.4%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고, 60.1%가 LTE 가입자다. 시장점유율 5대 3대 2는 그대로다.

LTE보다 30배 빠른 5G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이동통신사는 보조금을 얼리는 게 합리적이다. LTE 이용자 확보로 이동통신사의 ARPU(가입자 당 매출)는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고, 지금 당장 가입자들이 상대적으로 저가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도 큰 문제는 안 된다. 이용자들이 2G나 3G에서 LTE로 이동하면 매출은 조금이라도 오르기 때문이다. 단통법에 삼성이 없어도 이통사는 웃고 있다.

이동통신사는 가입자 요금을 먹고 산다. 그리고 이제 이용자들이 이동통신사에 내는 요금은 ‘IPTV+인터넷+이동통신’ 결합상품 요금이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시장점유율만 유지하면 된다. 삼성 대신 휴대폰을 팔던 ‘폰팔이’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통사는 네트워크, 플랫폼, 콘텐츠까지 장악한 사업자가 됐다. 삼성이 노리는 사물인터넷 시장은 이통사 협조 없인 불가능하다.

단통법에 된통 당한 이용자, 이통사는 표정관리 중

오히려 돈을 더 풀어야 하는 상황을 막고 싶은 게 지금 이동통신사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16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초기 (단통법과 관련) 부정적 이슈가 있었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그 효과가) 어떤지, 그 부분을 밝혀보자는 취지에서 설명자료를 냈다”고 설명하면서도 “언론이나 고객이나 과거를 비정상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가 좋았다고만은 보기 어렵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KT 관계자는 ‘번호이동이 줄었다는 것은 보조금과 경쟁도 그만큼 줄었다는 이야기다. 단통법 시행 뒤 오히려 이통사에 좋은 환경이 생긴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는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현재 그렇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단통법을) 환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보조금이 선택 기준이 못 되니 서비스가 기준이 됐고, 시장경쟁의 룰이 바뀐 것은 통신사에게 좋다”고 말했다.

단통법 논의 과정에서 언론에 불만을 쏟아내던 이동통신사가 갑자기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이용자의 대다수를 스마트폰 유저, LTE 가입자, 결합상품 가입자로 만든 이통사는 이제 과거에 비해 3~4배 높아진, OECD 최고 수준의 통신요금만 착착 받아먹으면 된다. 물론 통신요금이 내려갈 일은 전혀 없다. 단통법으로 이용자들은 된통 당하는 중이다. 그래서 단통법은 ‘호갱님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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